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의 문답쇼, 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한국 노동자들이 어떻게 사느냐를 제가 노르웨이 사람한테 이야기하면, 문제는 아무도 제 말을 안 믿는다는 거예요. 그게 인간으로서 가능하냐는 거죠.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집배원들이 하루 15시간씩 일하다 과로사하기도 하죠. 공사장에서는 비계(안전시설)를 잘못 설치해 연간 200여명이 떨어져 죽고요. 그렇게 말하면 믿어주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왜 사장이 감옥에 안 가느냐는 거예요.”

러시아 출신의 귀화 한국인으로 현재 노르웨이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노자(46) 오슬로대 교수가 6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우리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신문 칼럼과 <주식회사 대한민국>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의 군사문화와 비정규직 착취 등을 꼬집어 온 그는 이날 방송에서도 이주민 차별과 성매매 등 부끄러운 세태를 서슴없이 질타했다.

한국의 ‘초현실적 노동 상황’ 외국선 못 믿을 수준

박 교수는 장시간 고강도 업무와 산업재해에 노출된 한국 노동자들의 상황이 외국에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초현실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이윤을 남기는데 반해 한국 기업은 하도급 업체의 납품 단가를 쥐어짜고 결과적으로 인건비를 쥐어짜서 이윤을 남기는 구조”라고 말했다.

▲ 박노자 교수는 장시간 고강도 업무와 산업재해에 노출된 한국의 노동 상황이 다른 나라 눈에는 ‘초현실적’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그러니까 한국은 자본가들에게 꿈같은 나라입니다. 세금도 별로 안 내도 되고, 아주 안 내도 되고, 상속세도 너무 싸고. 그리고 자본가는 마음만 먹으면 정치인을 움직일 수 있고, 국가를 자기 수족처럼 움직일 수 있죠. 그런데 자본가에게 꿈이 되는 순간 노동자들에게는 악몽이 되는 거예요.”

일부에서 ‘대한민국은 강성노조 때문에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박 교수는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9%에 불과하고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수세적 활동에 머물고 있어 한국 노조의 영향력은 산업화한 나라들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노르웨이의 노조 조직률이 50%, 스웨덴은 70%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또 노동권 보장과 관련한 국제노동기구(ILO) 분류에서 한국은 라오스 등과 함께 최하위인 5등급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부끄러운 ‘경제인종주의’, 세계사·인권교육 필요

박 교수는 우리 국민들의 외국인 차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제사면기구(앰네스티 인터내셔널) 조사에 따르면 농업 분야에 종사하는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사실상 노예와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농장에 고립된 채 12시간 이상의 고강도 노동을 하고, 잔업수당을 받지 못하며, 여성노동자는 성추행에 시달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걸 ‘경제인종주의’라고 부릅니다. 피부색 자체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1인당 GNP(국민총생산)순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보다 부유한 나라에서 왔다면 말 그대로 굽실거리는 태도를 취하고,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라면 1인당 GNP 격차에 정비례해서 무례함이 더해지는 것이죠. 그러다가 과연 아시아에서 대한민국이 무엇이 될 것인가? 이건 뭐 국치, 나라의 수치이기도 하고, 상당수의 아시아 사람들에게는 원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박노자 교수는 경제수준에 따라 외국인을 차별하는 태도를 ‘경제인종주의’로 규정하면서 우리 국민들이 장차 아시아인들에게 원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그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이 이민의 문호를 개방해야 하며, 이에 앞서 이주민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아시아 노동자가 ‘현대판 노비’가 되는 적대적 이민사회를 만들 것인지,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보편적 원칙을 보장받는 화목한 사회를 만들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와 함께 세계사교육과 인권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사와 함께 세계사를 가르쳐 이주민 출신 국가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폭을 넓혀야 하며 외국인차별과 반페미니즘 등 인권침해를 하지 않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매매 등 범죄 만연케 한 ‘군사적 남성주의’

러시아에서 대학에 다니다 1991년 서울의 고려대에 교환학생으로 왔던 박 교수는 귀국 무렵 소련이 해체되는 바람에 심한 경제난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생계를 위해 통역 등으로 일했던 그는 한국 정치인과 기업인, 교수 등이 모스크바에서 노골적으로 성매매를 하고, 서울에서 공공기관이 러시아인 접대를 위해 ‘기생파티’를 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과 모멸감을 느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국에선 헤게모니적 남성주의, 즉 여성을 일종의 재화로 인식하는 군사적 남성성이 강하죠. (이들에게) 여성은 ‘어머니 아니면 매춘여성’이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분들(한국 고위층)은 성매매가 나쁘다는 의식 자체가 없더라고요.”

▲ 박노자 교수는 생계를 위해 모스크바와 서울에서 통역 등으로 일하면서 한국 고위층의 노골적인 성매매와 성적 접대관행을 보며 모멸감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그는 한국사회의 군사적 남성주의를 ‘김학의·장자연·버닝썬 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리가 역사에 대해 너무나 반성을 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이어진 것"이라며 “1950년 이후 국가가 포주노릇을 해 왔음을 인정하고 ‘성매매 행위 진실규명위원회’를 만들어 진상을 밝히고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미군부대) 기지촌 여성들을 모아놓고 ‘여러분이 민간 외교관이다’ ‘애국자다’ ‘여러분들 덕분에 미군이 우리나라를 잘 지켜주고 있다’고 강연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포주행위 아니고 무엇입니까.”

‘수면제 한 알 적정, 스무 알은 죽음’ 경쟁도 마찬가지

북유럽의 대표적 복지국가로 꼽히는 노르웨이에서 한국 사회가 배울 것에 대해 박 교수는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그리고 대학평준화를 들었다. 그는 “대학이 등록금 장사를 하는 것, 학생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것은 반(反)교육적 행위이며 사람이 아플 때는 무조건 치료하고 비용은 사회가 마련하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매기더라도 이 부분은 비시장화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또 제주대를 제1 국립대로, 서울대를 제 13국립대로 만드는 등 평준화를 통해 과잉 입시경쟁과 사교육비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 교수는 ‘경쟁이 없으면 사회 발전도 없다’ ‘복지는 산업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놀고먹는 사람을 늘린다’는 반론에 대해서는 “전혀 현실에 맞지 않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높은 수준의 복지를 구현하는 노르웨이의 노동생산성(100)은 한국(70)보다 높고, 복지혜택 만큼 늘어난 가용소득은 내수 활성화와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자신이 일하는 오슬로대학 등의 예를 들어 “동료 간 협력을 막는 개인별 실적 공개, 학생 개인별 성적 공개는 하지 않는다”며 “그래도 자기실현을 위해 모두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회의 지나친 경쟁 문화가 도리어 일할 의욕을 떨어뜨리고 직장 분위기를 망가뜨린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수면제 한 알이면 잠을 자지만 스무 알이면 영원히 잠들게 된다”며 경쟁도 적정 수준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박노자 교수는 “수면제 한 알이면 잠을 자지만 스무 알이면 영원히 잠들게 된다”며 경쟁도 적정 수준을 넘어서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유엔 제재 무관한 남북교류 최대한 서둘러야

오슬로대에서 ‘북한사’와 ‘한국대중문화’ 등을 강의하는 박 교수는 북미대화가 교착상태인 지금 한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남북 관계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산가족이 서로 편지도 주고받을 수 없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서신왕래, 이산가족상봉 등 인도적 교류를 포함해 유엔(UN)이 금지하지 않는 모든 부분에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나가보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 박노자 교수는 상대의 입장에 서보는 ‘역지사지’의 자세로 남북문제에 접근해야하며, 유엔 제재 대상이 아닌 교류 사업은 최대한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

그는 지난 3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수석대변인’ 이라고 공격한 데 대해 “(남북이) 서로의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며 자신은 부대변인이라도 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를 원만하게 평화적으로 풀자면, 제일 중요한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입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하는 거죠. 그러니까 김정은을 적대할 것 없이, 김정은을 이해해보고 그 입장에서 사고해보는 것이 평화를 위한 디딤돌입니다. 평화는 결국 사람이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


경제방송 SBSCNBC는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 2019 시즌방송을 3월 14일부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11시부터 1시간 동안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영상과 주요 내용을 싣는다. (편집자)

편집 : 김지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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