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시스템 고치고 현실적 복지제도 만들어야
[두런두런경제] 박경철 제정임 이성철의 생생토크

박경철(KBS 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가 이집트, 예멘, 알제리 등 중동, 아프리카 전역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이집트 국민들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이유는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수십 년간의 독재로 부정부패는 창궐했고, 나라는 가난해졌습니다. 이 와중에 곡물 값 등 물가가 치솟자 민심이 분노했고 드디어 폭발한 것입니다. 국민들은 안정되어 있으면 정치에 신경 쓰지 않습니다. 반대로 정치를 잘해도 안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정조대왕은 침실의 동쪽과 서쪽 벽에 재해를 입은 고을의 이름을 적어두고 해야 할 일들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백성이 배고프면 나도 배고프고, 백성이 배부르면 나도 배부르다. 백성을 돌보는 것은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서둘러야 한다. 잠시도 중단할 수 없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도 정조의 자세를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2월 둘째 주 한국경제, 정리할 게 많은 것 같습니다. 먼저 최고은 작가의 안타까운 죽음. 현실이 꿈을 짓밟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젊고 재능있는 작가가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는 사회 

이성철(한국일보 경제부장): 최근 접한 뉴스 가운데 가장 가슴 아픈 소식이었습니다. 21세기 최첨단을 달리는, 주요 20개국(G20)의 모범이라고 꼽히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인의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큰 짐, 숙제를 일깨운 사건이었습니다.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일부에서 ‘어떻게 젊은 사람이 굶어죽나, 아르바이트라도 하지’라는 반응도 있었는데요, 가난은 질병과 결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고은 작가도 지병이 있었고, 거기에다 굶주림까지 겹쳐 결국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이야기하고, G20회의를 주최해서 국격이 높아졌다는 등 떠들었는데, 사실은 재능 있는 젊은 작가가 질병과 굶주림으로 쓸쓸하게 죽을 수밖에 없는 사회였다는 아픈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투자자나 스타는 돈을 벌어도 다수의 무명 종사자들은 연봉 몇 백만 원도 못 받고 기약 없이 비정규직으로 떠돌아야 하는 영화계의 착취구조가 있습니다. 또 돈 없이 병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의료현실 등 복지 안전망 부재가 드러났습니다. 저는 이런 현실에서 청년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꿈을 향해 달리는,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 있겠고, 또 하나는 잘못된 사회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연대하는 일입니다. 왜곡된 사회구조를 내버려두고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생각만 한다면 소수에 의해 다수가 늘 착취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된 사회구조를 바로 잡는 일은 기성세대도 함께 책임감을 가지고 뛰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저는 이 사건을 보면서 왜곡된 ‘도제제도’에 의한 착취구조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도제의 형식을 취하면서 젊은이들의 꿈들을 착취하는 구조가 곳곳에 만연하고 있죠. 드라마를 보고 파티쉐(제빵기능사)를 꿈꾸는 청년들, 요리를 배우는 사람들, 영화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두 명의 성공사례를 들면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하고, 정당한 대우를 못 받는 것도 다 수업과정이다’라고 말하죠. 

제: 수업 받는 게 맞아도 기본적으로 먹고 살 수는 있게 해줘야죠.

박: 우리나라에서 ‘톱3’안에 드는 유명 요식업체에서 일하는 젊은 요리사나 코디네이터들이 심지어 배달까지 하면서 한 달에 30만 원 받는 걸 봤어요. ‘이렇게라도 우리 회사에서 근무한 게 이력이 된다’는 논리까지 내세운다고 해요. 

이: 이 젊은 작가의 죽음이 문화계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펼쳐진 먹이사슬, 착취 구조, 또 우리가 소위 말하는 양극화와 상생의 문제도 이것과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경제적인 과실이 소수 대기업에게만 집중되고 대부분의 중소 영세업체들은 힘들어하는 현실이나 문화계, 방송계, 연예계에서 일부 기획사와 스타만 돈을 벌고 수많은 종사자들은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는 현실이 무관하지 않습니다. 결국 우리 사회의 전체 구조, 잘못된 먹이사슬 구조, 도제구조 등 이런 것들이 하나로 응축된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박: 정병국 문화체육부 장관이 이들에 대한 처우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저는 사실 레토릭(수사)으로 들려요. 과연 문화안전망 구축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문화예술근로자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해야 

제: 사건 이후 정치권에서 이른바 ‘최고은법’을 논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고은법’이라고 표현하니까 가슴이 저미는 느낌인데, 정말 누군가가 비참하게 희생돼야 대책이 수립되는 부끄러운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국회에는 ‘문화예술인을 근로자로 인정해주자, 이들에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혜택을 조금 더 완화된 조건으로 적용시켜주자, 그리고 가난한 예술업계 종사자들을 위해서 자금지원을 해주자’ 등등을 골자로 하는 예술인 지원법안이 두 건이나 올라가 있습니다. 지난 2009년에 제출됐는데 그 이후로 이 사건이 날 때까지 아무런 진전이 없었어요. 지금 이런 사건이 터지니까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이 그 법을 다시 들여다보고 통과시키겠다고 부산을 떠는데 정말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겪고도 근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그런 이야기 했던 사람들 전부 자리를 내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론도 여기에 대해 일시적인 흥분하고 끝낼 게 아니라 확실한 결실이 나올 때까지 추적보도를 해줬으면 합니다.  

이: 일단 정부가 풀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좀 냉정하게 본다면 문화, 예술계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여기만을 위한 별도의 법이 필요한가에 대한 반론도 있을 수 있고요. 다만 분명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하는 사람은 보상을 받아야 하고 근로의 권리가 보호되는 그런 최소한의 장치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 아까 거론했던 예술인 지원법 같은 경우도 특정 예술계 종사자들만 보호해 주자는 것 보다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의 기준에 일반적으로 잘 안 맞는 직종들에 대해서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확장하자는 의미니까 이런 부분에서는 분명히 진전이 있어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 이번 주 이슈로 들어가 보죠. 제 교수님은 한 주간 어떤 뉴스에 주목하셨습니까? 

제: 예, 지금 우리가 이야기한 부분인데요, 최고은 작가의 사망을 계기로 문화예술, 영화계의 착취구조와 우리 사회의 취약한 복지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조되고 있다는 소식 하나를 짚었고요. 두 번째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에너지 과소비를 바로잡고 녹색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 탄소배출권거래제를 2013년부터 도입하기로 했었는데 경제계의 로비로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뉴스를 꼽았습니다. 마지막으로 3주 가까이 민주화 요구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이집트 사태의 배경에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식량난, 물가불안이라는 경제적 배경이 있고, 또 사태 전개에 따라서 세계경제에 미칠 파장도 만만치 않다는 부분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 저는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금융지주회사들의 새로운 최고경영자(CEO)선임 작업에 구체적인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는 것을 첫 번째 뉴스로 꼽았고요. 두 번째는 최근 시중 자금을 강하게 빨아들이고 있는 ‘자문형랩’ 시장에서 수수료 전쟁이 시작 됐다는 뉴스, 세 번째는 거대 공룡 통신회사인 케이티(KT)가 비씨(BC)카드를 인수함으로써 기존의 하나에스케이(SK)카드 진영과 한판 승부가 불붙었다는 뉴스, 이렇게 세 가지를 꼽아봤습니다.  

박: 저는 최고은씨 사망 소식, 자문형랩 수수료 전쟁, 현대자동차 파견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판결 뉴스 이렇게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그 중에 먼저 자문형랩 수수료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 부장님,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수수료 논쟁에 불을 붙이면서 ‘랩 수수료가 터무니없이 비싸다’ 고 말했는데, 2007년도엔 미래에셋의 인사이트 펀드가 비싼 수수료 논쟁의 장본인이었잖아요. 

이: 제가 이 뉴스를 특별히 주목한 것은 박현주 회장의 발언이 가진 뉴스밸류라는 측면도 있습니다만 수수료라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금융 빅뱅이라는 건 항상 수수료인하 경쟁에서 시작됐습니다. 1980년대였던가요. 영국의 이른바 금융 빅뱅, 증권사들이 엄청나게 무너지고 신설되고 하면서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왔던 것도 결국 그 당시의 증권사 거래 수수료가 자유화 되면서 가격경쟁이 촉발됐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문형랩’이라는 상품의 수수료인하 경쟁이 그런 금융 빅뱅까지 가진 않겠지만, 어쨌든 최근에 주목받는 상품이고 이걸로 인해서 여러 가지 시장의 변동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미래에셋이 싸움을 건 이유는 자문형랩에서 후발주자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펀드 때 미적미적 했던 이유는 당시 미래에셋이 시장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고요. 현재 자문형랩 시장에서는 삼성증권이 압도적으로 시장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삼성증권은 ‘우리가 지금 왜 이걸 낮추나’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요. 만일 미래에셋이 수수료 인하 카드를 뽑았는데 몇몇 회사들이 이에 동참하고 ‘찻잔 속 태풍’이 아닌 시장의 변화를 일으킨다면 아마 삼성 등 대형 증권사들도 끌려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 이렇게 수수료 인하 경쟁이 생기면 고객입장에서는 수수료를 덜 내니까 유리한 점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삼성증권이 시장의 강자입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자문형랩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맞춤형 서비스다. 맞춤형 서비스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투자자문 서비스의 질을 높여 고객에게 더 많은 이익을 주는가 하는 것이지, 수수료 1-2%는 중요하지 않다.” 미래에셋이 싸움을 걸어 수수료도 낮추고 투자자문도 잘해서 성과가 좋다면 시장이 재편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큰 변동이 없을 것입니다. 

정치부패와 경제적 절망감이 이집트 봉기 불러

박: 이집트 사태로 넘어갈까요. 제 교수님, 독재가 이어지면 반드시 곪아 터지는데, 이집트 경제는 얼마나 심각합니까? 

제: 이집트는 수출할 만큼은 아니지만 석유도 나고 피라미드 같은 관광자원도 많습니다. 4대 문명 발상지의 하나로 민족적 저력도 대단한데, 현재 상황을 보면 8천만 인구 중 40%가 하루 2달러(한화2300원 정도)가 못 되는 돈으로 먹고 사는, 굉장히 가난한 나라입니다. 왜 그렇게 됐냐면 무바라크 대통령이 30년 동안 독재하면서, 부정부패가 극심했거든요. 무바라크 대통령이 해외에 도피시켜 놓은 재산이 우리 돈으로 70-80조원이나 된다고 할 만큼 상층부는 재산을 해외에 빼돌렸고, 가난한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계도 어려운 지경에 방치됐습니다. 여기에 이집트 사람들을 정말 참을 수 없게 만든 것이 최근의 식량난입니다. 몇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곡물 수입에 많이 의존하는 이집트의 빈곤층이 굉장한 타격을 입게 됐습니다. 또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문제 아닙니까?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이 금융위기를 벗어나려고 돈을 마구 풀면서 전 세계적인 물가상승을 촉발했는데 이 때문에 생필품 가격이 수 십 퍼센트씩 올라가니까 이집트 사람들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된 겁니다. 이런 경제적 절망감이 정치적 계기와 맞물리면서 민중봉기가 촉발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제가 십 몇 년 전에 이집트에 출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나일강 주변에는 정말 유럽의 어떤 나라 못지않게 호화호텔과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거기를 벗어나면 우리나라 50년대의 모습을 한 빈곤가, 슬럼가가 이어지는 걸 보면서 어떻게 한 도시 안에 이런 대조적인 모습이 있을까 놀랐습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있는 곳에서는 아이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고 구걸하는 모습이었고요. 조상 잘 만난 덕에 유물가지고 먹고 살고 있는데, 후손들이 이렇게 나라를 망쳐놓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제: 이집트는 지난 30년 동안 우리로 따지면 ‘비상계엄법’으로 통치를 해왔었거든요. 언론은 철저하게 검열을 당하고 야당은 대통령 선거 후보조차 낼 수 없는 정치구조, 국민들이 창의성이라고는 발휘 할 수 없게 만드는 억압이 큰 질곡이 되면서 그렇게 좋은 자원, 잠재력을 가진 국민들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박: 이집트 사태가 순조롭게 풀리지 않으면 수에즈운하 봉쇄, 더 나아가서 사우디와 같은 왕정 국가 쪽으로까지 소요가 확산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죠? 

이: 일단은 미국의 태도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미국도 딜레마인 게 인권이라든가 민주주의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는 게 미국적 가치에 맞는 것이죠. 하지만 중동질서에 급격한 변화가 오는 것은 미국이 원치 않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고, 미국의 대외 정책이라는 것은 이런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늘 충돌해왔죠. 만일 이집트의 민중 봉기가 인근 국가로 확산된다면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도 위험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그럴 경우 그야 말로 전혀 예측 할 수 없는 국면으로 빠진다는 측면에서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박: 우리는 민주화 과정을 거쳐서 과거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데, 석유 소비에 문제가 생길까봐 왕정치하에 있는 중동국가들이 현 체제를 유지하게끔 암암리에 국제사회가 지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고민하게 됩니다. 

제: 미국도 원론적으로는 이집트의 민주화를 지지하면서도 급진적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 혹시 반미 이슬람 세력이 집권할까봐 두려워하죠. 우리 사회에도 중동의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는 것에 대해서 걱정하는 시각이 있는 것이, 튀니지의 민주화가 이집트에 영향을 준 것처럼 이집트의 민주화 시위가 이웃의 알제리, 요르단, 예멘, 시리아와 최대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제 3차 오일쇼크’까지 올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중동 민주화의 도미노는 1년 이내냐 10년 이내냐의 시간문제일 뿐,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도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동의 민주화가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보다 석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재의 우리 에너지 구조를 어떻게 바꾸어 갈 거냐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최근에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연기하니 어쩌니 하는데, 우리는 지금 그럴 여유가 없고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 구조로의 전환을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제정세를 봤을 때도, 경제적인 원리에서도 그렇습니다.  

통신과 금융 결합 가속화, 대 지각변동 예고

박: 다음 이슈는 KT의 BC카드 인수인데요. KT는 통신사로서 모든 카드 회사를 조력자로 끌어들여서 모바일 경제를 위한 거대한 연합체를 형성 하겠다는 꿈이 있는 것 같아요. 

이: 과거 하나금융지주와 SK텔레콤이 손을 잡고 하나SK카드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 최초로 금융과 통신이 결합해서 휴대폰 안에 신용카드가 들어가는 모바일 카드 시장이라는 컨셉을 내걸었는데, 이번엔 KT가 BC카드의 최대 주주가 됐습니다. BC는 일반카드 회사와 다르게 플라스틱 카드를 발행하는 회사가 아니고 카드 ‘망’을 관리하는 회삽니다. 11개의 카드 회사들이 출자하고 서로 제휴를 맺고 있습니다. KT가 BC카드를 지배하게 됐다는 것은 참여하고 있는 11개 카드회사와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얘기인데, 구체적인 사업을 어떻게 전개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넓게 본다면 통신과 금융의 결합이 새로운 형태로 전개된다는 예고입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이용이 편리해지겠지만 카드시장 통신시장에는 또 하나의 대 지각변동이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제: 통신과 금융의 결합은 이미 진행돼 왔습니다만, 앞으로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지갑 속에 플라스틱 카드를 여러 장씩 갖고 다니지 않습니까? 매장마다 다른 혜택에 맞춰 카드를 골라 쓰는데, 앞으로는 모든 카드를 각자의 휴대폰에 입력시켜 쓰는 게 보편화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나 스마트폰 등 휴대전화로 모든 결제가 이뤄지고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과도 결합해서 다양한 고객맞춤형 서비스가 유통회사와 제휴로 이뤄질 것입니다. 지금도 사실은 유사한 서비스가 있습니다만, 통신사와 금융회사가 수수료 주고받으며 하던 서비스가 자체적으로 이뤄지면서 훨씬 낮은 단가로 새롭고 정교한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런 모바일 결제시장에는 요즘 구글, 애플, 페이스북 같은 세계 굴지의 정보기술(IT)기업들이 모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박: 마지막으로 탄소배출권거래제에 대해 잠깐 짚어볼까요? 재계에서 연기하자는 로비를 강력히 하지 않았습니까? 

이: 온실가스배출권거래라는 것은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주고, 이를 초과 달성한 기업은 배출권을 팔 수 있게 하되 제대로 못줄인 기업은 돈을 들여 배출권을 사도록 하는 것입니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생기는 것이죠. 물론 기업들에겐 굉장한 부담이 됩니다. 반면 석유자원의존의 위험을 벗어나고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것을 빨리 해야 한다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제도를 왜 앞당겨 시행하려했는가 하는 배경을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첫 해에 ‘저탄소녹색성장’이라는 화두를 제시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녹색 흐름을 주도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서두른 측면이 있거든요. 우리가 녹색으로 가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만 그런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산업현실을 제대로 반영했는지는 좀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기업입장에서는 돈이고 현실의 문제인데 우리가 미국이라든가 일본보다 너무 무리하게 일정을 잡고 정치적인 선전효과를 노린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제: 정부가 선전효과를 기대하고 ‘녹색’ 슬로건을 내세운 부분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탄소배출권거래제 시행 자체는 시급하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에너지 효율은 일본의 1/3 수준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의 절반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의 탄소배출량은 세계 8위입니다. 한 마디로 너무 형편없이 낮은 효율로 에너지를 펑펑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져야한다는 맥락에서 탄소배출권거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박: 일등은 고사하고 평균이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제정임 교수, 한국일보 경제부 이성철 부장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 기사는 KBS 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되었습니다. 일부 내용은 분량 상 생략되었습니다. 방송 내용은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2월 12일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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