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특강]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강연을 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언론 민주화’ 어디로 가고 있나?

“우리나라는 1987년 6․10 항쟁을 통해 민주화를 일궈냈습니다. 그러나 최장집 교수의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화가 됐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다 이뤄진 것은 아니죠.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에요. 민주화 이후 언론도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만, 민주주의 사회의 한 축으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미래 언론인이 될 여러분 어깨가 무겁습니다.”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는 ‘민주화 이후의 언론 민주화’를 주제로 강연을 시작하면서, 현재 한국의 언론 상황이 밝지 않다고 입을 뗐다. 과거와 달리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신문/방송업, 정치권력보다 더 은밀하고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자본, 나와 다른 입장을 용납하지 않는 언론의 파당성, 전문기자의 영역을 위태롭게 하는 시민저널리즘까지, 기자를 ‘업’으로 하는 전문기자가 넘어야 할 산은 높다. 이 시대에 진정한 기자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갖춰야할 역량은 무엇일까? 박 대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1면머리’보다 1단기사가 더 의미 있던 시절

72년 10월 유신 이후부터 87년 민주항쟁까지는 한국 언론의 암흑기였다. 칠팔십 년대는 언론의 기본적인 자유마저 보장되지 않는 시대였다. 70년대 대학생들의 독재반대 시위는 기사화조차 되지 못했고, ‘언론자유실천선언’에 참여해 시민들의 참된 눈과 귀가 되고자 했던 <동아일보> 기자 100여 명이 해직되기도 했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는 ‘보도지침 사건’이 터졌다. 당시 언론은 재야인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민주화를 위해 23일간 단식을 했을 때도 기사 한 줄 내보내지 않았다. 각 신문 1면 머리기사보다 정치사회면 1단 기사 중에 더 중요한 것이 많았다. 전두환 정권이 막을 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박종철 고문사건도 <중앙일보> 2판 사회면에 고작 2단으로 보도되는 정도였다.

87년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언론인들은 그동안 독재정권에 굴복해 언론의 본래 사명을 다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하고 ‘시민들이 가져다준 언론의 자유지만 이제부터 제대로 해보자’는 결의를 다졌다. 언론사마다 노조가 생겼다. 노동자로서 권익향상과 복지개선보다는 기자로서 소신과 양심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언론인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편집권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편집국장을 임직원들이 선출하는 ‘직선제’, 사주가 임명하더라도 평기자들 동의를 받아야하는 ‘임명동의제’와 같은 제도가 이때 만들어졌다. 그러나 언론인 스스로에 의한 언론개혁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결국 90년대 들어서도 제대로 된 언론의 역할이 부족했다. 1998년에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생긴 것은 언론개혁을 더 이상 언론인에게만 맡겨서는 안 되겠다는 문제의식이 시민들 사이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자본과 벌이는 싸움이 더욱 힘들어

박 대표에 따르면 민주화가 이루어진 90년대 이후 한국 언론이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언론 설립 자유화로 크고 작은 언론사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언론산업이 무한 경쟁시장에 놓인 것이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은 언론통폐합을 추진했다. 신문은 종합지 6개, 경제지 2개, 영자지 2개, 스포츠지 2개, 지역신문은 ‘각 도(道) 1사’로 제한되었다. ‘사이비 언론’을 개혁하겠다는 명분이었으나, 신군부에 비판적인 언론사와 언론인을 통제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그런데 30개가 채 안 됐던 언론사는 87년 민주화 이후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2009년 통계를 보면 신문은 종합지 12개, 경제지 8개, 스포츠지 6개, 지역신문 99개, 무료신문 11개로 늘었다. 방송도 지상파, 케이블TV, DMB 방송 포함 220개, 인터넷 신문은 자그마치 650여 개가 운영 중이다.

이렇게 늘어난 언론사수와 그동안의 광고비 변화를 비교해 보면 놀라운 사실이 발견된다. 1987년부터 2008년까지 20년간 국내총생산(GDP)이 8.7배 늘어난 반면, 광고비는 8.0배 늘었다. 즉 언론사의 주 수입원인 광고시장의 성장이 상대적으로 둔해진 반면, 한정된 광고에 의존하는 언론사는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87년 민주화는 언론사 설립의 자유를 허용했지만 이들의 ‘생존’문제를 고려하진 않았다. 한국 언론은 이제 자사의 존폐위기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말이 있죠. 물을 마실 때는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말인데 언론사가 딱 그 꼴이 됐죠.”

민주화 이전인 70년대 농촌이 살기 어렵다는 기사를 쓰려고 했지만 청와대가 퇴짜를 놓았다. 그들이 한 말은 “너희들 월급 누가 주는데 어디다 대고”였다. 지금은 대형 광고주인 재벌기업들이 같은 말을 한다.

“이전까지 언론은 정치권력의 간섭에 맞서 싸웠는데 이제는 보다 더 근원적인 제약 세력인 자본과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죠. 특히 신문 수익구조 중 광고비 대 구독료가 8 대 2에 달하는 상황에서 자본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고 봅니다.”

▲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는 강의 뒤 학생들과 토론을 벌였다.
“언론은 정치게임의 선수 아닌 심판”

둘째, 두 편으로 갈라진 언론의 파당성이다.

“2008년 촛불시위 당시 이른바 조중동을 보면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모두 무질서한 폭도처럼 느껴지고, 한겨레․경향을 보면 경찰이 과잉 진압하는 모습만 나타나죠. 언론이 지켜야할 전체성을 버리고 제 편에 유리한 모습만 보여주는 겁니다.”

박 대표는 현재 언론 파당성의 기원을 언론을 길들이려는 권력의 역사에서 찾았다. 칠팝십 년대뿐 아니라 최근 민주정부, 참여정부, 이명박정부 모두 정권 창출 뒤 언론개혁을 단행했고, 이런 관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언론의 파당성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의 편에서 정치의 잘잘못을 다루기보다는 특정 정치 세력을 맹목적으로 대변하는 현 언론을 ‘권력 2중대’로 표현했다.

“예전 같았으면 신문사 주필이 김수환 추기경처럼 사회문제에 현답을 줄 수 있는 사람, 정당 지도자 정도의 무게 있는 사람으로 여겨졌죠. 이제는 이런 분들이 선거본부 캠프에 있더라고요.”

권력이나 정치게임에서 제 2, 제 3의 선수로 뛰고 있는 그들을 비판하며 “진정한 언론은 권력이나 정치게임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심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시민기자 시대, 전문기자는 ‘검증된 사실’로 승부해야

셋째, 시민언론의 등장으로 인해 산업언론 및 전문기자의 설 자리가 사라져가는 것이다. 현재 언론은 산업미디어와 소셜미디어로 구분할 수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개인이 자유롭게 언론활동을 할 수 있는 블로그, 트위터, 시민참여 인터넷신문 등이 이른바 소셜미디어다. 이런 미디어는 정부나 자본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독립적이고 영향력도 막강하다.

“언론사는 돈이 많이 들어서 아무나 만들 수 없었죠. 인터넷 시대부터 달라졌어요. <오마이뉴스>나 트위터 등이 등장하면서 누구나 사회에 울림을 주고, 영향을 끼치는 정보를 올릴 수 있게 된 거죠.”

그는 소셜미디어를 ‘새로운 전선’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비자금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가 산업미디어에 전혀 광고를 싣지 못했는데도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가져온 것은 소셜미디어 덕분이었다. 자발적인 시민언론이 산업미디어의 한계를 뛰어넘을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다.

그러나 소셜미디어 시대에서 전문기자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에게 시민언론의 등장은 조금 다른 얘기가 될 수 있다. ‘누구나 기자 할 수 있는’ 시대에서 전문기자의 역할과 존재의미가 불투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전문기자는 시민기자와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답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촛불집회를 촉발한 가장 큰 요인으로 <PD수첩>을 꼽습니다. 소셜미디어가 수많은 복제와 패러디로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지만 결국 그 원전은 <PD수첩>에 있는 거죠. 저는 우리 사회 중요한 사안에 대한 제대로 된 문제제기는 결국 전문기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대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팩트가 뭐냐에 합의가 돼야 토론이 가능해진다”며 “보수와 진보가 그리는 ‘현실’ 그 자체의 모습이 달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인터넷 속 왜곡된 정보를 솎아내고 ‘파당적 진실’에서 벗어나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동의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 ‘제대로 검증된 사실’, ‘부분이 아닌 전체로서의 사실’을 밝혀내는 게 기자의 전문성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문기자로서 어떤 역량을 갖춰야할 것인가? 그는 다음과 같이 짧게 말했다.

“현재 작아지고 있는 언론, 언론인 가운데서 큰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 사회, 사람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어야 합니다.”

저널리즘스쿨의 특강은 <인문교양특강> <사회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거야말로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저널리즘특강>은 보도와 칼럼, 방송제작, 매체창업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담론형성과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해온 분들이 진행해왔습니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언론사의 핵심간부와 논객들이 한 특강을 <단비뉴스>가 중계합니다. 단, 공개를 원하지 않는 몇 분의 강의는 제외됩니다. <저널리즘특강>은 지난 2008년에도 개설된 적이 있는데 강사와 강의내용이 중복되는 것은 내용을 종합했습니다. 이 특강은 우리 저널리즘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도 흥미롭지만, 학생이 쓴 기사를, 함께 강의를 들은 이봉수 교수(특강 진행자)가 데스크를 봄으로써 ‘강연/연설기사 쓰기’ 수련을 겸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특히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학생들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기대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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