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박정헌 기자

▲ 박정헌 기자

‘예술가를 조심하라.’ 매카시즘 열풍이 한창이던 1950년대 미국에서 제작된 포스터의 문구다. 이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예술가는 사회 모든 계층과 어울리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존재다.’ 잘 알려진 것처럼 여기서 ‘모든 계층’은 공산주의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름을 배척하는 졸렬한 배타주의가 애국심으로 포장되던 시대였다. 하지만 예술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매카시가 굳이 예술가까지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일 필요는 없었다. 우격다짐으로 만들어낸 이 난감한 각본을 무대에 올린 연출가는 따로 있었다. 매카시의 든든한 정치적 지지자였던 조지 돈데로다.

돈데로는 당시 미술계 주류였던 모더니즘을 혐오했다. 큐비즘은 무질서로, 다다이즘은 조롱으로, 추상미술은 정신착란으로 구상회화의 전통을 위협한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기존 질서를 부정하는 ‘반체제적 예술’인 모더니즘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반체제적 이념’인 공산주의와 다를 게 없었다. 망상인지 허풍인지 알 수 없는 그의 주장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급기야 현대미술은 미국에 공산주의를 퍼뜨리기 위한 모스크바의 음모라고 천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언젠가부터 우리 문화계에도 매카시에 동조하는 숱한 돈데로들이 나타났다.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진행한 공연을 문제 삼아 지휘자 중징계를 결정한 광주시 당국은 어떤가? 청소년들이 그냥 한번 입어본 옷조차 정치적으로 해석했다. 그 순간 예술은 정다운 이웃에서 서먹한 타인으로 변질된다. 소박한 민중가요조차 주먹 쥐고 내지르는 선동가요로 치부하며 제창을 거부한 적도 있다. 이들 사례는 겉으로 이념과 문화를 내세우며 속으로는 지역감정을 교묘하게 조장한다는 측면에서 돈데로의 황당무계한 반달리즘보다 훨씬 악질이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 보수의 미의식이 사실상 파산 상태라는 데 있다. 옛날 기득권층은 예술가의 물질적 후견인이자 정치적 보호자였다. 메디치 가문은 막대한 재산을 예술 후원에 쏟아 부어 15세기 피렌체를 예술의 도시로 변모시켰다. 페기 구겐하임이 없었다면 우리는 20세기 현대미술사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미술은 투기와 탈세의 대상으로 추락한 지 오래다. ‘탈동조화’ ‘주춤세’ ‘우량주 쏠림 현상’에 이르기까지. 국내 미술시장은 이제 주식시장과 구분하기도 어려운 지경이 됐다. 몇몇 대기업에서 유치하는 예술사업조차 ‘돈이 되는’ 일부 작품에 국한된다. 그 결과 가능성 있는 새로운 예술가가 배양될 토양은 점점 메말라간다.

이런 현실에서 ‘구별 짓기’를 좋아하는 전통적 문화엘리트는 소멸됐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저급한 대중과 고급스러운 자신으로 차별화할 수 있는 능력 자체를 상실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디지털 시대에는 정보 접근성이 발달해 누구나 원하는 작품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전시회장 앞에서 찍은 ‘인증샷’을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로 끊임없이 퍼 나르고, 원한다면 모니터 앞에 앉아 루브르 박물관까지 둘러볼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문화엘리트는 더 이상 선별적인 예술 취향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대중 사이로 스며들어 자신의 세련된 취향을 뽐내는 이들은 더 이상 찾기 힘들다. 대신 대중 밖으로 흘러나와 예술품을 독점하고 아예 주변의 접근 가능성을 차단하는 쪽을 택한다. 원본의 ‘아우라’라도 소유하길 원하는 것이다.

다행히 예술은 역사보다 언제나 한 발 앞서나간다. 돈데로가 그토록 싫어한 모더니즘은 ‘차이의 예술’이었다. 진정성이 아닌 차별성이 작품성을 판가름하는 요소였다. 진품과 모조품의 구별도 흐릿해졌다. 모든 게 예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아우라 개념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초판에 매달릴 때, 예술가는 세상에 재고가 넘쳐난다며 개정증보판을 찍으러 달려나간다. 그러니 제아무리 체 게바라 얼굴에서 ‘이념의 도상학’을 읽어낸다 한들 소용이 없다. 예술은 그런 이들을 ‘무질서’와 ‘조롱’으로 농락하며 끝내 ‘정신착란’으로 몰고 간다. 포스터의 선정적 문구는 돈데로 자기 자신에게 적용되는 것이었다. 그와 유사한 정신세계를 공유하는 우리 내부의 일부 몰지각한 세력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같은 표현에 다른 의미를 담아 그들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싶다. ‘예술가를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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