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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병 걸린 한국인, 사회가 해법 찾아야”
[단비인터뷰] 자살 막는 ‘핫라인’ 한국생명의전화 하상훈 원장
2014년 08월 18일 (월) 14:19:24 김동은 기자 keki331@gmail.com

지난 5월 19일 새벽 4시, 한국생명의전화 상담원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서울 마포대교 위에서 10대 소년이 건 전화였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까지 중단한 소년은 막막한 마음에 다리를 찾았다고 했다. 상담원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관들이 소년을 설득했다. 그 순간 비슷한 또래의 한 여학생이 다리 난간 쪽으로 상체를 내밀고 떨어지려 하는 것을 경관이 발견하고 재빨리 붙잡았다. 경찰이 아이들을 안정시키고 함께 마포대교를 떠나려할 때 다리 아래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한 남성이 막 물에 뛰어든 것이었다. 곧바로 119에 신고해 구해내고 보니 지병으로 취업이 되지 않는 것을 비관한 30대였다. 생명의전화 한 통이 한꺼번에 세 사람의 생명을 구한 이 일은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자살률 9년째 OECD 1위, 불명예 대한민국

“우리 사회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 아니면 도’ 식의 성공에 집착하고 있어요. 피 말리는 경쟁 상태에 놓여있죠. 단기간의 압축 성장을 이루었지만 성장의 빛만큼 어두운 그늘도 커졌어요. 가족이 해체되고 이웃 간 정이 사라지며 한 사람이 지닌 문제를 함께 짊어지고 공감해줄 공동체가 무너졌죠. 생명에 대한 가치관도 흔들리면서 ‘죽음’은 궁지에 몰린 한 개인이 택하는 마지막 선택지가 되는 겁니다.”

   
▲ 서울 종로구 이화동 한국생명의전화 본부에서 단비뉴스가 하상훈 원장을 만났다. ⓒ 김동은

올해로 만 26년째 생명의전화에서 자살 예방을 위해 일하고 있는 하상훈(56) 원장은 우리 사회의 물질만능주의 풍조 속에서 ‘더 성취해야 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와 출세지향적 풍토 때문에 상대적 빈곤에 대한 인내심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고, 좋은 대학이나 대기업 입사 등 ‘사회적 기대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스스로 낙오됐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정당한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당당하지 못하고, 욕구불만이 쌓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화’가 되고, 우울증이나 자살로 이어지죠. 이것이 밖으로 표출되면 ‘묻지마 살인’ 같은 범죄로 이어지는 겁니다.”

사회구성원들이 외적인 성취에 치중하는 반면 올바른 물질관, 성공에 대한 개념, 행복관이 확립되지 않아 심리적 빈곤이 심해지는데, 이렇게 무너지는 사람들을 받아줄 공동체마저 사라지는 게 큰 문제라고 하 원장은 지적했다. 보편적인 가구 구성이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뀐데 이어 이제는 혼자 사는 가구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14년 7월 서울 전체가구의 36.3%가 1인 가구로, 4인 가구(19.5%)의 두 배 가까이 된다. 하 원장은 “과거에는 한 사람의 문제를 가족이 함께 해결해 왔는데 가족이 해체되면서 한 개인의 문제를 나눠질 수 있는 기반이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 짐을 오롯이 홀로 지고 가야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2012년 기준 인구 10만 명 당 28.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2.89명의 두 배가 넘고,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9년째 유지하고 있는 것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경제양극화와 가족공동체의 붕괴. 경쟁을 부추기는 성장지상주의의 탓이 크다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2만6000달러로, 1960년대에 100달러도 안되던 것에 비해 엄청난 성장을 이뤘지만 자살률은 20년 전(8.7)명에 비해 3배 이상 높아져 ‘성장지상주의의 내상(內傷)’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상담과 더불어 사회적 안전망 확대도 절실

자살을 결심할 만큼 절망적 상황에 놓였지만 도움을 청할 가족, 친구도 여의치 않은 사람들에게 생명의전화는 종종 ‘구원의 밧줄’ 같은 역할을 해왔다. 1976년 9월 ‘도움은 전화처럼 가까운 곳에’라는 표어를 걸고 시작된 사회복지법인 한국생명의전화는 현재 전국 18개 도시 19개 상담센터에서 2000여명의 상담가들이 월 1~2회 3시간 30분씩 자원봉사하는 방식으로 24시간 전화를 받고 있다. 후원자들과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운영되며 자살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설득하고 돕는 일 외에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생명존중교육, 가족관계 강화를 위한 가족사랑캠프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과 함께 지난 2011년 서울 한남대교, 마포대교에 총 8대의 ‘SOS(에스오에스)생명의전화’를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8개 한강다리에 32대의 ‘핫라인’을 설치했다. 이곳에서 걸려온 전화 덕분에 현재까지 총 1338명의 투신 시도자를 구했고, 2013년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의 투신자구조율이 전년(51.5%) 대비 2배 가까이 높은 94.1%를 기록했다고 생명의전화측은 밝혔다.

   
▲ 서울 마포대교에 설치된 SOS생명의전화. ⓒ 김동은

하 원장은 대학시절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상담심리학에 흥미를 느꼈고, 고려대 상담심리 교육대학원에 다니던 중 인천 생명의전화에서 자원봉사 한 것을 계기로 이 조직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부천에 살고 있던 그는 상담원 교육을 함께 받은 동기들과 힘을 모아 부천 생명의전화를 창립했고 1993년 서울지부 상담부장이 되면서 이 일을 전업으로 삼게 됐다고 한다.

지난해 겨울, 하 원장은 한 청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침울하고 무기력한 목소리로 전화를 건 청년은 “농촌에서 자라 서울의 명문대학에 진학했지만 졸업한 지 몇 해가 지나도록 취업을 하지 못해 차라리 사라져버리고 싶다”고 호소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뒷바라지해 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밥만 축내는 ‘잉여’같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하 원장은 청년에게 “실패의 과정을 냉철하게 돌아보며 너무 큰 목표보다 작은 성공에 초점을 맞추자”고 설득했다고 한다.

“듣고 공감해주는 것이 중요해요. 죽고 싶은 마음을 비판하지 않고 들으면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나옵니다.”

자살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에겐 양가감정(兩價感情), 즉 모순된 감정이 있다고 한다. 죽음에만 몰두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은 마음과 죽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 ‘시소게임’ 같고, 숨이 멎는 순간에도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해 구해주길 바라는 강력한 삶의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고자하는 마음을 확대시켜주고, 대안을 제시해주면 죽겠다는 생각을 거둔다고 한다.

하 원장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상담 등의 도움을 주는 것과 함께 개인을 절망하게 하는 사회구조의 문제를 해소하는 노력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사회구조적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삶의 위기 속에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의학적으로 접근해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병 치료에 집중하는 메디컬 모델과 상담학적으로 접근해 개인이 지닌 문제를 지역사회 전반의 도움을 통해 해결해나가는 커뮤니티 모델이 균형적으로 병행돼야 합니다. 사회 근본적인 모순을 극복해가는 과정 속에서 자살예방도 되는 것이죠.”

청소년 자살 막으려면 생명사랑·존중교육 병행돼야

하 원장은 또 우리사회가 청소년의 절망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강다리에 설치된 생명의전화를 이용하는 사람의 80%는 10대와 20대라고 한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OECD 평균인 인구 10만 명 당 7.7명보다 약간 낮은 6.4명이지만 2001년에서 2011년 사이 10년 간 증가율이 57.2%에 달하는 것을 보면 가벼이 여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3년 통계청 조사에서 청소년 10명 중 1명이 학업, 가정불화, 어려운 가정형편 등으로 인해 자살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해 청소년 자살자가 300여명일 때, 실제 자살을 시도한 아이들은 15배 정도 더 많은 4천5백 명 정도에 이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하 원장에 따르면 청소년 자살은 대체로 충동적이다. 어른들이 보기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문제도 아이들은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생명의 전화로 ‘임신을 해 죽고 싶다는 아이’, ‘진로문제로 부모님과 갈등을 겪어 절망한 아이’, ‘자신과 친한 친구가 다른 아이들과 친해지면서 왕따가 된 것 같다는 아이’도 전화를 걸어온다고 한다.

“청소년들은 게임 캐릭터처럼 한번 죽어도 다시 리셋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리셋증후군’을 많이 보여요. 죽음 이후에 어떤 결과가 오고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는 인지능력, 삶과 죽음에 대한 판단 능력이 아직 부족한 것이죠. 또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철학을 어려서부터 배워야 하는데 대학입시와 출세에 (생명존중교육이) 밀려버렸어요.”

그는 각급학교의 학생상담이 진학지도에 치우쳐 있는 것을 비판했다. 진로교육의 본질은 인생 전반에 걸쳐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그 길을 어떻게 관리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의식을 길러주는 것인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너무 가벼이 여기다보니 진학상담에 치우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진로상담의 본질을 회복하고 생명사랑·존중교육이 병행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하 원장은 중·고등학교에서 정서행동발달 검사를 해보면 거의 10% 가량이 ‘자살 고위험군’으로 나타난다며 학교에 사회복지사를 배치해 상담교사, 보건교사와 협력하는 팀을 구성하고 지역사회와 연계해 가족문제 혹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자살위기 상담의 경우, 긴급출동체계가 구축되어있다. ⓒ 김동은

자살자 유가족도 보듬는 '풀뿌리 운동'

“이민을 가도,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매일 밤 죽어있는 남편을 발견한 그 장면을 본다는 유가족이 있었어요. 이들은 우울감에 빠질 수밖에 없고 충격에서 벗어나기 힘들죠. 하지만 이를 밖으로 드러낼 수도 없어 더 문젭니다.”

자살은 한 사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자살했을 때, 평균 6명의 주변인이 충격적인 기억을 반복 경험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가족이 자살을 하면 사회적으로 ‘자살한 사람 가족’으로 낙인이 찍혀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유족들은 내놓고 슬퍼하지도 못하고 숨기는 경향이 있다. 하 원장은 심각한 우울감과 자살충동에 노출되기 쉬운 유족들에 대해서도 사회적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생명의전화는 ‘나는 나를 사랑합니다’라는 뜻을 담은 자살자유가족지원센터 ‘나나애(愛)나무’를 운영하고 있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며 치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아픔으로부터 회복된 유가족이 생명의전화 자원상담가가 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생명의전화는 매년 9월 하순 ‘생명사랑 밤길걷기’라는 행사를 열고 있다. 밤길을 걸으며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해보자는 취지다. 원래는 자살자 유가족을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사회적 편견이 심하다보니 유가족보다는 일반인과 학생들이 더 많은 생명존중캠페인이 돼왔다고 한다. 그런데 2년 전 서울에서 열린 행사에 일본인 자살자 유가족들이 일본에서 찾아와 우리나라 유가족들과 함께 걸으면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14 생명사랑 밤길걷기’는 다음 달 서울(19일), 대구·대전(20일), 부산(12일), 광주(13일), 수원(13일) 등 6개 도시에서 열릴 예정이다. 생명의전화는 일반인들에게 1년간의 전화상담사 양성과정을 거쳐 상담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열어놓고 있다.

“사막 한가운데 혼자 있는 듯 단절감을 느끼는 이에게 전화 한 통이 생명선이 될 수 있었으면 해요. 생명의전화는 자원봉사자들이 자발적 헌신으로 일구어 나가는 풀뿌리 운동이에요.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공동체가 회복되도록 생명의전화 기반을 닦아 나가는 게 저의 비전입니다.”


[김동은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팀 김동은 기자입니다.
질문하고, 또 질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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