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법정실화극 사법개혁을 겨냥하다

19일 개봉에 관객도 사법부도 팽팽한 긴장

▲ 영화 <부러진 화살> 포스터. ⓒ 아우라 픽쳐스
어디로 날아가 누구를 꿰뚫을 것인가? <부러진 화살>이 19일 개봉을 앞두고 활시위에 매겨졌다. 관객들도 활처럼 팽팽하게 기대감에 부풀었다. 언론·VIP·일반시사회를 통해 <부러진 화살>이 공개된 뒤 17일 현재 이 영화는 10점 만점에 다음 9.7, 네이버 8.91, 네이트 8.1이라는 높은 평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 영화는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거장들의 신작이나 화제작을 주로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돼 상영 직후 13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다.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관계자는 기립박수가 터져 나와도 보통 3분 이상 가지 않는다며 대단하다고 평했다.

<부러진 화살>은 2007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석궁 테러 사건'을 소재로 한 법정실화극이다. 극 중 인물인 박준 변호사(박원상)의 말처럼 대한민국 사법부에 날 선 칼을 직접 들이대는 작품이다. 영화의 핵심인 '석궁 테러 사건'은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교수지위 확인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하자 담당판사였던 박홍우씨를 찾아가 석궁으로 위협한 사건을 말한다.

"이게 재판이야, 개판이지"

"안 지켜서 그렇지 법은 아름다운 거요. 수학과 똑같죠. 문제가 정확하면 답도 정확합니다. 제발 법대로만 해주십시오."

이 영화에서 주인공 격인 김경호 교수(안성기)는 '법은 아름답다'며 '법대로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안 지키는 게 문제'라며 원칙을 중시한다. 고지식하다. 스스로 보수를 자처한다. 반면 법을 전공한 박 변호사는 '법은 쓰레기'라거나 '증거인멸'을 외친다. 원칙이 통하지 않으면 불법을 행사해서라도 잘못을 바로 잡으려 한다. 법에 대한 인식이 너무 다르다. 그러나 두 인물은 힘을 모아 법 위에 군림하는 사법부의 폭거에 저항한다.

석궁 테러 사건은 당시 '법관에 대한 테러'로만 이슈화했다. 사법부는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재판장 집에 찾아와, 잘못하면 생명의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흉기를 사용해 테러를 감행했다"며 흥분했다. 그러나 <부러진 화살>은 법을 다룬다는 이유로 최고의 존경을 강요하는 사법부가 석연치 않은 재판 진행과 판결로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에 대한 형량도 과도했다고 묘사한다.

영화는 석궁 테러 사건에 대한 진실 공방을 자세히 보여준다. 공방전이 극의 3분의 2쯤을 차지한다. 영화를 관통하며 깔리는 의혹은 사법부가 이 사건을 법원에 대한 도전으로 예단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부장판사의 옷에 묻은 혈흔을 검증해 달라는 김 교수 쪽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장에서 발견된 화살의 개수와 화살이 옷을 관통했는지 여부 등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잘 모르겠다'며 무시된다. 김 교수는 법정을 빠져나오며 취재진을 향해 외친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 영화 <부러진 화살> 스틸컷. ⓒ 아우라 픽쳐스
  
법은 아름답지만 재판은 아름답지 않다

영화 속에서 김 교수는 법에 복종하지만 법관에게 머리 숙이지 않는다. 그는 검사를 심문하고 판사를 추궁한다. '이는 몇 조 몇 항에 위배되는 것이 아닙니까'라며 따져 묻고, '검사, 판사를 몇 조 몇 항에 의해 고발합니다'라고 외친다. 반면 판검사는 김 교수의 말에 정당한 반박을 하지 못하고 '안 됩니다', '못 합니다, '필요 없습니다', '기각합니다'만 외친다. 판사-검사·변호사-피고인의 위계질서가 무너진다. 오랫동안 법과 법관을 동일시해왔던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재판장님은 100여 년 전 프랑스 군사재판에서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간 드레퓌스 사건을 알고 계실 겁니다. 당시 재판부는 진범이 잡혔는데도 당국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진실을 은폐한 채 드레퓌스에게 종신형을 선고했지요. 그런데 100년도 더 지난 21세기에 대한민국 사법부에서는 이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억지재판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울분을 토하는 박 변호사의 마지막 변론이다. <부러진 화살>은 사법부가 정의와 진실의 저울추가 아닌 새로운 무게추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위험성을 보여준다.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혹은 법률가의 지배를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사법부의 무시무시한 권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누가 보더라도 타당한 반론을 쉽게 묵살하는 판사의 모습은 우리가 과연 법치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제2의 '도가니' 되나

지난해 우리 사회는 영화 <도가니>가 상영되면서 '사법 정의가 죽었다'고 분노했다. 광주 인화학교 성폭행 가해자 솜방망이 처벌, 뿌리 깊은 사법부 전관예우 관행, 재판부와 검찰의 유착에 대해 사회의 분노가 폭발했다. 지난해 12월 정봉주 전 의원이 징역이 확정돼 형무소에 수감되던 날도 사법부 비판으로 여론이 들끓었다.

▲ 영화 <부러진 화살> 스틸컷. ⓒ 아우라 픽쳐스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점점 커지는 현실에서 사법부의 대응은 사법개혁이 아니라 내부단속으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듯하다. 대법원은 지난 11일 각급 법원 공보판사들에게 부러진 석궁 화살이 증거물로 제출되지 않은 이유와 화살이 옷을 관통했는지 여부에 대한 자료를 발송했다. 영화 <도가니>로 국민적 불신을 받았던 법원이 다시 논란이 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내부단속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중국 은나라 마지막 임금이 폭정을 일삼다가 반란이 일어나 자살하자 주나라 무왕은 시신에 화살 세 대를 날렸다. 하늘을 대신해 벌을 준 것이다. <부러진 화살>은 누구를 벌할 수 있을까?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