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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 형, 그 복면 벗고 링에서 내려오세요"
[소설이 있는 서재] 박민규 '더블'
2010년 12월 31일 (금) 14:05:38 곽영신 기자 kwaaak@danbinews.com

 

   
▲ 박민규 소설집 <더블>의 표지.

현실과 맞짱 뜨는 문학의 복원을 기다리며

박민규 형님! 아니, 그냥 '민규 형'으로 부르고 싶네요. 나이 든 연예인도 가까워지고 싶으면 '오빠', 존경하는 선생님도 그냥 '샘'이라 부르는 게 우리들 어법이니 양해하세요. 지난 9월 <한겨레21>에서 '2000년대 최고의 작가'로 민규 형이 뽑혔을 때 쾌재를 불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걸그룹이 연말 가요시상식에서 대상을 탄 기분이랄까요? '팬심' 가득한 작가가 이렇게 인정받다니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황석영, 김훈, 신경숙, 김연수, 김애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즐비한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이 시대 한국문학의 초강력 아이콘이 되다니!

그런 형이 신작 <더블>을 내셨으니 당연히 읽어봐야겠죠? 2005년 첫 소설집 <카스테라> 이후 둘째로 낳은 소설집. 그것도 예전 LP 더블 앨범의 추억을 살렸다며 SIDE A, SIDE B 두 권을 쌍둥이로 묶었으니, 그동안 이효석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을 싹쓸이하고 이제 남은 건 노벨문학상밖에 없는 형이라고 생각하는 저에겐 기쁨 두 배였죠. 그리고 표지의 그 간지라니! 루차 리브레(멕시코 프로레슬링 리그)의 레슬러를 따라 복면을 쓰셨죠. 황순원문학상을 받을 때 썼던 그 복면인가요? 예전 김영하가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할 때 귀걸이를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복면을 쓴 작가라니, '문학'이라면 항상 '에헴'하시던 어르신들이 좀 뜨악했겠습니다.   

책은 역시 재밌었습니다.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을 뒤섞고 서브컬쳐를 적극 도입하고 허무맹랑한 상상력으로 점철된 데다 독특한 문체와 행갈이가 돋보이는 무규칙 이종 소설! 먼 미래 체액을 변환해 심해탐사를 하며 인간의 존재를 탐구하는 <깊>, 지구 종말을 하루 앞둔 날 정체 모를 소음에 다툼을 시작한 아파트 주민의 엽기적인 이야기 <끝까지 이럴래?>, 과학기술과 의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미래에 냉동인간을 해동하며 벌어지는 음모를 그린 <굿모닝 존 웨인> 등은 SF적 상상력이 마음껏 발휘된 작품이네요. 서로 죽고 죽이는 좀비물을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으로 형상화한 <루디>, 자본주의 사회가 되면서 몇 백 년을 살아온 절대무림고수가 백수로 전락하는 모습을 그린 <龍+龍+龍+龍>도 공포영화나 무협지를 보는 것처럼 신났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매력

 

   
▲ 각종 문학상을 휩쓴 박민규의 소설들.

그 중에는 의아하게 느껴지는 작품도 있었네요. <근처> <누런 강 배 한 척> <낮잠> 같은 작품들은 본래 민규 형의 색깔과는 좀 어긋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불치병이나 치매에 걸린 노인이 담담히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모습은 어쩐지 너무 '평범'하거나 '전통'적이라는 느낌입니다. 그 작품들로 각종 문학상을 받으셨는데, 저로서는 흔쾌히 축하해주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형의 매력이었는데, 어쩐지 전통 한국문단에 편입해가는 듯한 조짐이랄까, 그런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즐겁게 읽은 작품은 <축구도 잘해요>와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였습니다. 제목부터 섹시합디다. <축구도 잘해요>는 형의 자전소설로 발표한 건데, 전생에 '마릴린 먼로'셨다니, 이거 참 몰라 뵀습니다. 문학의 길은 열여섯 살 때 외계인에게 납치되면서 결심하게 됐다구요? 우주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차마 지면에 옮기지 않겠습니다. 다만 외계인 사이에 낳은 자제분들은 지금 잘 지내고 계신지.... <딜도>도 참 대단했죠! 왕년에 날렸지만 이제는 마누라와 자식 앞에서 제대로 기도 못 펴게 된 세일즈맨이 우주 너머 화성에 자동차 딜도를 팔러 가다니! 외계 '사모님'께 딜도 시범을 보이는 장면은 한국문학 사상 이렇게 저질이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야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갑니다, 누님!" 이 대사에 쓰러지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역시 형은 이렇게 막장으로 가야 제 맛이죠. 2010년 이상문학상을 <아침의 문>이라는 작품으로 수상했지만 작품집에 '자선대표작'으로는 <딜도>를 실으셨죠. 역시 형답습니다.  

 

   
▲ 첫 소설집<카스테라>

그래서 하는 얘긴데요. 이번 소설집을 보면서 느낀 바는 형이 조금 풀이 죽은 게 아닌가 하는 거였습니다. 여전히 발랄하고 기발하며 신명나는 상상력이지만 예전에 무쇠 도끼를 휘두르던 혈기가 좀 사라졌다고 할까요? 첫 소설집 <카스테라>를 기억합니다. 거기서는 미국이고 중국이고 아버지고 학교고 정치인이고 다 냉장고에 넣어버렸잖아요. 세상의 부패를 막기 위해 닥치는 대로 냉장고에 넣어버린 것들이 한 조각 '카스테라'로 변해 눈물을 흘리며 먹었잖아요? 이 작품집은 역시 <한겨레21>에서 '2000년대 최고의 소설집'으로 뽑기도 했고요. 장편 <핑퐁>도 있었죠. 여기선 외계인과 탁구게임을 벌여 이 세상을 다시 '리셋'시켜 버렸죠. 이렇게 세계를 뒤집어버리고 재창조하던 겁 없는 작가는 어디 갔나요?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정, 기대할게요 

이 비루한 자본주의 사회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여전합니다. 하지만 '박민규'잖아요? 소녀시대보다 더 팬으로 다가가고 싶은 2000년대 최고의 작가인 형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하면 안 되는 건가요? 탁월한 문학은 이 세계를 바라보며 한숨짓거나 키득거리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열 아이디어와 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거잖아요. 얼마 전 <프레시안>에서도 한국문학을  걱정하는 문학평론가, 조영일이 형에게 쓴 소리를 하셨더군요. 이번 작품집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동생이 없는 아이가 레고 블록을 가지고 자신만의 성채를 만들었다가 해체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요. 형이 '장르'를 이용해 현실과 치열하게 씨름하는 듯하지만 결국은 장르로 도망갔다가 다시 현실로 귀환하는 행위만 반복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형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이제 무언가를 제대로 보여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라는 거죠.    

칭찬 일색인 문단과 언론에서 조영일 평론가가 중요한 점을 지적한 게 아닌가 싶어요. 원래 몸에 좋은 약이 쓰다잖아요. 그런데 저는 형에 대한 이 '막연한 기대감'을 철회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형은 최근 계간지 <작가세계>에서 다음과 같이 인터뷰 한 적이 있죠.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에 대해 "지금은 말 그대로 습작기인 셈이니까 이렇게 이것저것 연습해 나가고, 나중에는 구분 같은 게 없어질 것 같다"면서 "그러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그때 가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잖아요. 큰 문학상들을 받고도 현재 쓰고 있는 작품을 '습작'이라 여긴다면, 스스로도 무언가 '제대로 된 한 방'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형이라면 할 수 있다고 독자로서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형, 이제 복면은 벗고 링에서 내려오는 게 어떨까요? 진짜 문학은 짜고 치는 '프로레슬링'이 아니잖아요? 맨 손으로 이 세상을 붙잡고 씨름하는 거잖아요. 원시시대 돌도끼를 휘두르는 팔뚝의 굵은 핏줄처럼, 숨소리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무림고수의 내공처럼, 또는 생존을 위해 회칼을 휘두르는 조직폭력배의 날카로운 눈빛처럼, 맨 몸으로 치열하게 현실과 맞짱 뜨는 게 문학이잖아요. 가슴 따뜻한 이야기로 심금을 울리는 드라마 작가, 화려하고 다채로운 볼거리로 승부하는 프로레슬링 작가는 너무나 많은데, 누런 이를 드러내며 알몸으로 세상을 향해 덤비는 작가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 시대에, 형이 좀 나서주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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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재 (203.XXX.XXX.33)
2011-01-01 19:37:02
이 스타일이 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사라고 생각함. 구뜨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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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군 (182.XXX.XXX.245)
2011-01-02 01:09:55
장 기자! 여길 잊지 않고 보고 있었군 ㅎㅎㅎ 땡큐^^ 현직에서도 멋있게 잘하길~~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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