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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서 외면받는 ‘백년 만의 귀향’
[단비현장] 학교와 직장에서 차별이 일상인 고려인 3∙4세
2020년 12월 14일 (월) 12:29:04 양수호 기자 protects55@naver.com
지도자가 무능해 나라가 쇠락하면 백성들이 여기저기 떠돌게 된다. 무능한 군주 때문에 국운이 기울고 봉건 지주와 관리들의 수탈이 극심해지던 1863년, 함경도 지방 농민 13가구가 두만강을 몰래 건너 연해주 포시에트로 이주했다. 이렇게 시작된 유랑민의 행렬로 1870년대 중반에는 1만명이 넘는 조선 백성들이 연해주 곳곳으로 넘어갔다. 그나마 국경 너머 조국이 건너다 보이는 곳에서 다시 돌아갈 날을 기다리던 이들은 1937년 스탈린 정권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이역만리 먼 곳으로 쫓겨났다. 110~130년이 지나서야 선조들이 꿈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고려인 3세와 4세들이 속속 귀국하고 있지만, 이 나라는 그들에게 또 하나 싸늘한 이방(異邦)이다. <단비뉴스>가 조국에 돌아와 차별당하고 홀대받는 고려인 후세들의 귀국 후 정착 실태와 문제점을 취재했다. (편집자)

중앙아시아까지 쫓겨난 고려인들…110년 만의 귀국

지난 2014년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예막심(Ye Maksim∙21) 씨는 고려인 4세다. 그의 증조부는 1890년대 말 가족을 이끌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했다. 증조부는 할아버지와 함께 블라디보스톡에서 황무지를 개간해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으로 쫓겨났다. 그곳에 정착한 증조부와 할아버지는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어렵고 힘든 세월 속에서 예 씨의 아버지(54)를 낳았고 막심 씨도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는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한 뒤 성을 조선에서 사용하던 여씨(呂氏) 성을 그대로 이어받아 ‘예(Ye)’로 정했고, 아버지는 막심 씨에게 ‘여지형’이란 한국 이름을 지어주었다. ‘막심’이란 이름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한국 이름도 지혜 ‘지(智)’와 빛날 ‘형(炯)’을 합해 지혜롭고 빛나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 고려인 4세 예막심 씨가 지난 12일 <단비뉴스>와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할아버지 나라에 와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며 “특히 학교에서 이뤄지는 노골적인 차별과 은근한 폭력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 양수호

예 씨 가족은 지난 2008년 막심 씨 아버지가 재외동포 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증조부가 조선 땅을 떠난 지 110여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왔다. 막심 씨와 어머니는 아버지가 먼저 들어와 자리 잡은 뒤 2014년 한국으로 들어와, 고려인이 모여 사는 경북 경주시 성건동 ‘고려인마을’에 정착했다. 

하지만 예 씨 가족이 큰 기대와 희망을 품고 들어온 할아버지의 나라는 또 하나 차가운 ‘이국(異國)’이었다. 열다섯 예민한 나이에 한국으로 들어와 경주에 있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닌 막심 씨를 맞이한 것은 따돌림과 차별과 폭력이었다. 고려인은 고려인끼리 결혼하는 사례가 많아 비록 고려인 4세대지만 외모는 한국인과 거의 차이가 없는데 우리말이 서툴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는 이유로 따돌리고 차별했다는 것이다. 

돌아온 조국에서 따돌리고 괄시받아

   
▲ 고려인이 모여 사는 경주시 ‘고려인마을’의 근린공원에서 고려인 청소년들이 기타를 치며 놀고 있다. 고려인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따돌림이나 차별을 받는 경우가 많아 자기들끼리 또는 다른 다문화가정 청소년들과 자주 어울린다. Ⓒ 양수호

막심 씨는 중학교는 3학년 한 해만 다녀 학생들로부터 큰 차별은 받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들어가서 한국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고려인으로는 한국어를 상당히 잘하는 편이지만 유창한 수준은 아니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한국 학생들은 수시로 막심 씨를 불러 세워 '러시아에서 온 X밥 X끼' 같은 욕을 하며 조롱했다. 이 학교에 다니는 고려인 학생 넷 중 한 명은 교사가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한국 학생들이 빗자루로 때려 두려움 때문에 학교 가기가 싫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한국 학생들과 조금 차이가 나는 외모를 두고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일이 많아 외모 콤플렉스도 생겼다.

그럼에도 학교와 교사들은 고려인 학생이 받는 따돌림과 차별을 제지하기는커녕 모른 척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고등학교 입학한 지 얼마 안 돼 하굣길에 길을 잃어 행인에게 길을 묻자 면전에서 “외국인이니깐 무시해도 돼”라며 지나가 버린 일도 있었다.

막심 씨와 같은 마을에 사는 고등학생 박 나데즈다(가명∙18) 씨는 막심 씨보다 더 힘든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 2016년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그는 교사가 공지한 수행평가나 과제에 관한 내용을 잘 알아 듣지 못해 한국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외면하거나 일부러 엉뚱하게 알려주어 낭패한 적이 많았다. K-POP을 좋아해 한국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상대를 해주지 않아 베트남이나 필리핀 다문화가정 청소년들과 주로 어울린다. 한번은 수업중에 졸았는데 교사가 같이 졸았던 한국 학생에게는 그냥 일어서라고 한 반면 자신에게는 큰 소리로 망신을 주었다고 한다. 

박 씨는 동생이 아파 병원으로 데려가 러시아어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이 많은 환자 한 사람이 “한국어를 쓰라”고 소리를 질러 급히 자리를 피한 적도 있다. 

   
▲ 경북 경주시 성건동 '고려인마을' 입구. © 양수호

다른 외국인과 달리 고려인 청소년에게는 한국어와 함께 우리 역사와 문화 등을 알고 이해하게 해 빨리 적응하게 해줘야 하는데 그런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남대 세계한상문화연구단 선봉규 교수는 “고려인 동포 청소년 대부분이 중도 입국자이기 때문에 한국어뿐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문화 등 한국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고려인 동포 청소년을 포함한 중도입국 청소년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려인 동포를 포함한 외국인 동포 모두를 사회구성원으로 인식하고 포용적인 사회통합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경주시 '고려인마을' 근처에 있는 성건초등학교 입구. 플래카드에 러시아어로 된 설명이 덧붙어 있다. 이런 외형적인 부분과 함께 고려인 청소년들이 실질적으로 조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양수호

재난지원금 못 받고…취업에도 장벽

힘들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막심 씨는 경북 경산에 있는 대구가톨릭대 아시아학부 러시아어 전공 2학년에 재학 중인데, 주말마다 경주로 내려가 아르바이트를 한다. 처음에는 경주의 한 공장에서 폐기물 수거 아르바이트를 하다 지금은 러시아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한다. 그는 한 달에 버는 30~40만원을 대부분 저축한다. 공장에서 종일 서서 일하는 아버지가 허리 디스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막심 씨는 “주말마다 아르바이트해 버는 돈이 얼마 안 되지만 거의 쓰지 않고 모은다”며 “아버지가 언제 아파 병원 신세를 질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막심 씨는 지금껏 겪은 차별보다 앞으로 맞닥뜨릴 차별과 장벽이 더 걱정이다. 할아버지 나라로 돌아왔으니 당연히 동포와 국민으로 맞아주고 대해줄 것이란 기대를 했지만 그에게 조국은 여전히 외국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아르바이트하는 식당이 영업 제한을 하면서 그마저 수입이 끊어졌지만 모든 한국민이 지원받은 재난지원금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받지 못했다. 또 대학을 졸업하면 조국의 대기업에 취업해보고 싶어도 외국인이란 높은 ‘장벽’이 그를 기다린다.  

   
▲ 중도입국 청소년을 포함한 다문화가정 학생 비율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 교육통계서비스

입국 고려인 8만명…비자 장벽으로 정착 막아 

고려인의 귀향을 더 높게 가로막는 장벽은 비자 문제다. 지금 고려인이 조국으로 들어올 때 주로 받는 비자는 ‘F4 비자’라 불리는 재외동포비자와 ‘H2 비자’로 불리는 방문취업비자 두 가지가 있다. 재외동포비자는 한 번 들어와서 계속 체류할 수 있는 반면, 방문취업비자는 3년마다 국적을 가진 나라로 돌아가 다시 비자를 받아 들어와야 한다. 법무부는 고려인 중 러시아 국적자에게만 지난 2010년부터 해외동포 비자를 발급해주고, 중앙아시아 국적자에게는 대학 졸업 등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방문취업비자를 발급해준다.  

예 씨네 가족은 아버지만 2008년 들어올 때 재외동포비자를 받아 문제가 없고, 어머니는 방문취업비자 종료시점이 다가와 자격시험 등을 통해 비자 연장을 받으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 방문취업비자로 들어온 고려인이 장기체류가 가능한 재외동포비자를 받으려면 국가공인기능사 자격증을 따거나 인구 2만 이하 소도시 산업체에서 1년 이상 근무하거나 국가가 인정하는 사업장에 취업해 2년 이상 성실하게 근무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말이 익숙하지 않고 단순노무직으로만 일자리가 주어지는 고려인들이 이런 자격요건을 갖추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국가공인기술자격증은 한국어가 미숙한 고려인에게는 1차 필기시험조차 통과하기 어렵다. 필기시험을 통과해도 고려인 대부분이 일용직이나 단순노무직에 파견돼 일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전문 기술을 습득할 기회가 없어 자격증을 따기가 매우 어렵다. 

또 소도시 산업체에서 1년 이상 근무하거나 국가인정 사업장에서 2년 이상 근무하려 해도 ‘1년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을 주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고용주들이 대부분 1년이 안 돼 계약을 해지하거나 해고해 이 요건을 충족시키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고려인은 8만~9만 정도로 이 중 40% 정도가 방문취업비자로 들어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3만여 명에 이르는 고려인 동포들이 3년마다 본국으로 돌아가 다시 비자를 받아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다시 들어오면 ‘6개월 이상 체류해야 건강보험 재가입이 가능하다’는 규정 때문에 6개월 동안은 아파도 병원에 가기가 힘들다. 또 비자가 3년마다 종료돼 일이 익숙해질 만하면 그만두고 나가기 때문에 고용주들은 재외동포비자 소지자를 선호한다. 방문취업비자로 들어온 고려인은 단순노무직이나 일용직으로 파견되는 악순환이 고려인들의 정착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안 되는 임금마저 상습 체불 

막심 씨 아버지 세대는 상당수가 재외동포비자를 받아 지속적인 체류가 가능하지만 열악한 임금 수준과 상습적인 임금 체불이 정착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막심 씨 아버지는 한 달 월급이 180만원 남짓 된다. 올해 최저임금 179만5310원을 겨우 맞춘 수준이다. 지금 고려인들이 공장에서 일하면서 받는 월급은 대체로 이 정도 수준이라고 한다. 그나마 적은 월급도 제때 주지 않고 체불한 적이 있어 생활 자체가 힘든 때도 있다.

고려인법률지원단이 지난 2017년 8월부터 2019년 말까지 처리한 법률상담 결과를 보면 퇴직금 지급지연 등 임금체불이 600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산업재해 미보상 40여 건, 민·형사 사건, 부동산 임대차 불공정 계약, 교통사고, 채권·채무, 성폭행 피해 사례 등이 있었다. 고려인법률지원단 정강희 노무사는 “고려인 동포 전문 파견회사 대부분이 불법 파견 형태로 운영한다”며 “많은 고려인 동포들이 임금 체불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주시 성건동 경북고려인통합지원센터에도 하루 10건 정도 접수되는 민원이 거의 다 임금체불에 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센터가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 2년 남짓 되는데 하루 10건 정도 접수되는 민원들이 대부분 임금체불에 관한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센터 문을 연 뒤 고려인을 알선해달라는 취업 브로커의 연락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취업 브로커들은 장기 거주 비자를 가진 고려인을 표적 삼아 취업을 알선하고, 부당한 이득을 취합니다.”

센터 실무를 담당하는 김규호 이사는 “고려인 동포가 한국에서 겪는 문제 중 임금체불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고 말했다. 상당수 고려인 동포들이 방문취업비자로 들어와 체류기간이 한정돼 있고 주거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점을 약점으로 잡아 브로커와 악덕 업주들이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을 주고 상습적으로 임금을 체불하고 있다는 것이다.

   
▲ MBC광주가 지난 2014년 방영한 ‘카레이스키, 고향으로 돌아오다’의 한 장면. 고려인 동포들은 러시아 연해주와 중앙 아시아를 100여년 동안 떠돌았다. Ⓒ MBC광주

떠났던 국민 돌아오는 것…귀향 보장해야 

열병을 앓는 소년의 목소리. "엄마, 우린 들개가 되는 건가요?" 열차 사방엔 널빤지가 대져 있고, 조그만 창문에 양철조각을 대고 못을 박아버린, 바닥에는 건초를 깐 염소 등을 실어 나르는 열차. (중략) "팔려가는 가축도 우리만큼 서럽진 않을 거예요.” “우릴 가축보다 못하게 여기는 거지요."

소설가 김숨이 <떠도는 땅>에서 묘사한 고려인의 실상이다. 러시아어로 ‘카레예츠’(Кореец)로 불리는 고려인은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떠돌다 조국에 돌아와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주변인 또는 경계인으로 머물고 있다. 100여년 전 나라가 지켜주지 못해 떠밀리듯 떠났다가 조국으로 돌아오는 이들이 쉽게 정착할 수 있도록 나라와 국민이 적극 나서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편집 : 이예슬 기자

[양수호 기자]
단비뉴스 기획탐사팀, 시사현안팀 양수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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