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노동규

▲ 노동규.
그리스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전한 죄로 제우스의 분노를 샀다. 절벽에 달린 채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혀야 하는 형벌 속에서도, 그는 인간에게 불을 전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오히려 제 몸 희생해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가능케 한 보람을 느꼈으리라. 

원시 인간에게 불은 혁명이었다. 불을 섬기는 종교가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인간은 불을 발견하고 비로소 추위를 피했고 화식을 시작했다. 불이 없었다면 오늘의 음식 문화는 물론, 인간 삶 자체가 가능하지 않았다. 그만큼 불은 인간에게 소중했다. 지금의 풍요로운 삶을 가능케 한 신화 속 불의 전령이 숭고한 희생자로 그려지는 까닭이다.

인간을 또 한번 도약하게 만든 현대의 불은 원자력이다. "인류의 미래이자 꺼지지 않는 불." 60년대 초 냉전을 배경으로 한 캐서린 비글로 영화 <K-19>의 소련군 핵잠수함 장교는 원자력 추진 엔진을 보며 감탄한다. 원시 인간이 처음 불을 발견했을 때처럼, 당대 사람들에게 원자력은 곧 희망찬 미래였을 게다. '값싼 에너지'의 대량 공급을 통해 인류의 번영이 가능하리라 믿었다. 오늘 전 세계 발전량 15%를 감당하는 원자력 발전은 특히 한국 같은 후발 공업국에 복음이었다. 지금도 전체 발전량의 30%를 원전에서 얻는 한국은 이 비율을 6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K-19> 속 장교는 핵추진 엔진 오작동에 따른 방사능 누출 사고로 숨졌다. 현실에서도 원전 사고는 언제나 대참화로 이어진다. 스리마일에서 체르노빌, 그리고 오늘의 후쿠시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이것이다. 

인간이 하는 일에 근본적으로 완전함이란 있을 수 없다. 인간이 운영하는 원전의 오작동이나 사고 위험은 상존하는 것이며 그때 피해는 돌이킬 수 없다. 예상을 뛰어넘는 ‘인재’ 앞에 무력한 게 또 인간이다. '값싼 에너지'라지만, 우라늄의 채굴, 운반, 정선, 발전에 따르는 화석연료 소비를 고려한다면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말 또한 왜곡이다. 원전에 수반되는 폐기물 역시 이 지구에서 완벽하게 처리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풍요를 위해 다음 세대에 골칫덩이를 넘기는 파렴치한 짓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곧 인간애였다. 생명과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오늘의 꺼지지 않는 불, 원전에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근본적으로 방사능과 인간 생명은 양립할 수 없다. 지금의 원전정책은 인간애에 기초한 발전정책이 아니다. 인간의 삶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여기는 지구적 ‘핵 자본’과, 에너지 과소비에 익숙한 국민이 원전 포기에 따르는 불편을 감내하도록 설득하지 못하는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합작품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제 간을 내주었던 프로메테우스가 오늘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노동규/성공회대 사회과학부(졸)      
 


 * '<단비뉴스>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제5기 대학언론인 캠프> 참여자의 칼럼쓰기 과제 가운데 몇 편을 골라 '단비발언대'로 소개합니다. 칼럼쓰기 수업의 제시어는 '물', '불' 또는 '물과 불'이었고, 참가자들이 제출한 칼럼들은 이봉수 교수의 첨삭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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