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최일구 MBC 앵커, 청춘에게 희망을 전하다

열망에는 아픔이 따를 수밖에

‘그렇게 돌아다니지 말레이~’, ‘LA갈비가 아니라 군대갈비’ 등 수많은 어록을 만들어 낸 MBC 뉴스데스크 최일구 앵커가 지난 9일 충북 제천 세명대학교를 찾았다. ‘청춘에게 전하는 희망메시지’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에는 200여 명 학생들이 강의실을 메웠다.

“한 누리꾼이 최일구 앵커 강의는 개드립(순간적인 재치를 뜻하는 애드립을 비꼬아 부르는 말)만 하고 남는 게 하나도 없다고 하더군요.”

▲ 최일구 앵커가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정혜정

최 앵커의 말에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종이쪽지에 유머를 적어온 최 앵커는  개그를 섞어가며 강연을 했다. ‘권위주의’를 없앤, 위트 있는 뉴스멘트로 화제가 된 최 앵커는 강연에서도 시종일관 재치 있는 입담을 자랑했다. 그는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의 말을 인용하며 ‘유머는 21세기 우리 사회를 지배할 새로운 힘’이라며, 유머를 생활화하는 것이 소통에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 앵커는 ‘현재를 즐기라’는 뜻의 불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이용해 ‘카르페 파시오(Carpe Passio)’란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파시오(passio)는 ‘아픔’이란 뜻이다. 열망을 뜻하는 영어 단어 passion이 여기에서 나왔다. 그는 열망에는 아픔이 따른다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말을 이어갔다.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와 논을 팔았을 정도로 당시에도 등록금이 비쌌어요. 등록금을 버느라 젊은이들이 고생하는 것은 알지만 이전에도 청춘은 힘들었습니다.”

청춘아 아프냐? 나도 아프다

그는 주로 자신의 경험을 얘기한 뒤 “청춘아 아프냐? 나도 아프다”며 청춘들을 위로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겪었던 경험도 들려주었다. 당시 오전 11시였는데도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꽉 차 있었던 것이 인상 깊었다고 한다. 대부분 실업자였던 그들은 일거리를 찾아 새로운 것을 공부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최 앵커는 자기 분야에 대한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한민국은 고졸의 80%가 대학에 진학하고, 매년 배출하는 박사가 일만 명을 넘는다며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갖춘 청춘들이 절망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치’가 중요하고, 학생들은 ‘공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철학과 같은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고 올바른 세계관과 인생관을 정립한다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조언했다.

▲ 다양한 손짓으로 강연 집중도를 높였던 최일구 앵커(왼쪽)와 강연 참석자들 모습. ⓒ 정혜정

그는 경희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교수가 학생들에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자, 벌떡 일어나 “한국 최고의 신문기자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자신이 일찌감치 목표를 정하고 기자의 꿈을 향해 달려갔기에 비록 신문기자는 아니지만 방송기자로 성공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영화 <터미네이터> 주연으로 유명한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꿈을 이뤘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는 자신의 꿈 세 가지를 노트에 적었다고 한다. 액션배우가 되는 것, 케네디 가문의 여자와 결혼하는 것, 2005년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피나는 운동을 한 끝에 지금의 몸을 만들었고, <터미네이터>의 주인공이 됐다. 2년 앞당긴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됐다. 최 앵커는 꿈을 적어 놓으면 반드시 이뤄진다고 말했다.

“꿈은 결국 수박처럼 큰 열매를 맺게 되고,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여 긴 대나무가 됩니다.”

‘대전환’의 전략과 ‘대장정’의 노력

그는 이처럼 ‘대야망(大野望)’을 가질 것을 부탁했다. 또 직진보다 빠른 우회의 길이 있을 수 있다며 ‘대전환(대轉換)’과 같은 인생의 전략을 짜고, 10년이면 미친 짓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며 ‘대장정(大長征)’과 같은 노력을 주문했다.

강연 첫머리에서 농담 섞어 말했듯이 그의 강연에 아주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이날 강연을 들은 손미진(미디어창작학과•20)양은 “최 앵커의 인생 경험담을 좀 더 듣고 싶었는데, 꿈을 꾸라는 식의 추상적인 말이 많아서 기대에 못 미쳤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청춘의 눈물을 어떻게 닦아줄까’로 시작한 강연은 학생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가 주를 이뤘다.

▲ 최일구 앵커는 "남들과의 비교는 무의미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정혜정

하지만 그의 강연에는 울림이 있었다. ‘자신의 꿈을 크게 외쳐보라’는 최 앵커의 주문에,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일어나 자신의 꿈을 외치기도 했다. 사인을 받으려는 학생들이 한동안 최 앵커를 둘러쌀 정도로, 그의 인기는 높았다. 장희재(미디어창작학과•20)군은 “그다지 특별한 얘기는 아니었지만, 앵커를 실제로 만나 이야기 듣는 것만으로 즐거웠다”고 말했다.

세명대 미디어창작학부 김기태 교수는 “저명인사들의 성공 스토리를 들으며 학생들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우기 바라는 마음에서 그를 초청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MBC 문지애 아나운서를 초청해 특히 여학생들과 소통하는 장을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희망 부재’ 시대의 ‘희망 강연’ 붐

이처럼 올해는 사회 저명인사들이 ‘청춘’에게 ‘희망’을 전하는 강연이 유행을 이뤘다. 전국 각지에서 열린 ‘청춘콘서트2.0’에서는 안철수 교수, 김여진과 김제동 같은 이들이 연사로 나섰다. 지난 14일 경기도청이 주최한 ‘2011 청춘희망콘서트’에서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김난도 서울대 교수 등이 ‘청춘이 희망이다’를 주제로 학생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도 전국 각지에서 콘서트를 열어 2040을 대상으로 ‘쫄지마’를 외쳤다. 기업도 ‘희망’ 나눔에 동참했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삼성 커뮤니티 ‘영삼성’은 ‘열정락(樂)서 콘서트’를 열었다. 모델 장윤주, 가수 성시경, 제일기획 최인아 부사장 등의 멘토가 청년들에게 희망 메시지를 전했다.

▲ '청춘'과 '희망'을 주제로 한 강연이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저자 서울대 김난도 교수(왼쪽 위). '열정樂서' 콘서트에서 노래 부르는 성시경(아래). '청춘콘서트2.0' 포스터(오른쪽).

강연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작년 말 서울대 김난도 교수가 펴낸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교보문고 2011년 연간 베스트셀러’와 인터넷 서점 예스24 판매부수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와 박경철 원장의 <자기혁명>이 교보문고 순위 5위와 9위에 올랐다. 김제동이 사회 각 분야 멘토와 인터뷰한 내용을 실은 <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도 예스 24에서 1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올해 서점가에는 멘토를 찾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올해 ‘희망 강연’이 많았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희망이 부재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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