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패스트푸드점들 분리수거 외면...행정당국도 뒷짐

▲ 롯데리아 종로점에서 내놓은 쓰레기 뭉치들. ⓒ 홍우람
지난 3월 22일 밤 10시 무렵. 매장 정리와 청소가 한창인 서울 종로 일대의 패스트푸드 점포들 앞은 순식간에 작은 ‘쓰레기 매립장’으로 변했다. 롯데리아 종로점 현관 어귀에는 100리터(ℓ)들이 쓰레기봉투 뭉치가 7개나 쌓였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 꽉 찬 봉투 안에는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 포장재와 플라스틱 빨대 따위가 감자튀김 등 음식물 찌꺼기와 뒤섞여 있다. 

지난달 22일 오후 1시쯤 서울 신촌로터리의 또 다른 롯데리아 매장. 분리수거함을 비운 직원이  손님들이 구분해 버린 쓰레기를 100ℓ 종량제 봉투 안에 함께 우겨 넣는다. 쓰레기봉투 안에는 햄버거 포장재, 감자튀김 박스, 쟁반 깔개 등 재활용이 가능한 종이류가 일반쓰레기와 섞여 있다. 같은 날 밤 9시 서울 동서울종합터미널에 위치한 롯데리아 구의점. 청소를 마친 직원들이 매장 입구에 내놓은 쓰레기봉투에는 종이류와 플라스틱 빨대, 음료수 페트병 등 재활용쓰레기가 역시 일반쓰레기 및 음식물찌꺼기와 뒤섞여 있다. 포장재와 종이컵 등 1회용품을 많이 사용하는 패스트푸드점들이 ‘분리수거를 통한 재활용’을 외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 롯데리아 종로점(왼쪽), 신촌로터리점에서 내놓은 쓰레기 봉투. ⓒ 홍우람
환경단체인 자원순환사회연대는 지난 2010년 4월 전국 특별시 및 광역시의 단독주택, 아파트, 음식점 등에서 종량제 봉투를 수거해 내용물을 조사한 일이 있다. 그 결과를 정리한 ’지역사회 재활용가능자원 종량제 혼입률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에서 수거한 6,769킬로그램(kg)의 종량제 봉투 내용물 중 재활용가능자원이 49.9%를 차지했다. 서울시의 경우 57.2%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재활용 개념이 부족하다는 얘긴데, 패스트푸드 매장들이 한 몫 단단히 거들고 있는 셈이다.

분리수거 기준 제각각, 엉성한 수거함도 걸림돌

▲ 서울 소재 패스트푸드 16개 매장 분리수거함 조사 결과. ⓒ 홍우람
얼마든지 재활용할 수 있는 종이, 플라스틱 등 1회용품들이 제대로 분리수거 되지 않는 것은 일단 각 매장에 설치된 분리수거함이 어설픈 탓이 크다. 2013년 현재 롯데리아, 맥도날드, 버거킹, 케이에프씨(KFC), 파파이스 등 5대 패스트푸드회사가 운영 중인 매장은 전국에 1,700여 곳, 이 중 서울에만 430여 곳이 있다. <단비뉴스> 취재팀이 서울지역 매장 중 16곳을 무작위로 찾아가 확인한 결과 분리수거함은 대부분 설치돼 있지만 매장마다 기준이 제각각이고 KFC 종로점 1층처럼 분리수거 투입구 없이 일반쓰레기 투입구 한 곳만 마련된 곳도 있었다. 쓰레기통 자체가 재활용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롯데리아 구의점에서 식사하던 이재영(22•군인)씨는 “가능하면 쓰레기는 분리배출하려 하지만 이 매장에는 음식물쓰레기 투입구가 없다”며 “음식물쓰레기를 일반쓰레기함에 버렸다”고 말했다. 이 매장의 분리수거함은 일반쓰레기용과 플라스틱용만 있었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매장들은 고객이 버린 쓰레기를 직원들이 나중에 다시 분리수거해 배출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롯데리아의 한 점장 말은 조금 달랐다.

“햄버거 종이포장재는 분리수거에서 제외하고 일반쓰레기로 배출해요. 위탁업체에서 수거해 가더라도 재활용 비용이 더 많이 들거든요. 음식물 쓰레기는 거의 안 나온다고 생각해요. 감자튀김 몇 조각 남겼다고 나중에 따로 음식물쓰레기로 분리하는 것도 우습고.”

▲ 케이에프씨(KFC) 종로점 쓰레기통. 분리수거가 불가능하다. ⓒ 홍우람
종이는 재활용하는 비용이 많이 들고 음식물 쓰레기는 소량이기 때문에 분리배출하지 않는다는 말이지만, 현행 법규정에 어긋나는 얘기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12조의2’는 폐기물 배출자가 재활용 가능자원을 종류별로 분리해 재활용하지 않을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데 종이, 합성수지포장재 등을 ‘재활용의무 대상 제품’으로 정하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 직접매립 금지정책’에 따라 음식물 쓰레기도 분리배출 대상이다. 하지만 패스트푸드 매장들은 재활용 가능 자원인 종이, 플라스틱 등과 음식물 쓰레기까지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리고 있는 것이다.

사업자 자율에 맡기고 관리 점검 안 하는 지자체 

이런 상황은 재활용 가능 자원의 분리 배출을 대부분 사업자 자율에 맡기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탓이 크다. 환경부는 지난 2009년 5월 자원을 절약하고 재활용을 촉진한다는 취지로 패스트푸드 업체들과 ‘1회용품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다. 고객들이 1회용 컵을 반납하면 가격할인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사업자들이 1회용 컵 사용을 줄일 경우 정부가 이를 평가해 보상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는 종이컵 재활용에만 초점이 있고 다른 종이류•플라스틱류의 분리배출과 재활용은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런 자발적 협약의 맹점이 지적되자 환경부는 지난 3일 패스트푸드 5개 업체, 커피전문점 13개 브랜드와 ‘1회용품 사용을 2020년까지 2012년 대비 22%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자발적 협약을 다시 체결했다. 이에 따라 패스트푸드점은 2020년까지 매년 매장당 매출액 대비 1회용 컵, 1회용 용기, 1회용 스푼, 종이깔개(트레이맵) 등의 사용량을 전년대비 3%포인트 이상 줄여야 한다. 또한 협약업체가 매년 1회용품 사용 절감실적을 공개하고, 자원순환사회연대가 모니터링 주체로 참여해 협약 이행을 감독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사업자가 협약 이행을 소홀히 할 경우 정부가 법적으로 규제•처벌하는 방안은 이번 협약에도 빠져있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태희 기획팀장은 “강제 규정이 없어 각 업체들이 협약을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나서서 제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패스트푸드점들과 달리 분리수거가 법적으로 강제되는 곳도 있다. 관련 법령 및 조례에 따르면  대형마트, 병원, 호텔 등 대규모 사업장(각 층 바닥 면적이 1천㎡ 이상이거나, 1일 평균 폐기물 배출량 300㎏ 이상)은 ‘분리수거 의무대상시설’로 지정된다. 의무시설로 지정되면 지자체의 지도•점검을 받는다. 또 분리수거 용기 설치와 재활용 가능자원의 분리배출•보관 등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 개선명령을 받는다. 개선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패스트푸드점과 커피전문점, 일반음식점 등 소규모 사업장은 매장규모와 폐기물 배출량이 분리수거 의무대상 시설기준에 미달한다.

▲ 분리수거 점검 및 적발사례가 없다는 강서구의 답변. ⓒ 홍우람
이 때문에 구청 등 지자체들은 지도•점검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패스트푸드점들의 분리수거 외면 문제를 내버려두고 있다. <단비뉴스>가 서울시 25개 구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결과 관악구 등 7개 구청은 지난해 환경컨설팅 등의 형식으로 매장들을 1~2회 점검했지만 적발사례가 없었고 강서구 등 나머지 구청 대부분은 아예 지도•점검 사례가 없었다고 답했다. 동작구는 “관련 자료가 없다”고 밝혀 현황 파악도 못 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25개 구청 중 용산구만 자체 기준(면적 200㎡ 이상 매장)을 마련해 롯데리아 숙대입구점•맥도날드 이태원점•KFC 이태원1매장을 연 2회 점검한다고 답했다. 중구청 청소행정과 김현준 주무관은 “현재로서는 관련 법령도 미비하고 인력도 부족해 사업자 의지에 맡길 수밖에 없는 고충이 있다”며 법령 보완과 담당 인력 확충이 필요함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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