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의림지 다육촌 장금자 사장

충북 제천시 의림지의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널찍한 온실 모양의 ‘의림지 다육촌’이 눈에 들어온다. 제천 토박이 장금자(65) 씨와 아들 부부가 운영하는 다육식물 (줄기·잎에 수분이 많아 두꺼운 육질을 이룬 식물) 가게다. 가게 안에는 500여 종의 크고 작은 다육식물이 쪼르륵 줄을 맞춰 앉아 있다. 이파리들이 모두 촉촉하고 통통하다.

우울증 치유해 준 ‘인생 식물’

화가 모네에게 수련, 고흐에게 해바라기가 있었다면 장금자 씨에게는 염좌(다육식물의 일종)가 있었다. 30대 후반 예고 없이 찾아온 우울증에 고통받던 그는 ‘식물을 키워보라’는 병원의 권유를 받고 어느 날 화원에 들렀다가 염좌를 발견했다. 화초인지 나무인지 분간이 안 되는 조그만 식물에 마음을 사로잡혀 품에 안고 집으로 왔다고 한다. 장 씨는 소설 <어린왕자> 속 어린 왕자와 여우의 인연 같은 ‘인생의 만남’이었다고 표현했다. 볕이 잘 드는 옥상에 두고 물을 주며 키웠는데, 어느 날 보니 흙에 떨어진 잎이 뿌리를 내려 새 생명이 태어났다. 이렇게 잎꽂이를 하다가 다육이의 생명력에 푹 빠져 전국을 돌아다니며 다육식물을 구해 기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2, 3년이 흘렀을까. 장 씨의 우울증은 순하게 치유됐다.

그게 약 30년 전의 일이다. 한국 토종 다육이로 와송이나 돈나물 등이 있지만 당시 우리나라에는 다육이라는 개념이 따로 없었던 시절이다. 외국에서 선인장이 들어올 때 몇 개씩 끼여 들어오는 정도였기에 희귀했다. 어렵사리 모은 다육이를 10년 넘게 키우다 보니 풀 같던 것이 나무가 되고, 작품이 됐다. 급기야 집에 공간이 모자라 동네인 제천 봉양읍 미당리의 원예하우스 한 곳을 빌려 키우기 시작했다.

▲ 30년 넘게 꾸준히 자라고 있는 염좌는 장금자 씨 집의 가보가 됐다. ⓒ 이명주

“처음에는 실패도 많이 했어요. 그때마다 환경을 살피고 온도나 습도 조절을 해가며 노하우를 익혔죠. 흙도 외국 토양과 우리 흙이 다르다 보니 다육이가 제일 잘 살 수 있는 흙을 배합하려고 몇 년씩 수천만 원을 들여 토양 연구를 했어요.”

2000년대 초반, 당시 제천시 농업기술센터의 지동헌 소장이 원예하우스를 방문했다. 지 소장은 “이런 식물은 처음 봤다”며 “혼자 보기 아깝다”고 칭찬했다. 지 소장의 부탁으로 제천 한방바이오 박람회나 의병제 등 지역행사가 있을 때마다 다육이 40여 종 70개 정도를 전시했다. 판매 목적이 아닌 전시회였는데도 다육이를 본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며 구입을 문의했다. 지 소장은 “다육식물이 제천에서는 새롭기도 하고 농업으로 발전시켜도 좋을 것 같다”며 “부족한 기술은 센터에서 지원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본격적인 농사와 판매를 시작하게 됐다.

일본에서 수입한 흙 등을 5톤(t) 혹은 10t 트럭 규모로 구입해 다양한 방법으로 배합하고, 실패했을 땐 버리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많은 비용이 들었다. 이렇게 어렵게 얻은 노하우를 장 씨 가족은 손님들에게 가르쳐 준다. 의림지에 관광을 왔다가 인연을 맺게 된 손님도 많다. 멀리서 손님들이 찍어 보낸 사진을 통해 다육이 상태를 보고 조언도 해준다.

다육식물에 좋은 환경이 사람에게도 좋아

다육식물은 ‘몸에 물이 많다’해서 많을 다(多)자와 몸 육(肉)자를 쓴다. 선인장처럼 잎이 두툼한 것은 그만큼 수분 함유량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 수 있어야지만 다육식물도 살 수 있어요. 사람이든 다육이든 살 자리가 맞아야죠. 그리고 잘 살 수 있게 키워야죠.”

식물에게 중요한 건 햇빛, 물, 바람, 흙이다. 장 씨는 우선 다육이도 숨을 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육이를 컴퓨터나 TV 근처에 두면 전자파 차단효과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실내 환경에 계속 방치해 두면 금세 시든다. 다육이도 지치면 며칠은 바깥에 두고 자연 속에서 회복하게 해야 한다.

건강한 다육이는 실내 공기정화 식물로 큰 역할을 한다. 미세먼지 때문에 작은 틈도 막고 전기로 냉난방을 가동하는 주택에서는 사람이 신선한 산소를 들이마실 확률이 낮다. 공기청정마저도 기계가 하는 집이 있다. 하지만 다육이 같은 식물을 키우다 보면 의식적으로 환기를 자주 하게 되고, 식물에서도 산소가 내뿜어지는 선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여름 밤에 무덥잖아요. 여기 (가게에) 서서 숨을 들이쉬면 다육이들이 뿜어내는 산소 덕에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어요.”

지구 곳곳에 분포된 다육식물은 4만여 종 이상이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에 있는 바오밥 나무 중에는 6000살이나 된 것도 있다고 한다. 다육이 역사가 비교적 짧은 우리나라에서도 60~70살 된 두들레야 종이 존재한다.

다육이는 천천히, 정성 들여 키우는 게 중요하다. 수명이 길어 ‘반려 식물’로 적합하다. “잘 키워서 가보로 물려주고, 대를 이어 키우는 식물”이라고 장 씨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가족이 대를 이어 키운 다육이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긴 어렵지만 실제 몇 십 년 된 다육식물의 가격은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다육이를 사서 함께 기르고, 그렇게 키운 다육이를 자녀가 결혼할 무렵 선물하기도 한다.

▲ 장씨의 가게 한쪽에 전시된 다육이 작품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이명주

아들 부부도 귀농해서 전문성 보태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아들 부부는 제천으로 귀농하기 전부터 장 씨의 적극적 조력자들이었다. 며느리 조양숙(40) 씨는 아들 김윤호(43) 씨와 연애하던 시절부터 다육이에 대한 정보를 찾아 장 씨에게 알려주곤 했다. 8년 전 제천으로 온 아들 부부는 전문적으로 다육식물 재배를 연구하고 있다. 그 동안 장 씨 혼자서 체득한 기술에 아들과 며느리의 전문성이 더해졌다. 특히 며느리 조 씨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원예치료 전공과정이 있는 건국대학교 석사 2년 차다. 제천에서 서울을 오가며 공부하고 있다.

▲ 장금자 씨 (오른쪽)와 며느리 조양숙 씨. ⓒ 이명주

장 씨 가족은 의림지 옆 가게 외에 제천 송학면 송한리에 농장을 운영한다. 이 농장은 유치원, 초등학생 위주로 한번에 20~30명 씩 예약을 받아 체험농장으로 개방되기도 한다. 1년에 방문객 수가 1천여 명에 이른다. 농장 체험교육을 시작한 것은 손녀딸 때문이라고 한다. 9년 전, 손녀딸이 4살일 때 일이다.

"비 오고 나서였는데. 일하던 중에 우리 손녀가 친구랑 소꿉장난 하며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었어요. ‘우리 집에는 다이아몬드가 무지무지 많아. 근데 그건 줄 수가 없어. 해님이 가져가 버리거든.’ 다육이 잎사귀 끝에 맺힌 물방울이 4살짜리의 눈에 다이아몬드로 비친 것도, 증발을 해님이 가져갔다고 표현한 것도 이 아이가 경험했기 때문에 이런 발상을 한 거잖아요. 어린 아이의 상상력에 감동받고 내 눈도 다시 열린 거죠." 

미국 애리조나주나 캐나다 사막지대 등지에선 다육나무들이 커지면 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를 쪼아 둥지를 만들고 그 안에서 알을 낳고 부화시킨다고 한다. 장 씨는 “멀리 이웃나라에서 온 다육이 같은 식물이 한국 땅에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것을 보고 다문화가정에 대한 이해심도 넓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암환자, 치매 노인, 장애인에게도 도움

현재 원예치료사 2급 자격증이 있고 장차 ‘수퍼바이저’를 목표로 공부한다는 조양숙 씨는 농장일, 가게일, 학업, 실습 말고도 일주일 내내 원예치료 수업을 병행한다. 노인이나 장애인에겐 소근육 운동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원예수업을 하고, ‘세대간 통합 수업’에서는 노인들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이끈다. ‘할머니’가 아니라 ‘선생님’으로 불리는 노인들은 자존감이 향상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원예치료의 대상은 치매 노인, 장애인, 우울증 환자 등 다양하다. 조 씨는 아이들이 좋아하거나, 우울증 걸린 엄마들이 호전되는 것을 볼 때 진심으로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 집은 유난히 아픈 분들 많이 와요. 우울증 환자, 암환자... 그런 분들께는 돈도 안 받고 (식물을) 드릴 때도 많죠. 항암치료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손님은 제가 카카오스토리에 올리는 사진만 봐도 좋아하세요. 이런저런 손님과 교류하다 보면 서로 안부도 더 챙기게 되고, 가족이 되는 기분이에요.”

소설가 박완서는 수필 ‘세상에 예쁜 것’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친구가 병실에 누워 5,6개월 된 손자의 발바닥을 응시하며 미소를 짓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포대기 끝으로 나온 아기 발바닥의 열 발가락이 ‘세상에 예쁜 것’ 탄성이 나올 만큼 예뻤다”고. “고목나무가 자신의 뿌리 근처에서 몽실몽실 돋는 새싹을 볼 수 있다면 그 고목나무는 쓰러지면서도 행복할 것”이라고. 다육이의 강인한 생명력을 본 환자들이 치유의 힘을 얻는 것도 같은 원리일 것이다.

장 씨는 다육이 이야기를 할 때 자연스레 의인법을 쓴다. “얘는 ‘엄마 나 지금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는 거구요, 얘는 ’엄마 나 지금 배고파요 물 좀 주세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장 씨는 새 잎이 나오는 걸 보면 ‘순산한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5년에서 10년을 키우고 나면 상품을 판다기보다는 애 키워서 시집 보내는 기분이라고 했다.

▲ 비슷해 보이는 다육식물도 자세히 보면 각각 다르다. ⓒ 이명주

천원짜리 다육이도 소중한 자식들

의림지 다육촌에는 근사하게 키운 작품 다육이도 있지만 옹기종기 모여 있는 1천 원짜리 다육이들이 더 눈길을 모은다.

"천 원이라고 쉽게 보면 안 돼요. 얘들 모두 2년이란 시간과 땀, 노력의 결과랍니다."

사람들이 싸다고 하찮게 여겨 금세 죽이는 것을 보면 장씨 가족은 애가 탄다. 천 원짜리 다육이를 데려가서 그 생명의 개성과 가능성에 주목하며 천천히, 오래, 끝내 거목으로 키워줬으면 하는 것이 의림지 다육촌 가족의 바람이다.

“반려식물을 통해 가정이 화합하고 마음들이 치유된다면 더 바랄 게 없죠. 저희는 앞으로도 쭉 노력하면서 누구나 다육이를 대대로 물려줄 수 있게끔 잘 키우도록 도울 겁니다. 정말 모두가 잘 키웠으면 좋겠어요.”


편집 : 곽호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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