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 넘쳤던 노(老)대통령 앞에서 부끄러웠다
[신문쟁이방송쟁이] 김대중 자서전 집필자 김택근

판타지 소설도 아닌, 총 1400페이지 두 권으로 된 ‘목침만한’ 두께의 책이 올 여름 서점가를 강타했다. <김대중 자서전>이다. 김 전 대통령의 85년 생애를 꾹꾹 눌러 담은 이 책은 지난 7월 말 출간된 지 한 달 반 만에 약 7만질, 낱권으로 14만권 가량이 팔렸다. 일어와 중국어 등 외국어 출판이 추진되고 있고, 고인의 통일 염원을 담아 곧 북한에도 전달될 예정이다.

이 자서전은 김 전 대통령이 아닌 ‘대필작가’가 썼다. 바로 경향신문의 김택근 논설위원(55)이다. 지금은 자서전의 인기 덕에 집중 조명을 받고 있지만, 6년 전 집필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까마득한’ 심정이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전직 대통령의 일생을, 짧은 글만 쓰던 신문 기자가 책으로 기록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 <김대중 자서전>의 집필을 맡은 김택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이승환

출간 한 달 반에 14만부, ‘김대중 읽기’ 바람을 일으키다   
 
“자서전을 맡기고 싶어 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망설이면서 김 전 대통령을 뵈러 갔습니다. 2004년 4월인데, 처음 뵙는 것이었죠. 그 때는 참여정부가 대북송금특검으로 김 전 대통령의 가슴을 찢고 있을 때였습니다. 비서 출신 민주당 의원들은 선거에 출마했다가 다 낙선해서 널브러져 있었죠. 그런데 그렇게 괴롭고 적막한 세월을 지나면서도 저에게 ‘한류’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신라의 ‘해동불교’와 조선의 ‘퇴계학’을 예로 들면서 지금의 한류 열풍이 우려와 달리 영속적일 것이라고, 우리 민족의 저력을 믿는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민족의 내일을, 희망을 얘기하시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저런 분이라면 힘들더라도 한 번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자서전 작업은 2004년 7월부터 시작됐다. 100시간 넘게 녹음한 인터뷰와 방대한 자료의 숲에서 김 위원은 6년간 집필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이후 막연히 존경했던 김 전 대통령을 점점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서전 작업을 하면서 한 번은 그 분께 푸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경향신문 자회사인 미디어 칸의 대표를 맡아 어려움이 많을 때였는데 ‘우리 회사가 여러모로 갑갑합니다, 앞길이 안 보입니다’하고 털어 놨죠. 그랬더니 김 전 대통령이 깜짝 놀라면서 ‘지도자가 그러면 쓰냐’고 하시더군요. 지도자는 절대 그런 얘기를 하면 안 된다, 앞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희망찬 내일을 설계해야 그 날이 온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 말씀을 듣고 부끄러웠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자세가 오늘의 김대중을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긍정의 힘’을 믿고 계셨기에 절망적인 상황이나 죽을 고비에서도 일어날 수 있었던 거죠.”
 
글 솜씨 인정 일면식 없이 발탁, ‘출간은 사후에’ 당부

▲ 김택근 논설위원 ⓒ이승환

김 전 대통령이 일면식도 없었던 김 위원에게 자신의 생애를 정리하는 일을 맡긴 것은 평소 경향신문에 실린 김 위원의 칼럼을 눈 여겨 보고 그의 생각과 글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김 위원이 김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칭송하는 글을 썼던 것은 아니다. 퇴임 후에도 사회적 발언을 마다하지 않았던 김 전 대통령에게 ‘이제 그만 역사 속에 묻히라’고 아픈 소리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일기장에 ‘김택근 사장은 글을 잘 쓴다’고 적었을 만큼 그의 솜씨를 인정했다.

그리고 자서전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누구보다 만족스러워했다. 김 전 대통령 스스로가 40권이 넘는 책을 직접 썼고, 보좌관들의 글을 사정없이 첨삭해 ‘빨간펜’이라고 불릴 정도였지만, 김 위원이 쓴 자서전에는 토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만족스러워했던 자서전을 왜 꼭 사후에 출간하라고 당부했을까?

“자서전에서 김 전 대통령은 처음으로 자신이 서자 출생임을 밝혔습니다. 그 만큼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놨고, 그래서 걱정스러웠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민감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그 분의 삶에 워낙 많은 사건과 인물들이 엉켜있었으니까요. 또 그 분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비난 여론도 염두했던 것 같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을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들을 그 미움이 지워진 다른 세상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얘기도 했는데, 생전에 그런 사람들과의 시비를 피하고 싶었던 것이겠죠.”

자서전을 쓰는 동안, 김 위원은 김 전 대통령의 눈물을 보았다. 2007년 1권 집필을 막 끝냈을 때였다. 칼럼 등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이 현실 정치에 대해 침묵하기를 주문했던 김 위원에게 김 전 대통령은 속내를 털어 놓았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는데, 나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뒷전에 앉아있으라고 하는데,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시기에 나라도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나? 내가 늙고 힘이 없어도, 나서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민주주의를 위해서 죽어간 의사 열사들이 땅속에서 얼마나 통곡을 하겠는가? 나는 죽을 때까지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다 죽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얘기를 하면서 울었다고 한다. 그 때 김 위원은 ‘민주주의는 이 양반의 삶 자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의 현실 발언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등 격동기를 거치는 동안 더욱 거침없이 이어졌다.

▲ 김택근 논설위원 ⓒ이승환

어쩌다 정치인 김대중의 자서전을 쓰게 됐고, 그래서 한 시대의 기록자가 됐지만, 김 위원은 당초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3년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이다. 그러나 같은 해 <경향신문> 편집기자로 입사해 월급쟁이로 살아가면서 시집을 한 권도 내지 못했다. 신문 칼럼을 쓰고, 우연한 기회에 신문 특집 면에 동화를 쓰다가 산문집과 동화집을 낸 일은 있다.

그런데 조직에서 점점 책임이 커지는 자리에 오르게 되자, ‘권력투쟁’의 소용돌이도 경험하게 되더라고 털어 놓았다. 사원들이 주주인 경향신문은 사장, 편집국장을 선거로 뽑아왔는데, 그도 2003년 편집국장 선거에 나섰다가 6명 중 2등을 한 경험이 있다. 또 계열사 사장등 경영자 역할을 맡아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도 겪어봤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지키고 싶어 하는 이름은 역시 ‘글쟁이’다. 그는 이번에 출간된 자서전에 미처 기록하지 못한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순간까지 담아서 김대중 평전을 쓸 구상을 하고 있다. 자서전을 통해, 그리고 평전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거인 김대중’을 기억해주기를,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의 길을 따라가 주길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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