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평론가, "각 영화계가 산업 욕망에 따라 분열된 게 패인"

 

▲ 영화 전문지 기자 생활을 거친 이후 현재는 평론가, 대학 강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영진 교수. 영화계에서 한발 떨어진 전문가의 시각을 담고자했던 게 이번 인터뷰의 취지다. ⓒ 이선필

1990년대부터 영화전문지 기자로 활약했으며 현재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평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영진 교수를 만났다. 그간 기고 글과 여러 인터뷰를 통해 한국 영화에 대한 솔직한 심경을 밝혀온 그는 "결국 근본 원인은 독과점"이라고 현 상태를 진단했다.

중견 감독들의 중도하차 문제가 계속 불거지는 건 그만큼 허약한 한국영화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주는 셈이라는 게 김영진 교수의 생각이었다.

"결국 한국 영화계는 비참한 노예인 상황이죠. 2005년, 2006년까지야 영화계가 대기업을 만만하게 생각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제작은 우리가 하니 너희들은 돈만 대' 하던 시절이었죠. 돈이 팽창하면서 가짜들이 또 너무 많이 들어왔어요. 대기업 입장에선 투자만 10년 정도 하다 보니 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판단을 한 거죠. 지금 봐요. 당시 내로라하던 제작자들이 이젠 대기업을 찾아다니며 설명하러 다니고 굴욕적인 조건이라도 계약을 체결하는 등 그런 상황이 된 겁니다."

아이템만 있으면 어떤 영화든 만들 수 있던 시절 안일하게 현상에 대처했던 제작사의 책임을 지적하는 말이었다. 영화 제작사들이 마음만 먹으면 투자를 끌어와 영화를 만들어 내던 상황에서 대기업이 그저 돈만 댄 건 아니었다.

제작사가 감독과 일하는 방식을 보며 결국엔 감독이 한국 영화의 주요 기획을 진행하며 좌지우지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결국 제작사보단 감독과 직접 계약하는 방식으로 대기업 스스로가 영화 제작에 뛰어들게 한 단초가 제공된 셈이었다.

 

▲ 영화 촬영 당시 이명세 감독. ⓒ 청어람

대기업의 시스템 장악? 더 문제는 이들의 관료적 문화

많은 영화인들이 대기업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그 온도차는 다르다. 크게는 영화의 제작 배급 그리고 극장까지 갖고 있는 독식구조를 문제 삼는다. 물론 독식구조라지만 영화의 저변을 넓히고 극장 또한 대거 운영하면서 관객들의 영화 접근권을 늘렸다고 공을 인정하는 이들도 있다.

이익창출이 목적인 대기업이 한국영화에 투자하며 그간 제작사가 방만하게 운영했던 과를 상쇄하는 부분이 있는 건 일견 사실이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다. 김영진 교수는 대기업 특유의 문화가 영화 산업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걸 문제로 짚었다.  

"더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대기업 실무자들이 관료적으로 (영화 산업을)대한다는 거죠. 대기업 속성 자체가 전문적이지 못해요. 오너(경영자)부터 기준이 불분명하고요. 감독이나 스텝 등 사람을 키운다는 생각도 부족하죠. 자기네의 영화는 큰 고민도 안하고 그 자리에서 투자를 결정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니 영화계에선 우려와 반발이 있는 거죠.

물론 좋은 사례도 있었습니다. 영화계를 이해하면서 융통성 있게 투자와 기획을 얘기하던 인사도 있었지만 성적이 좋지 않자 금세 바뀌었죠. 밑에 있는 사람들이 소신을 밀어붙이는 구조도 아니고요.

옆에서 보기엔 영화에 대한 위험요소만 제거하려는 시스템이에요. 이러면 누구나 다 영화 만들죠. 냉장고 만들듯이 기계적 매뉴얼로 영화를 만들어요. 시나리오를 독해시켜서 몇 가지 장면 추가하게 하고 모니터 시사를 해서 재미없다는 부분은 드러내고 하는데 이렇게만 하면 영화가 재밌어지나요?"

 

▲ 2007년. 김대승 감독이 영화제 기간 중 한미 FTA 반대 및 스크린쿼터 원상회복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 ⓒ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창작 동력 잃어버린 영화계, 영화계는 왜 창작자 편에 서지 않나

김영진 교수는 현재 감독들이나 제작자들의 대기업에 대한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을 밝혔다. 몇 차례 기회가 있었으나 그걸 살리지 못하고 날려버렸다는 게 그의 분석이었다.

"놀라운 단결력과 응집력이 있었죠. 스크린 쿼터 때도 그랬고 일반 사람들의 굉장한 지지를 받아 그걸 영화계 중심 화두로 올렸어요. 그러다가 산업 욕망에 따라 자신들이 분열됐죠. 독과점 문제를 짚어야 한다고 주변에서 그렇게 얘기했어요. 저 역시 2003년부터 지적했고요.

독과점 지적보단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게 감독들이나 제작자들의 입장이었어요. 그들 마음엔 다음 승자는 자기 자신이란 생각이 있던 거죠. 생각해보면 자기 영화를 수 백 개에서 많으면 1000개의 스크린에 깔 수 있다는데 그 외의 것이 보이겠어요? 그런데 지금 봐요. 결국 숨 막힐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잖아요.

일각에선 자꾸 영화진흥위원회 탓을 하는데 정치권력 하에 있는 영진위가 얼마나 힘이 있겠어요? 이건 선명하게 창작 대 자본의 싸움이라 명명하고 영화계는 창작자 편에 들어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야죠. 그러다 사람들의 반응이 나오면 시스템을 수정해나가고 그래야하는데 지금은 그런 동력을 잃어버린 상황이에요."

 

▲ 스크린쿼터 관련 행사인 '문화침략 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문화제에 참석했던 배우들의 모습. ⓒ 오마이뉴스

 

▲ 2006년 당시 스크린쿼터 축소에 항의하며 1인 시위를 벌였던 임권택 감독. ⓒ 오마이뉴스

결국 시스템 논의 꾸준히 해야...서로 주고받는 시스템 마련이 중요

영화계의 안일한 인식과 대처는 결국 투자·배급, 그리고 극장까지 소유한 대기업들이 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한 원인이었다. 갈수록 영화 창작자는 소외되는 구조로 바뀌어 온 셈이다.

일례로 현재 6대4인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 분배 비중을 살펴보자. 겉으로 보면 제작사가4를 가져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기업이 투자를 하면서 극장까지 보유(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하고 있는 게 현실이기에 분배는 8대 2정도 구도로 바뀐다. 여기에 배급까지 위에서 언급한 대기업이 하고 있으니 배급료도 챙기게 돼 실수익은 대기업이 9, 제작사는 1을 가져가는 구조까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영화계 너무 위축됐다는 게 현 시스템의 문제죠. 결국 창작자가 너무 힘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물론 대기업의 독과점도 깨져야하죠. 할리우드도 안하고 있잖아요. 그곳은 제작사가 극장을 못 갖는 시스템인데 우린 대기업이 제작 투자 배급 상영까지 다하죠. 심하면 수익 분배 비율이 9대1이 되는 현실입니다.

생산자가 1을 먹는 구조는 비전이 없는 구조에요. 이걸 영화 산업이라고 부르기도 창피합니다. 일례로 케이블TV에서 영화를 상영해도 제작사 같은 생산자는 돈을 못챙겨요. 할리우드는 그게 됩니다. DVD 하나를 빌려가도 다 카운터가 돼서 제작사에 분배를 하죠.

물샐틈없이 수익을 가져가는 독과점 권력인데다가 그 권력이 그렇게 전문성 있지 않은데 큰 문제가 있어요. 겉은 할리우드를 따라가지만 속은 관료적인 집단이죠. 창작자 입장에선 영화가 흥해도 별로 유쾌하지 않아요. 이렇게 장기적으로 가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영화계가 이렇게 버티고 있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실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떠나고 있는 현실이에요.

궁극적 문제는 독과점 권력이 너무 비대하다는 건데 이들과 영화계가 서로 수평적 관계로 가자고 논의하는 것도 이미 망상됐어요. 하청관계죠. 최소한 일정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야 제작사도 힘이 설 수 있어요. 영화사가 요즘 기획 개발도 안하잖아요. 또 함께 제안하고 성명서를 내는 움직임도 요즘 없어졌어요. 그런 부분부터 서로 인식을 같이 해야죠."  


* 이 글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졸업생 이선필 기자가 오마이스타에 보도한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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