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불패] '국토의 꽃'을 따라온 '우리 꿀'의 변천사

▲ 9월초 효석문화제가 열린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일대에 그야말로 ‘소금을 뿌린 듯이’ 메밀꽃이 피어있다. Ⓒ 평창포토뉴스 김춘호.

그 많던 메밀과 싸리는 어디로 갔나?

전국 곳곳 양봉농가를 취재하다가 이달 초순 ‘이효석 문화제’가 한창인 봉평을 찾았다. 막 피기 시작한 메밀꽃은 안개꽃이 꽃망울을 터트리는 듯 안개비와 함께 온 들판에 자욱했다. 허생원이 아련한 첫 사랑의 기억을 끄집어냈던 달빛 아래 메밀밭은 아니어도, 옅은 안개비가 지나가면서 보여주는 고산지대의 들판은 몽환적이었다.

‘메밀 꽃 필 무렵’이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을 홀로 받으며 한 세월 살아온 이는 장돌뱅이만이 아니었다. 제주도 유채꽃으로 시작한 양봉업자들의 한 해 여정 또한 여기서 끝나게 되니 감회가 클 수밖에 없는 곳이다. 요즘은 이동하는 양봉업자가 많이 줄고 농사를 겸하는 토박이 양봉농민이 많아졌지만, 벌 키우는 사람들에게 30만 ㎡로 펼쳐진 봉평의 메밀꽃밭은 아직도 벅찬 감동이다.

꿀벌들이 메밀의 꿀과 꽃가루를 모으는 9월 중순까지도 봉평의 양봉농가는 바쁘다. 다른 곳에서는 보통 8월 장마가 끝나면 채밀을 마치고 겨울준비에 들어간다.

이곳에서 양봉을 하는 전기현(65)씨는 이제야 겨울준비에 들어갔다. 메밀꿀 채취가 끝난 지난주부터 벌들이 먹을 인공화분을 마련했고 벌들의 겨울식량인 설탕도 준비해 놓았다. 전씨의 인터넷 누리집에서는 지난주부터 단맛이 강하고 암갈색 빛을 띤 메밀꿀을 팔기 시작했다.

“지금은 많이 볼 수 없지만 메밀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애환이 서린 작물이에요.”

전씨 말마따나 60년대까지만 해도 강원도의 논과 밭에는 메밀이 흔했다. 모내기철에 가뭄이 심하면 벼농사를 포기하고 7월쯤 논에 뿌리던 게 메밀 씨앗이었다. 퇴비나 비료도 없이 잘 자라는 메밀은 40일만에 꽃이 피고 영글어 열매를 맺었다. ‘보릿고개’의 기억을 간직한 메밀은 벌꿀 생산을 위한 중요한 밀원(蜜原)이기도 했다.

▲ 유채꽃이 피어있는 제주도. Ⓒ 제주풍경사진연구소 김상부

제주도의 유채는 지금은 경제성이 없어 재배하는 이가 많지 않지만 70년대만 하더라도 제주도 전체가 온통 노란 유채로 물들었다. 봄이면 유채꿀을 모으기 위해 양봉업자들이 바다를 건너기도 했다.

남부지방에서 3월부터 5월까지 자줏빛 꽃을 피우는 자운영도 꿀 많기로 유명한 대표적 밀원식물이었다. 농부들은 벼베기가 끝난 논에 자운영씨를 뿌렸다. 봄에 자운영이 자라면 갈아엎어 퇴비로 썼다. 콩과식물인 자운영은 공기 중 질소를 땅속에 고정시켜 식물의 성장을 돕는다. 요즘은 화학비료가 자운영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자운영꿀도 맛보기 힘들어졌다.

▲ 경남 고성군 자운영 꽃밭. 자운영에는 꿀벌이 많이 모여든다 Ⓒ 블로그 하늘사랑

싸리는 ‘전국구’였다. 전국의 민둥산에 주로 자생하던 관목인 싸리는 가을이 되면 붉은 꽃을 피웠다. 개화기간도 긴 편이고 꿀과 꽃가루도 많이 나 꿀벌들이 많이 달라붙었다. 싸리는 키 큰 교목들이 산을 뒤덮어 줄어들기 시작했다. 정부가 60년대 산림녹화사업을 벌이면서 주로 속성수인 아까시나무를 심어 지금처럼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산림풍경이 만들어졌다.

전성기 지난 아까시나무

현재 아까시나무는 국내 꿀 생산의 70%를 차지한다. 메밀꿀을 생산하는 전기현씨도 “메밀꿀은 겨우 명맥만 유지할 뿐이고 연간 생산하는 꿀의 80~90% 정도를 아까시에서 얻고 있다”고 했다. 경북 예천에서 양봉을 하는 권상헌(70)씨도 “오월이 되면 아까시꽃에서 꿀이 비처럼 흘러내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까시나무도 이젠 너무 늙어버렸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심어진 아까시의 수령은 벌써 40년 가까이 됐다. 생산되는 꿀의 양도 전성기만 못하다. 올초에는 평년보다 기온이 2~3도 낮은 이상저온과 일조량 부족까지 겹쳐 아까시 꿀 생산이 대흉작을 맞았다.

“아까시 벌꿀이 5분의 1로 줄었어요. 제 주변에는 올해 양봉도 실패했다는 사람이 많아요. 수확한 꿀이 적다보니 사양꿀을 생산하는 농가도 늘었습니다.”

사양꿀은 천연꿀과 달리 꿀벌에게 설탕을 사료로 먹이고 생산한 꿀이다. 꿀 수확을 늘리려면 꽃이 피는 곳마다 꿀벌을 풀어놓아야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 예천에서 40년간 양봉을 해온 권상헌씨가 겨울에 대비해 벌통을 옮기고 있다. Ⓒ 이재덕

꽃을 피해 다녀야 하는 양봉인들

오히려 꽃을 피해 도망갈 때도 있다. 권씨 집 주변에는 사과 과수원이 많지만 능금꽃이 피는 4월이면 그는 능금꿀 수집을 피한다. 농약 때문이다. 꿀을 수집하러 간 벌들이 농약을 묻혀 돌아오는 바람에 어린 벌까지 죽인 경우도 많았다. 권씨는 “아침이면 벌통 앞에 죽은 벌 주검이 한 움큼이었다”고 말했다.

풍매화로 알려진 벼꽃에도 꿀벌이 달라붙는다. 하지만 8월 중순 벼꽃이 피는 10일간은 행여 꿀벌들이 벼꽃가루를 수집하러 갈까봐 노심초사하는 양봉농가가 많다. 양봉인들이 모여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 ‘꿀벌사랑동호회(www.cafe.daum.net/beelove)에서는 농약에 대한 양봉농가의 불안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농약피해를 입고 벼꽃가루를 수집하러 간 일벌이 돌아오지 못해 벼꽃이 피는 기간에 벌 세력의 3분의 1정도가 줄어드는 일도 있었다.”(안경강님)

 “요즘에는 과수원에서 농약을 뿌려서 걱정입니다. 벌통을 지고 옮길 형편도 되지 않고, 그렇다고 벌통 문을 봉해버릴 수도 없고...”(오행베다님)

▲ 사진 위쪽에 있는 벌이 뒷다리에 노란 꽃가루 덩어리를 붙인 채 귀가하고 있다. Ⓒ 이재덕

‘아까시 출구전략’이 시작되다

양봉농가로서는 이래저래 아까시나무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산주에게 아까시는 눈엣가시다. 산 이곳저곳에 뿌리를 뻗어대며 다른 나무의 생장을 방해하는 아까시보다는 소나무나 옻나무처럼 이익이 많이 나는 나무가 산주들에게 인기가 높다. 국유림에서도 아까시는 환영받지 못한다. 산림청 차경회 사무관은 “아까시는 종이로 만들 수도 없고 연료로도 쓸 수 없다. 대신 백합나무나 헛개나무처럼 꿀도 많이 생산되고 크고 빠르게 자라 종이나 목재로 쓸 수 있는 관목을 주로 심고 있다”고 말했다.

▲ 정읍 두승산의 5월. 산중턱의 흰 꽃들이 모두 아까시꽃이다. Ⓒ 두승산밑 꿀벌집 김동신

농민들의 걱정은 여전하다. 아까시처럼 많은 꿀을 생산하는 나무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40년간 양봉을 해온 전씨는 “남부지방에 유채를 장려하는 등 작물을 다양화하되 남아있는 아까시는 보호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적극적으로 자구책을 펴는 농민들도 생겼다. ‘꿀벌사랑동호회’에서는 전국에 밀원식물을 심는 ‘국토밀원화운동’을 3년째 벌이고 있다. 봄에는 유채와 자운영이, 여름에는 아까시나무와 백합나무가 벌들에게 꿀을 제공하고, 밤나무와 헛개나무, 쉬나무가 밀원이 되었다가, 가을에는 느릅나무와 메밀이 뒤를 잇는 식으로 끊임없이 꽃들이 피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아까시에만 의존하지 않고 밀원을 다양화하여 벌꿀 생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름하여 ‘아까시 출구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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