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우수 박민아

▲ 박민아
철들 무렵 인터넷 세상을 떠도는 명언들을 출력해서 책상머리에 붙여 놓는 것이 자위이던 때, 한 글이 눈에 띄었다. ‘하루에 86,400원씩 입금되는 통장이 있다고 상상해보라.’ 이 첫 문장은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이 5000원도 안 되던 나를 사로잡았다. ‘하루가 지나면 이 돈은 사라지기 때문에 하루가 지나기 전에 모두 사용해야 한다’는 구절에서는 정말로 그렇게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상상했다. 내 부푼 기대는 마지막 문장에서 사그라졌지만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86,400원은 당신에게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이며, 어떤 시간이든 소중하게 생각하라. 현재(present)는 선물(present)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얼마나 가치 있게 시간을 쓰고 있는가? 천 원짜리 라면을 끓일 물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 기포가 올라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 어쩌면 나는 십만 원어치 시간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방에서 온라인 축구게임을 하는 동생은 오만 원어치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니, 오만 원어치 이상의 즐거움을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의 가치와 상대성을 생각하면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우리는 공평하게 24시간을 부여받지만 각자 다른 공간에서 다른 용도로 그 시간을 쓴다. 때로는 같은 공간에서도 전혀 다른 느낌으로 시간을 보낸다. 카페에서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커플의 말 한마디 사이에 흐르는 시간과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 사이에 흐르는 시간은 전혀 다르다. 시간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스스로 속도를 바꾸며 때로는 우리를 괴롭히고 때로는 즐겁게 한다. 시간은 대개 우리의 바람과는 반대로 제 속도를 정한다.

당신에게는 현재가 선물일지 몰라도, 다른 누구에게 현재란 차라리 받지 않았으면 하는 선물일 수도 있다. 매일 86,400원이 입금된다고 하여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시간을 잘 써야 하는 이유는 알고 보면 시간이 많기 때문만도 아니고 적기 때문만도 아니다. 당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 행복하든 불행하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반드시 하루라는 시간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초속 5cm>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타카키는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러 가기 위해 기차를 탄다. 때마침 내린 폭설에 기차가 멈추고, 그가 조용히 말한다. “시간은 악의를 품고 흘렀다.” 우리의 시간도 때때로 지독한 악의를 품고 아주 보란 듯이 흐른다. 그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시간은 어쨌든 소중한 것이니 1초, 1분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어쩌면 벌이다.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시간은 주어진 상황에서 자기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쓸 때 의미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그 시간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물속을 헤엄치는 것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고, 좀처럼 그대가 오지 않을 때는 시간을 하염없이 낭비할 방법을 생각해도 좋다. 만약 당신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어 1분을 1시간처럼 쓰고 싶은 욕심을 부리는 것도 좋다. 주어진 시간을 행복한 방향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몫이다. 의미 없게 쓸 때 값진 시간도 있고, 아껴 쓸 때 진가를 발휘하는 시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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