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금태섭 변호사의 '법을 향해 던지는 인권의 물음'

지난 10월 19일 전남 광주의 한 중학교에서 여학생이 선생님의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 몇몇 언론들은 이를 '교권 붕괴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규정지었다.

하지만 금태섭 변호사는 다른 진단을 내놓았다. 지난 3일 그는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인권센터 설립기금 마련을 위한 주춧돌 강연회- 법을 향해 던지는 인권의 물음'에서 "이번 일은 오랫동안 학생인권이 보장받지 못한데 따른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금 변호사는 "공부를 잘해 선생님들이 예뻐해 주셨지만, 한 명의 인격체로 존중받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자신의 학창 시절 경험을 이야기 했다. 이어 그는 "청소년들은 오래 전부터 머리카락 하나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며 "그 부작용으로 청소년 인권문제를 어렵게만 생각해 침묵을 지켰고, 결과적으로 교실이 무너지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 '법을 향해 던지는 인권의 물음'이란 제목으로 강연 중인 금태섭 변호사. ⓒ 박소희

"인권은 어렵고 귀찮은 문제"... 꾸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

'청소년의 인권뿐만 아니라 인권이라는 것 자체가 어렵고, 때로는 우리를 귀찮게 하는 문제'라는 것이 그의 생각. 금 변호사는 "그래서 인권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며 "인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시간을 갖고 들어주는 일"이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12년 동안 살인사건 등을 파헤치는 '금태섭 검사'였다. 하지만 2006년 <한겨레>에 실은 글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 내부 논란을 낳자 '형사소송 전문 금태섭 변호사'가 됐다. 변호사 사무실 개업 직후 그는 동거남과 말다툼 중 상대방을 말리려다 실수로 찔러 '살인범'이 된 젊은 여성의 변론을 맡는다.

피고는 재판 당시 범죄사실을 인정했으나 '상처만 내려고 했는데 어떻게 피해자가 죽게 됐는지' 알고 싶어 했다. 금 변호사는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의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판사는 "당연히 살인죄인데 왜 아니라고 하냐"고 거부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유죄였다. 하지만 유족이 '안타깝지만 처벌은 원하지 않는다'고 한 덕분에 선고 형량은 줄었다. 그러나 판결 직후 피고인의 얼굴은 만족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의사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 재판장이 못 듣게 해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재판장이 보기에는 피고가 평범한 사람이고, 자신은 법관의 길을 양심적으로 걸으며 증거를 바탕으로 공정하게 재판했다고 여겼을 겁니다. 하지만 상대방은 억울한 생각이 드는 거죠."

금 변호사는 "형량에 상관없이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데…'라는 아쉬움을 남기지 않았다면 억울함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아무 잘못도 없는데 소수자라는 이유로 할 말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우리 사회는 '차별하지 않으면 된다'고 하는데, 그것보다 먼저 얘기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 2006년 <한겨레> 연재를 알리는 게시물.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은 1회가 최종회가 됐고, 그는 '검사'에서 '변호사'로 직업을 바꿨다. ⓒ 한겨레

이야기 충분히 듣기 = 인권 보호 = 진실 찾기

금 변호사는 또 "인권을 보호하는 일은 진실을 찾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며 초임 검사 시절 들은 사례로 피의자 인권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 경찰관이 여자친구를 죽인 혐의로 붙잡혔다. 그는 정황상 범인일 가능성이 높았고, 경찰도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하지만 진술은 갑작스레 검찰 조사에서부터 번복됐다. 재판이 대법원까지 이어졌을 때, 다른 사건 수사 중 '우연히' 진범이 잡혔다. 담당 검사는 금태섭 변호사 등 후배들에게 이 사건을 설명하며 '좀 더 철저하게 수사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금 변호사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상황에서 진범이 따로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며 "정치적 외압이나 전관예우 등 없이 선한 의도만으로도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2006년 '현직 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쓴 이유도 '나는 열심히 일하니까, 공정하게 하니까'를 넘어 검찰로서 책임을 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판·검사와 변호사들이 있다 하여도 그의 표현대로 법조계가 "국민들의 불신을 받고 있는 부끄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금 변호사는 그 원인으로 '끼리끼리 문화'를 꼽았다.

"지금이야 변호사가 많아졌지만, 예전에는 숫자가 적어 전국의 판사, 변호사, 검사들 모두 알고 지내는 사이였습니다. 자연스레 그 집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리끼리는 도와주자'는 식이 된 거죠. 저는 검찰이 친정인 만큼 지금도 깊은 애정이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개혁해서 괜찮아 지길 바라는 마음은 더 크고요. 솔직히 어떤 조직이 변하려면 외부적인 충격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국민들이 때려서 가르쳐 줄 필요가 있습니다. 비판받으면 변합니다."

그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어도 변호해야 인권이 살아 있는 것이기에 인권은 굉장히 어렵고, 귀찮을 정도로 지키려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조금씩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강의 참석자들에게 무료 변론 1회 제공을 약속하겠다. 이것이 바로 내 실천이다"라고 밝히며 강의를 마무리 지었다.

주춧돌 강연회는?

'주춧돌 강연회'는 지난 3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첫 테이프를 끊은 후 소설가 공지영씨, 하종강 노동운동가와 영화배우 김여진씨,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 등도 함께 했다.

재단법인 '인권재단 사람'이 정부·대기업 후원 없이 인권센터 설립에 필요한 기금을 모으기 위해 마련한 강연회다. 참석자들이 원하는 만큼 내는 강연 참가비는 인권센터의 '주춧돌'을 놓는 데 쓰이게 된다.

11월 11일에는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와 성공회대 교수 포크그룹 '더 숲 트리오'가 출연한다. 또 방송인 김제동씨가 진행하는 이야기 콘서트 '아름다운 동행'이 서울 서대문 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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