한·EU FTA, 농축산업 등 피해 대책은 충분한가
[두런두런경제]박경철 제정임 이성철의 생생토크

박경철(KBS 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한 주간 주목해봐야 할 뉴스들을 통해서 한국경제를 진단해보는 생생토크 시간입니다. 10월 둘째 주 생생토크, 한국일보 경제부 이성철 부장,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제정임 교수 두 분 나오셨습니다. 이 부장님은 현역 언론인이고, 제 교수님도 전에 저널리스트셨는데, 요즘처럼 배추가 큰 뉴스거리가 된 일이 예전에도 있었습니까?

이성철(한국일보 경제부장): 배추가 신문 1면 톱기사 제목으로 이렇게 나온 일은 정말 흔치 않습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배추파동이 있었는데, 그때는 너무 풍작이라 가격이 폭락하니까 농민들이 배추밭을 갈아엎었다는 얘기였죠. 그땐 남아돌아서, 이번엔 흉작이라 농민들 피눈물을 흘리는 상황인데, 농민들 마음은 어떨까, 소비자들 마음은 어떨까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이부장님보다 제가 조금 언론계 생활을 먼저 시작했는데, 농산물가격의 폭등, 폭락이 잠깐 잠깐씩은 항상 있었지만 이번처럼 긴 기간 동안, 이렇게 큰 폭으로 배추 값이 올라 파동을 겪은 일은 없었던 것 같네요. 배추는 우리 한국인의 필수 부식인 김치의 주재료라는 점, 지금 이 파동이 지구온난화 시대의 이상기후와 관련된 문제라는 점, 많든 적든 4대강 사업으로 인한 경작지 축소가 영향을 미친 사안이라는 점 등에서 논란이 클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박: 우리가 지금처럼 고춧가루로 버무린 배추김치를 먹은 게 100년 정도 됐다는데, 어쩌면 100년만의 배추파동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서울시가 배추물량을 풀어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겠다고 나섰는데, 금액을 보니까 행사 때 축포 쏘는 비용 정도 투자했더라고요. 재래시장에서 그걸 사려고 새벽부터 할머니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는데, 참 딱하기도 하고 착잡했어요.

제: 제가 아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분도 재래시장에 가서 줄을 섰는데 저 앞에서 끝나더라는 거예요. 한참을 기다렸는데....... 화가 많이 나셨더라고요. 배추를 산분들도 고작 한 망, 그러니까 배추 세포기 사는데 그렇게 고생을 하게 만들더라며 언짢아하더군요. 배추 때문에 서민들이 고통을 겪으니까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당국의 충정은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만,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기보다 미봉책 위주로 흐르는 것 같아 안타까움 혹은 분노를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박: 저는 좀 신랄하게 말씀드리면 오히려 국민의 불안을 이용한 이벤트 아닌가, 이런 생각까지 들더군요. 이게 진정성이 있는 거라면 배추를 사서 저소득층, 독거노인, 혹은 소년소녀가장 집에 보내든지....... 새벽부터 줄서서 극히 일부 소비자가 배추 한 망씩 사가게 한 것, ‘누구 놀리나’하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는 방송진행 하면서 혈압 오르는 소식들이 이어졌는데, 굵직한 경제 뉴스는 어떤 것들이 있었습니까?

이: 일단 한·이유(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소식이 있죠. 이것이 과연 소비자들에게도 좋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다음으로 글로벌 환율전쟁, 그리고 이것으로 인한 국내금융시장의 트리플강세 현상을 꼽아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김장, 배추파동 과연 언제까지 갈지 하는 것입니다. 

제: 저도 거의 비슷합니다. 한·EU FTA 공식 서명한 것, 그리고 글로벌 환율분쟁이 지속되면서 국내경제에도 만만찮은 파장이 나타나고 있는 것, 주가지수 1900선 돌파했다는 뉴스 등입니다.

박: 저도 한·EU FTA, 환율전쟁, 배추파동 등 거의 일치하네요. 이부장님, 우선 배추 값 이야기 좀 더 해보죠. 중국산배추 들여온다고 하는데, 이제 가격안정기조로 갈 수 있겠습니까?

올해 김장비용 최소 예년의 두 배, 많게는 세 배 될 듯

이: 지금까지 문제가 된 건 고랭지배추들이고, 이제 준고랭지 배추와 충청지역 경기지역의 가을배추가 본격적으로 출하된답니다. 작황이 아주 좋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쪽 물량들이 나오면 가격이 조금 꺾이지 않겠는가, 이런 관측들이 많습니다. 농림수산식품부 산하의 농업관측센터라는 곳이 있는데요, 이곳의 예상에 따르면 11월 말쯤 포기당 2500원 가까이로 떨어질 것이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배추 값만 떨어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요, 마늘 고추 등 필수 양념채소류 가격이 수입선인 중국의 작황이 좋지 않은 탓에 연말까지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올해 김장비용은 예년에 비해 최소 두 배, 많게는 세 배 정도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래서 김장시기를 조금 늦춰라, 조금씩 쪼개서 해라 하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김치고개’를 힘겹게 넘어야 할 상황입니다.

박: 중국에서 들여오는 배추의 위생문제도 걱정인데요, 국정감사를 보니 2006년부터 올 10월까지 유통된 수입배추김치에 대해 잔류농약검사를 안했다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제: 몇 년 전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발견돼 큰 파동이 있었죠? 곳곳에서 중국산 김치 버리고 난리였는데, 이번에 중국에서 배추를 대거 들여오겠다고 하니까 과연 ‘깨끗할 것이냐’ ‘안전할 것이냐’에 대해 걱정하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당국도 검역을 강화하겠다고 하고, 평소 전체 도입물량의 2%정도만 표본검사 했던 것을 두 배로 늘리겠다, 검역하는 인력도 현재의 3배로 늘리고 대신에 이틀 걸리던 검역절차를 하루로 단축해서 빨리 공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달 들어서 7일까지 일주일동안 들여온 중국산 배추가 764톤이라고 해요. 불과 일주일 동안 지난 한해 들여온 물량의 일곱 배가 들어온 것이랍니다. 그러면 아무리 검역인원이 세배로 늘어도 과연 꼼꼼히 봤겠느냐 하는 의구심이 남습니다. 과연 그 인원으로 그 많은 물량을 제대로 봤을까, 빠른 통관에 역점을 두느라 대충 대충하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됩니다. 중국산 김치에 대해서도 몇 년간 잔류농약검사를 안하다가 며칠 전부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요. 위생 부분에 대해서 주부들 걱정이 많다는 것을 유념하고 철저히 점검해줬으면 합니다.

박: 이상 기후로 고랭지의 작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그야말로 ‘에브리바디’가 짐작하고 있었던 일인데, 그동안 당국에선 뭘 했을까요. 세금 내는 입장에서 정말 ‘뚜껑’ 열립니다. 자, 이제 한·EU FTA로 넘어가야겠네요. 일단 국가적으로 결정된 일이니까 이왕이면 좋은 방향으로 가야할 텐데, 우리 정부는 경제적 효과가 크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지만 유럽 쪽에서는 ‘한국이 손해 봤을 걸?’하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한·EU FTA, 업종별 계층별로 다양한 영향 분석하고 대비해야

제: EU 내에서도 반응이 똑같은 건 아닌 거 같아요. FTA가 시행되면 이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EU쪽 다수 국가들의 입장이지만, 이탈리아나 루마니아 등은 반대합니다. 자동차부품 등 관련 산업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우리가 이번에 서명은 했지만 FTA는 양국 의회 비준동의절차를 거쳐 내년 7월에 잠정 발효하고, 그 후 EU 27개 회원국의 동의를 차례로 받아야 정식발효가 됩니다. 한미 FTA가 서명 후에도 몇 년간 양국 의회 동의를 못 받고 있는 것처럼 한·EU FTA도 아직 절차가 남아 있는 것이죠. 우리 정부는 정식발효까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는데, 반대하는 나라도 일단 있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한·EU FTA가 발효될 경우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의 단일경제권인 EU를 대상으로 시장을 확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장이 커진다는 것은 힘이 센 쪽, 경쟁력이 있는 쪽에게는 돈을 벌 기회가 그만큼 늘어난다는 얘기지만, 체력이 약한 쪽은 설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기업들 중에서도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수출대기업들, 즉 자동차나 조선, 휴대전화, 디스플레이 등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고요, 반대로 유럽이 강한 쪽, 즉 의약품, 의료기계, 정밀화학, 정밀기계, 농축산물 등에서는 우리 쪽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정부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익이 크다, 그러니까 FTA는 잘 한거다’고 하는데 내부적으로 돈을 더 벌게 된 쪽에서 피해를 입은 쪽에 나눠주는 구조가 잘 돼 있다면 문제가 없겠죠. 그런데 우리는 이것이 사실상 막혀있는 체제라, 망하는 곳은 대책 없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한·EU FTA가 발효되면 10년간 우리경제의 실질GDP가 최대 5.6% 늘어 날 것이고 장기적으로 25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했는데, 정부정책을 지원하는 국책연구소가 내놓은 장밋빛 전망이라 감안해서 들어야할 것 같습니다.

박: 기업들은 그렇고요, 소비자 입장은 어떨까요. 일반적으로는 수입품 가격이 싸져서 소비자에게 유리하다고 하는데, 이 부장님,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면서요?

이: FTA라는 게 항상 그렇습니다. 수출업자한테는 유리하고 수입품과 경합해야하는 국내 산업은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소비자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데 한·칠레FTA 때 ‘칠레 와인 값 떨어지겠다’ 기대를 했지만 실제론 별로 안 내렸습니다. 당시에 와인관세율이 15%였는데 이것을 시쳇말로 ‘원샷’으로 내린게 아니라 일년에 2.5%씩 점진적으로 내렸기 때문이죠. 

박: 그럼 마진으로 흡수해버렸겠군요?

이: 예. 바로 그 얘긴데요, 2.5%씩 낮추어봤자 이게 몇 백 원, 몇 천 원 안 되거든요. 그러다보니 수입 업체들 유통마진으로 그냥 흡수되어버린 거예요. 이번 한·EU FTA 역시 품목에 따라 관세율이 ‘원샷’으로 내리는 것도 있지만 10년, 15년 이렇게 단계적으로 내려가는 품목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예컨대 와인은 내년 7월부터 한꺼번에 내려 불란서와인, 이태리와인 가격이 한 10% 내릴 가능성이 있지만, 다른 품목들은 적게는 3년 길게는 15년에 걸쳐 인하가 되기 때문에 소비자후생 증대의 혜택이 별로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총론적으로 FTA가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 교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그냥 ‘GDP 몇% 늘어날 것이다’ ‘고용 몇% 늘어날 것이다’하는 총론적 수치로 효과를 이야기 할 것이 아니라 생산자, 소비자, 수입업체, 수출업체, 또 품목별 업종별 계층별로 다양한 입장을 분석하고 대비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 이 부장님 말씀을 들어보면 우리가 기대했던 것, 또 우려했던 것이 실제로는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제 교수님, 어떻습니까?

제: 농수축산부문은 정부가 지금 추정하는 것 보다 피해가 더 커지는 쪽이 아닐까 걱정스럽습니다. 현재 한·EU FTA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액의 90% 정도가 농축수산 농가에 돌아갈 것으로 전망되는데, EU산 삼겹살로 인한 양돈농가의 피해, 치즈 등 유제품으로 인한 낙농가 피해 등이 대표적이죠. 또 보건복지부가 추산한 걸 보니까 의약품과 의료기계분야 중소기업들의 피해도 몇 년간 천억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앞으로 수지가 안 맞아 폐업하는 농가, 중소기업이 크게 늘어 그 부분의 농민, 근로자들 대량 실직으로 이어진다면  실제 파장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장이 확대되는 것으로 인해서 피해를 보는 산업 부문, 그로 인해 절망하게 될 사람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끌어안고 갈 것이냐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이: FTA를 하다보면 생산자와 소비자, 수출업자와 수입업자의 이해가 상충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사실 싸게 수입하지 않으려면 FTA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생산자, 축산농가 등의 피해는 어느 정도 감수를 해야 할 부분인데, 그런 분들을 어떻게 끌어안을 것이냐를 정부가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FTA 국내 대책 나온 내용들을 보니까 별로 그렇게 뚜렷한 내용은 없는 것 같고요. 정부가 FTA를 한 것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피해가 생긴 부분에 있어서는 ‘알아서 구조조정하라’고 맡겨 놓을 게 아니라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제대로 된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박: 한·EU FTA가 체결됐고, 한·미 FTA도 우여곡절 끝에 어떻게든 되겠죠? 그 다음 문제가 한·중, 한·일 FTA일 텐데, 이건 셈법이 무지하게 복잡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한·중 한·일 FTA, ‘잘 만지면 선물, 잘못하면 경제 파탄’ 가능성

이: 사실 한·중, 한·일은 한미, 한·EU하고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같은 경제권에 있기 때문에 잘못 건드리면 거의 핵폭탄이 됩니다. 잘 만지면 좋은 선물이 될 수 있겠지만 잘못하면 우리 경제를 파탄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번 한·EU FTA가 다른 FTA를 촉진시키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리라고 봅니다만, 중국 일본과의 FTA는 거의 단일경제권으로 통합이 돼나가는, 경제의 국경을 허무는 조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되고, 득실부분을 꼼꼼히 따져가져서 조심조심 접근해야 합니다.

박: 정말 한·중이나 한·일FTA는 ‘모 아니면 도’라는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한·중FTA는 그야말로 우리 농수산업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최첨단 하이테크를 제외하고는 중국과 우리의 기술수준이 거의 대등해졌기 때문에 우리가 과거의 ‘값싼 중국’을 전제로 한 FTA 구상을 갖고 있다면 버려야 할 것입니다.

박: 정말 잘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EU집행위원장에게 ‘왜 일본하고 먼저 안하고 한국하고 했느냐’고 물으니까 ‘우리가 내건 조건을 몽땅 들어준 데는 한국밖에 없었다’고 했다는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제: 이 정부 들어와서 FTA를 동시다발적으로 빨리 체결해서 시장을 획기적으로 넓히자는 ‘드라이브’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미 FTA도 미국산 쇠고기 검역기준 완화 등 무리수까지 두면서 비준을 받으려 했던 것이고, 한·EU FTA에 대해서도 그런 뒷말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여러 가지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 부장님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신중하게 따져가면서 해야 할 것이 FTA입니다. ‘스파게티 보울 효과’라는 게 있는데, 여러 상대와 FTA를 동시에 맺다보면 스파게티 국수 가락이 엉키는 것처럼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죠. 지금이라도 속도를 조절하면서 손익계산을 철저히 했으면 좋겠습니다.

 

박: 이번엔 주식시장으로 가보죠. 제 교수님, 글로벌 거시경제가 둔화될 것이란 우려는 이제 기정사실화하는 것 같고,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실적이 정점을 찍고 꺾였다 해서 화제인데, 종합주가는 1900선을 돌파했네요. 어떻습니까, 경제지표와 실물경제가 디커플링되는 겁니까, 아니면 자산시장이 앞서 나가고 나중에 실물경기가 따라가는 겁니까?

제: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의 주가상승은 경제 성적이 좋아서도 아니고, 앞으로의 전망이 좋아서도 아니고, 돈이 풍부해진 때문이죠. 풍부한 유동성이 주가를 밀어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선진국들이 각자 경제침체를 벗어나기 위해서, 자기네 통화가치를 낮춰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앞 다퉈 돈을 푸는 정책, 즉 ‘양적완화’를 시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선진국에서 풀린 돈이 자기네 땅에서는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기가 힘드니까 상대적으로 경제 사정이 좀 나은 아시아증시로 몰려들고 있는 것입니다. 글로벌 환율전쟁이란 얘기도 요즘 많이 하는데, 선진국에서 앞 다퉈 돈을 풀어서 그 쪽 통화가치가 낮아지니까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흥개발국의 돈가치는 올라가고 있죠. 그러니 외국인 입장에서는 앞으로의 환차익도 기대할 수 있어 더 들어오는 것이고요. 국내증시가 1900을 돌파할 때까지 연속으로 16일 동안 외국인들이 5조 4천억 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했는데, 이 숫자가 많은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박: 결과적으로 이 유동성이 외국에서 흘러들어온 돈 아닙니까? 그런데 돈값이 올라가는 쪽으로 움직여서 우리나라로 들어왔다가 돈값이 떨어질 때 쉽게 빠져나가려고 채권이나 주식쪽으로 몰리는 것인데, 이게 멈출 기미가 없네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태국 같은 경우는 환율이 아주 난리가 났더군요. 싱가폴 대만도 마찬가지고요.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는 지금 상황을 ‘전투 없는 전쟁이다’ 이렇게 표현했던데, 이러다 전면전으로 가는 것 아닙니까?

'대한민국 통화당국은 한국은행이 아니라 외국인' 자조도

이: 주가 1900 돌파한 것은 즐거운 일인데,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고약한 상황이죠. 만일 국내 과잉 유동성 때문에 버블이 생기고 과열기미가 보인다면 간단히 금리를 올리면 되는데, 글로벌 유동성의 문제라 어렵습니다. 지금 증시는 전적으로 외국인 잔치인데, 금리를 올리면 환율이 더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곤란한 입장입니다. 시중에는 '대한민국의 통화당국은 한국은행이 아니라 외국인'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근데 분명한건 과잉유동성의 끝은 항상 불행이라는 사실입니다. 닷컴버블이 그랬고, 먼 옛날 튤립버블, 최근의 리먼사태도 과잉유동성이 만들어낸 비극이었죠. 그런데 버블이 터지면서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또다시 과잉유동성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얼마 전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콜럼비아대 교수는 “지금 미국의 중앙은행이 미친 짓을 하고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재정으로 문제를 풀어야지 양적완화로 나가는 것은 또다시 버블을 만들어내는 정신 나간 짓이라는 얘기였죠. 우리도 주가가 오른 것은 좋지만 외국인이 빠져나갈 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또 안 빠져나가고 계속 들어오면 이 과잉유동성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힘든 과제에 직면한 것 같습니다.

제: 외국자금이 급속하게 들어왔다가 확 빠져나가면서 나라가 망할 지경까지 갔던 게 우리의 97년 외환위기 아닙니까? 미국 같은 나라는 자기네 돈이 기축통화니까 외환위기 걱정은 없는데, 우리는 외국 자금이 빠져 나갈 때를 걱정해야 하거든요. 우리와 비슷한 처지인 브라질의 경우는 소신 있고 강단 있는 정부가 핫머니(투기성 단기자금)에 대해 외환거래세(금융거래세)를 과감히 물립니다. 종전에 2% 물리던 것을 이번에 4%로 올렸습니다. 그래서 외국자금의 급격한 유출입을 조절할 수 있는데, 우리 당국은 ‘그런 거 도입하면 큰일난다’ ‘돈이 다 빠져나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이제는 이런 제도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 우리가 자신감이 없으니까 한국 시장을 아주 만만하게 보고, 돈 빼내기 쉽다는 의미에서 ‘코리안 ATM(현금입출금기)’ 이라는 얘기까지 하지 않습니까? 두 분 모시고 말씀 듣다보면 항상 시간이 부족한데,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리/ 이재덕 기자


 * 이 기사는 KBS 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되었습니다. 일부 내용은 분량상 생략되었습니다. 방송 내용은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10월 9일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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