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
조영일 “자신만 바꾸려는 이는 아무것도 못 바꿔”

최고은 죽음에 김영하는 왜 블로그를 닫았나
 
소설가 김영하가 14일 “최고은의 직접 사인은 영양실조가 아니라 갑상선기능항진증과 그 합병증으로 인한 발작”이라고 밝히며, 그동안 운영하던 블로그와 트위터를 닫았다. 최근 요절한 최고은 작가는 한때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한 김영하의 수업을 들은 학생이었다. 김영하는 그녀의 사망 직후 블로그에 ‘어느 영민했던 제자의 죽음에 부쳐’라는 글을 올리면서 이를 밝혔다.

김영하의 마지막 글 내용과 블로그․트위터 폐쇄 소식은 각 언론과 트위터를 통해 빠르게 번져가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왜 온라인상의 소통을 모두 차단하는 것을 선택했는지 설명하는 글은 찾아보기 힘들다. 옛 제자에 대한 애도의 표시라고 하기엔 석연찮다. 의문의 실마리는 그가 남긴 마지막 글 첫 부분에 있다.

“논쟁을 함께 해온 평론가 소조님께 사과합니다. 논쟁의 파탄은 다 제 책임입니다. 다른 이들과 지금의 그 고민을 잘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 김영하의 개인 블로그 '김영하 아카이브'와 조영일이 운영하는 '비평고원'.

신춘문예 낙선자 위로하는 글이 발단

그렇다면 여기서 ‘소조’는 누구일까? 어떤 논쟁이 파탄났다는 걸까? 이 논쟁과 최고은은 무슨 관련이 있으며, 김영하는 왜 온라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각 신문마다 신춘문예 발표가 난 1월 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김영하는 낙선한 문학지망생을 위로하는 ‘작가는 언제 작가가 될까’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는 신춘문예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피력한 뒤 “누군가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긍지”라며 “인정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를 작가로 선언하고 제멋대로 써제끼는 새로운 작가군의 출현을 고대한다”고 썼다.

▲ 조영일의 평론집과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을 소개한 번역서.
그런데 이 글에 <한국문학과 그 적들>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등의 저작으로 한국문학에 날선 비판을 날리는 데 앞장섰던 평론가 조영일이 자신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비평고원’에 반박글을 남겼다. 조영일의 커뮤니티 아이디가 바로 ‘소조(小鳥)’다. 그는 김영하의 충고에 대해 “‘작가로서 누릴 것은 다 누린 자’(즉 배부른 자)의 오만으로 비춰질 위험이 있다”고 받아쳤다. 계속 낙선을 일삼는 지망생들에게는 궁핍한 작가의 현실과 소수 독점구조의 한국 문단시스템 안에서 괜한 시간낭비 말고 다른 직업을 찾으라면서 대신에 훌륭한 독자가 돼라고 조언했다. 덧붙여 그는 “중요한 것은 기존 제도를 거부하는 것도, 자신의 자긍심의 고립되는 것도 아닌, 직접 제도(길드)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학지망생들에 대한 조언으로 시작된 이 논쟁은 바로 작가론, 예술론으로 확대됐다. 김영하는 ‘나르시시즘, 과대망상 그리고 예술가’, ‘낭만주의자는 어떻게 현실을 보는가’라는 잇단 반박글에서 “예술가는 정신적 어린이들이 나르시시즘으로 하는 것”이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당분간 우리 자신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게 결국 내가 낭만주의적 예술가관으로 돌아오는 이유”라며 내면의 예술혼을 강조하는 낭만적 작가관을 펼쳤다.

이에 대해 조영일은 다시 ‘젊은 문학지망생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에서 “자신만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결국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며 “혁명가가 반드시 예술가인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는 모두 혁명가”라고 주장했다. 작가의 사회적․역사적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순수/참여문학 논쟁에 뿌리

조영일의 정리에 따르면, 요컨대 “김영하는 문학계의 제도를 바꾸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내면의 문제와 대결해야 한다는 것이고, 조영일은 운동(길드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문학이고 예술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두 논객의 글에는 이처럼 문학계의 오랜 주제인 순수문학, 참여문학 논쟁과 함께 현재 한국문학과 작가의 수준, 문단에 대한 구조적 문제 등이 어우러지며 온라인상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논쟁은 최고은 작가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새로운 물살을 탔다. 조영일은 이 사건과 관련해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인정을 받지 못한 예술가라도 최소한 밥을 공급해줄 사람은 확보해 놓아야 한다, 부모이든 남편이든. 일전에도 썼지만 문학계에 여성작가가 많은 것은 상대적으로 생계에 대한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팔리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부모 또는 남편이 있기에.”

이는 작가가 글로써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부조리한 문단구조에 대한 자신의 평소 생각을 자조 섞인 어투로 표현한 것이었지만, 여성작가를 비하했다고 언론에 알려지면서 조영일은 온라인상에서 큰 홍역을 치렀다. 

‘제2의 최고은’에게 “세상이 바뀐다는 풍문에 속지마시라”

▲ 김영하의 소설들.
여기에 김영하가 ‘어느 영민했던 제자의 죽음에 부쳐’라는 글을 쓰면서 두 사람의 논쟁은 격해졌다. 김영하는 이 글에서 “아웃사이더 비평가(조영일)가 혹시 공감의 능력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한 게 아닌가”라며 젊은 작가의 죽음으로 비통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맥락을 고려하지 못한 말을 던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제까지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제2의 최고은’들에게 조언했다.

“영악하게 살아남아 예술이 허락한 기쁨과 고통을 누리시라. 세상이 곧 바뀐다는 풍문에 속지 마시라. 타인의 인정이라는 가혹하고 희귀한 복권에 제 운명을 맡기지 말고 자기 소명을 찾으시라. 그리고 부디 살아들 남으시라. 부디.”

이 글에 대해 조영일은 김영하에게 큰 서운함을 드러냈다. 조영일의 말뜻과 맥락을 이해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같은 글쟁이로서 ‘전략적으로’ 자신을 옹호해줄 수 있지 않았느냐는 거였다. 그리고 그는 “이제 작가를 꿈꾸는 분이 계신다면 자신이 얼마나 영악해질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할 것”이라며, 함께 논쟁에서 뒹굴었지만 자신을 비난하는 대중의 편에 선 김영하의 행동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블로거들 ‘다 가져간’ 김영하 비판

여기에 블로거들이 가세했다. 블로거 은사자는 “김영하는 그 글로 논쟁에서 우위도 점했고, 잘나가는 중견작가로서 자존심도 지켜냈고, 아울러 동정과 연민도 받았고, 존경도 받았고, 이슈도 되었다”며 다 가져간 김영하를 비판했다. 이어 레드퀼스, 당고, 일요 등의 블로거들이 각각 조영일의 예술관과, 트위터 메시지를 옹호했다.

최고은 작가와 한예종에서 함께 공부한 소설가  김사과도 블로그에 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글에서 “국민소득이 이만 불에 달한다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다가는 굶어죽을지도 모르는 이런 엉망진창인 이 사회에 대해 혹은 문화예술계의 말도 안 되는 관행에 맞서 목소리를 높이고 투쟁한다고 해서 예술가들의 순수한 창작욕이 타락되거나 고갈되지 않는다”며 조영일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런 맥락에서 김영하는 “오래 고민하다 이 글을 씁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블로그와 트위터를 닫았다.

“어쩌면 조만간 소조님은 문학판을 바꿀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한 작가가 오래 견지해온 철학에 균열을 내셨을 뿐 아니라 여러 동지들을 규합하셨으니까요. (...) 이제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책상 앞으로 돌아가 글만 쓸까 합니다. 사실 거기 있을 때 저는 가장 행복합니다. 이런 자기만족적이고 '낭만주의적인 예술관'을 타인에게 설득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

▲ 김영하가 블로그에 올린 마지막 글.

김영하 절필에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마세요”

그러나 김영하의 미투데이 홈페이지에는 네티즌들의 격려가 쇄도하고 있다. 아이디 francoise는 “지금의 것들이 작가님의 연료가 되어 더 좋은 작품이 태어나길 바랍니다”, 영원히빛나는별은 “작가님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마세요, 소설가의 팬은 웹상에서의 공간이 정말 소중한데…. 정말이지 사람들이 웹상을 떠나게 만드네요. 정말 슬픕니다”라고 적었다.

김영하와 조영일의 논쟁은 이렇게 김영하가 온라인 절필을 선언하고 창작에 몰두하는 것으로 일단 끝났다. 소수 인기 작가들에 모든 관심과 부가 집중되고, 소위 ‘주례비평’, ‘근친서평’으로 자신만의 길드를 공고히 하는 문단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반가운 논쟁이었다. 특히 ‘근대문학의 종언’을 얘기하며 한국문학에 일대 혁신을 요구하는 조영일 평론가의 목소리에 대꾸하는 주류문인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김영하의 논쟁참여는 주목할 만하다.

▲ 김영하의 온라인 절필 선언 후 조영일이 트위터에 남긴 글.

폐쇄적 문단 바꿀 논쟁 이어져야

논쟁은 끝났지만 많은 숙제가 남았다. 젊고 유망한 작가가 작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척박한 문학 환경에서부터 폐쇄적이고 권력지향적인 한국의 문단시스템, 나아가 예술과 문학관에 대한 진지한 자기성찰까지. 문학판과 예술에 대한 치밀하고 냉철한 자기비판 없이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나 점치고 세계문학으로의 한국문학을 외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김영하는 블로그 마지막 글 말미에 "최고은을 예술의 순교자로 만드는 것도, 알바 하나도 안 한 무책임한 예술가로 만드는 것도 우리 모두가 지양해야할 양 극단이라는 것만은 말해두고 싶다"고 썼지만, 이미 최고은의 죽음은 한국사회와 문화예술계에 커다란 파동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젊은 예술가의 기본적인 생계를 어떻게 보장해줄 것인가, 한국문단의 구조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지금 이 시대, 이 사회에서 문학과 예술은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인가. 김영하가 돌아오든, 다른 누가 나서든 논쟁은 계속 되어야 한다.
      

<논쟁 글 사이트 주소>

김영하: 작가는 언제 작가가 될까 http://kimyoungha.com/tc/144?category=14
소조: 젊은 작가지망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http://blog.daum.net/kundera/12610056
김영하: 나르시시즘, 과대망상 그리고 예술가 http://kimyoungha.com/tc/147
소조: 문학이 내게 가르쳐준 것 : 젊은 문학지망생에게 보내는 편지 Ⅱ
http://blog.daum.net/kundera/12610057
김영하: 낭만주의자는 어떻게 현실을 보는가 http://kimyoungha.com/tc/148
소조: 젊은 문학지망생에게 보내는 편지 Ⅲ http://blog.daum.net/kundera/12610109
소조: 나는 어떻게 비평가가 되었는가 : 젊은 문학지망생에게 보내는 편지 Ⅳ
http://blog.daum.net/kundera/12610112
소조: 예술가는 누가 지키는가 : 최고은씨에게 바친다
http://blog.daum.net/kundera/12610121
김영하: 어느 영민했던 제자의 죽음에 부쳐 http://kimyoungha.com/tc/152
소조:  트위터를 탄 문학 : 젊은 작가지망생에게 보내는 편지 Ⅴ
http://blog.daum.net/kundera/12610124
김사과의 입장 http://sooosleepy.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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