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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죽는 신세는 면했으면”
[2013대한민국 노인보고서] 독거노인과 고독사 <상>
2013년 11월 02일 (토) 11:51:39 박정헌, 임경호, 장경혜 foxmulder7@naver.com

   
 

추석이었던 지난 9월 19일, 번잡한 청량리역에서 십 분 정도 걸어 도착한 서울 제기동의 쪽방촌 골목은 적막하기 짝이 없었다.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된 후 오래 방치된 집들의 담벼락은 새까만 곰팡이가 뒤덮었고 골목길 마다 고철과 유리파편, 담배꽁초 따위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이순식(68)씨가 사는 곳은 그 골목 한 구석에 자리한, 창문도 없는 한 평 반(4.95㎡)짜리 쪽방이었다.

한 평 남짓 공간에서 ‘생존비’로 버틴다 

“오늘 같은 명절이 오고 전 부치는 냄새가 나면 그저 서글프죠. 나는 죽어도 와서 울어줄 사람 하나 없으니까.”

낡은 텔레비전과 소형냉장고 등 살림살이가 차지한 공간을 빼면 한 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 앉아 이씨가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165센티미터(cm)의 키로 체구가 작은 편인 이씨가 몸을 눕히면 꽉 차는 방에는 구청과 복지관에서 받아왔다는 신문들이 가전제품 위로 천장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이씨는 “68년 독신 인생, 독서가 내 애인”이라고 허허롭게 웃었다. 

   
▲ 방 앞의 현관은 부엌이자 작은 세탁실이다. ⓒ 장경혜

그도 한 때는 ‘간호사 아가씨’와 결혼을 약속했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보일러 대리점과 백반집 등을 하다 연이어 망한 뒤로 집도 날리고 결혼도 깨졌다. 함께 살던 어머니는 고향으로 내려 보내고 노숙자 신세가 됐다. 건강이 나빠져 막노동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 한 기도원에 들어가 숙식을 의탁하면서 3년 정도 설교집 외판원 등으로 재기를 도모했지만 기도원 사정이 나빠지면서 갈 곳을 잃었다. 다행히 한 대형교회가 이씨를 딱하게 여겨 50만원을 도와주면서 1988년 지금의 쪽방촌으로 들어오게 됐다.     

통풍, 관절염, 만성위염 등 여러 가지 병을 앓고 있는 이씨는 특히 3년 전 폐암으로 수술까지 받았다. 구청에서 긴급의료비로 180만원을 지원해줬다. 그 와중에 시골에 계시던 어머니가 쓸쓸히 돌아가셨다. 이씨는 정부에서 주는 기초수급비 등 월 43만원으로 방세 20만원과 식비, 비보험의료비 등을 해결한다.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벌어볼까 해서 한방비누 등 외판원일을 간간히 하고 있지만 하나도 못 파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일을 나가는 날은 사먹는 밥값이 너무 비싸 도시락을 싸서 들고 다닌다.   

   
▲ 6명이 사용하는 공동화장실. ⓒ 장경혜

인접한 6가구가 화장실 하나를 함께 사용하고 공과금을 나눠 내는데,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지면 난방비 때문에 걱정이 커진다. 정부나 사회단체에서 지원해 주는 연탄을 아껴 때면서 버티지만 너무 추워 전기장판이라도 켤 때는 훌쩍 올라가는 전기료가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방세와 공과금 등 고정 지출을 빼고 쓸 수 있는 돈이 월 10~20만원밖에 없기 때문에 이씨는 식비를 극도로 아낀다. 복지관에서 일주일에 두 번 반찬을 배달해 주는데, 신 김치와 나물 등을 여러 끼로 나눠 주로 저녁에 먹는다. 아침은 미숫가루를 맹물에 타서 해결하기도 한다. 폐암 수술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영양공급이라고 하는데, 그의 식사에서 ‘영양’은 챙기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나마 집 근처에 청량리 ‘밥퍼’와 제기동 ‘프란치스코의 집’ 등 무료급식소 두 곳이 있어 점심을 해결할 수 있는 게 큰 행운이라고 이씨는 말했다. 

공짜로 가는 전철여행이 유일한 낙 

이씨의 쪽방에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4남 2녀 중 넷째지만 형제들이 모두 ‘객지에서 고생 좀 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구청에서 65세 이상 독거노인을 주기적으로 돌보는 봉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이씨는 자신이 중증 환자도 아니고 아직 거동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겠다며 사양했다고 한다. 일주일에 두 번 반찬을 가져다주는 자원봉사자가 있었는데 이씨가 외판 등으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이젠 인근 약국에 맡겨두고 간다. 이웃들과는 한 달에 한 번 각종 고지서를 정산할 때만 만나고, 한 달에 두 번 안부전화를 걸어오는 구청 직원과는 한 두 마디 나누는 게 고작이다. 

가끔 주체 못할 외로움이 밀려오면 이씨는 왕십리 중고품점에서 산 양은도시락에 밥을 싸들고 전철을 탄다.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행선지는 천안과 인천이다. 그 이상은 ‘경로우대 교통비 무료’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에 가끔 사로잡힌다. 그래서 자신처럼 나이 들어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한 집에 작은 방이 여러 개 있는 영구임대아파트를 제공해 줬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무의탁 노인들이 한 데 모여 살면 서로 말동무도 되고 마지막 순간도 지켜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임대아파트 보증금 35만원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   

사실 ‘임대아파트’라는 말은 이씨에게 슬프고 서러운 단어다. 이씨는 올해 3월 영구임대아파트 입주를 신청했다. 소득이 낮을 경우 우선공급대상자가 되는 제도 덕분에 서울 월계동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 당첨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230만원의 보증금 중 구청의 지원과 대출로도 해결하지 못한 35만원 때문에 입주를 포기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어떤 사람들에겐 하룻밤 회식비에 불과할 수 있는 돈이지만 손 벌릴 가족 친지도, 은행 문턱을 넘을 신용도 없는 그에게는 ‘절망의 숫자’와 다름없게 됐다. 

   
▲ 이씨는 영구임대아파트에 당첨됐지만 입주금이 없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 장경혜

“한밤중에 자다가 벌떡 일어나요. 35만원이 없어서 이렇게 아파트에 못 들어가는구나 하죠. 그저 엎드려 기도하는 것 뿐, 방법이 없네요.”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씨가 한밤중에 깨어 있으면 ‘쥐들의 경주’를 고스란히 감상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밤마다 쥐떼가 천장 위로 몰려다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사는 곳이 ‘쥐들의 서울 광장’이라고 말했다. 여름에는 창문 하나 없는 찜통 같은 방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부엌으로 쓰는 공간에 종이상자를 깔아 놓고 자는데, 모기떼의 공격을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 

“68년을 혼자 살았어요. 이제라도 아내한테 사랑 한번 받아보면 여한이 없겠어요. 하지만 이런 집에선 노년의 말동무를 구하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아요. 임대아파트에라도 들어가면 용기를 내 볼 텐데...그래도 오늘은 이렇게 찾아와서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 참 좋네요.”

너른 기와집 쓸쓸히 지키는 할머니  

정경순(83)씨는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의 넓고 고풍스런 기와집에 산다. 부농의 안주인이어서가 아니라 빈집에 공짜로 살며 관리해주는 일을 맡아서다. 정씨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남의 밭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 30년 전 남편을 잃고 홀로 남은 정씨에게 땅주인이 경기도로 이사를 가며 빈 집을 맡겼다. 작은 방 두 개가 있는 별채에서 생활하며, 가끔 들르는 주인을 위해 안채를 관리하는 게 정씨의 일이다. 

19살에 결혼한 정씨는 ‘건달에 한량이었던’ 남편과 40년을 살며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평생 제대로 된 일자리 하나 가진 적 없이 정씨가 품앗이로 벌어온 돈을 술과 노름으로 탕진했던 남편은 자식들에게도 가난을 대물림했다. 4남매를 두었지만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자식들은 각자 어렵게 살며 겨우 소식만 전할 뿐, 홀로 남은 어머니를 돌보지 못한다. 정씨는 기초수급비와 노령연금 등 월 30여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 혼자 사는 정씨를 찾아오는 길고양이. 길고양이에게 김치 섞은 밥을 주고 있다. ⓒ 장경혜

오랜 농사일로 등이 굽고 한쪽 다리를 저는 정씨는 걸음걸이가 힘겹다. 마을 경로당에 가고 싶어도 몸이 불편해 포기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TV를 보며 보낸다. 꼭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동네에서 주워온 유모차를 보조기 삼아 끌고 다닌다. 유모차 안에는 돌 한 덩어리를 넣어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하게 만들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노인들은 유모차와 비슷하게 생긴 보행보조기를 의료기 전문점에서 구입해 끌고 다니지만 정씨에게는 먼 얘기다. 

“화장실 가는 게 젤 힘들지. 집에 화장실이 없어서 멀리 떨어진 공동화장실을 써야 하는데 절름절름 걷다보면 한번 갔다 오는데 30분은 걸린다.”

돌덩이 넣은 유모차를 보조기 삼아 거동  

   
▲ 지팡이 대신 유모차 손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걷고 있다. ⓒ 장경혜

허리와 관절이 아파 병원에 가서 약을 타와야 하는데, 한 달에 한 번 마을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다른 노인들과 함께 김해에 있는 병원까지 다녀오는 것도 정씨에게는 부담이 큰 행사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불편한 것은 빨래. 세탁기가 없어 손빨래를 하는데, 몸을 굽힐 때마다 팔다리 관절과 허리 통증으로 너무 고통스럽다. 

이제는 텃밭에서 메밀이나 무 같은 것을 길러먹는 것 외에 농사를 못 짓는 정씨는 쌀과 반찬거리를 사다가 하루 한 번 밥을 짓는다. 점심은 면에서 가져다주는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닷새 동안 정오가 되기 전에 배달이 오는데, 무말랭이 같은 나물 세 가지에 시래깃국이 주 메뉴다. 저녁은 점심때 먹다 남은 반찬으로 해결한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급식이 오지 않기 때문에 김치 반찬으로 때우거나 가스버너에 국을 끓여 먹는다. 

길고양이들을 가족처럼 돌보며 

하루 종일 홀로 지내는 정씨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동네 길고양이들이다. 언제부턴가  정씨가 지내는 방 근처로 길고양이들이 한두 마리씩 모여들었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고양이들이 딱해 정씨가 밥을 나눠주자 끼니때 마다 여러 마리가 모여들었다. 그 중 몇 마리는 아예 마루 아래에 둥지를 틀었다. 많을 때는 여섯 마리까지 키웠다. 한 마리가 떠나면 다른 고양이가 찾아오기도 했다. 지금은 두 마리가 정씨 집 마루 아래에서 서식한다. 정씨도 자식처럼 고양이들을 돌본다. 

정씨처럼 혼자 사는 노인들을 위해 지수면에서는 두 명의 돌보미를 배정해 주기적으로 안부를 묻도록 하고 있다. 직접 방문은 자주 하기 어려우므로 ‘독거노인 사랑의 안심폰’을 설치해 영상통화를 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하지만 정씨는 ‘있어봤자 쓸 데도 없고 전기료만 잡아먹는다’며 전선을 빼버렸다. 안심폰 위로는 뽀얀 먼지가 쌓여 있었다.

   
▲ 독거노인의 안전을 위한 '사랑의 안심폰'이 벽에 설치돼있지만 정씨는 전기세가 나간다고 코드를 빼놓은 상태다. ⓒ 장경혜

※붙임: 이순식씨는 취재과정에서 연결된 기부자의 도움으로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준비되지 못한’ 노후를 맞이한 우리나라 노인은 절반 가까이가 빈곤층이다. 가난은 질병과 외로움 등 노년의 고통을 증폭시킨다. 불편한 몸으로 남의 밭일을 하는 농촌 노인이나 지하철택배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 노인 등 가난한 노년은 죽을 때까지 ‘밥벌이의 구차함’에서 놓여나지 못한다. 사설 요양병원에서 학대 받는 치매노인, 골방에서 혼자 숨을 거두는 고독사 등 비극적 현장도 소리 없이 늘고 있다. <단비뉴스>는 청년의 ‘가족’이자 ‘내일’인 노인의 삶에 주목했다. 그들의 현실을 생생히 드러내면서 ‘노인복지후진국’을 벗어나기 위한 과제를 점검하고, 독자와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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