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서울시 심야버스 첫 시범운행, 야근 직장인 등 반색

지난 18일 밤 11시 50분쯤 서울 종로3가 버스정류장. 야근을 끝낸 직장인 김희남(49)씨는 시내버스 막차가 밤 11시 언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버스 도착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을 쳐다봤다. 한남동 집으로 향하는 471번 버스의 ‘운행중단’ 알림이 떠있다. 지하철 막차도 끊긴 시각. 김씨는 차도 쪽으로 몸을 내밀어 빨간 ‘빈차’ 등이 켜진 택시를 향해 팔을 흔들었다. 하지만 택시들은 행선지를 물어본 뒤 ‘돈 안 되는’ 단거리 운행에 손사래를 쳤다. 거듭되는 거절에 부아가 치밀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으니 또 다시 택시들을 향해 팔을 휘저어 본다.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멀리서 노란 전광판 불빛을 번쩍이며 달려오던 버스가 정류장에 멈췄다. ‘축 개통 심야전용 버스 운행’이라는 현수막을 붙인 엔(N)37번 버스. 행선지를 보니 한남동을 거쳐 간다. 김씨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반색하며 차에 올랐다.

▲ 지난 4월 19일부터 운행을 시작한 서울 심야버스 N26번 전광판 모습.  ⓒ 박채린
이 버스는 서울시가 19일 자정부터 약 3개월간 서울 종로와 강남역 등 야간 유동인구가 많은 2개 노선에 시범 운행하는 심야전용 차량. 김씨가 탄 N37번은 진관 차고지를 시작으로 서대문, 종로, 강남역, 가락시장, 송파 차고지를 오가고 N26번 버스는 강서 차고지를 출발해 홍대, 신촌, 종로, 청량리, 중랑 차고지를 오간다. 두 노선에서 각각 6대의 버스가 35-40분 배차간격으로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운행된다. 요금은 시범운행 기간 중엔 일반시내버스와 같은 1,050원(카드기준)이고, 정식 운행될 경우 1,800원으로 오른다.

늦은 귀갓길, 택시비 굳어 좋다

김씨는 버스 뒷좌석에 앉자마자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형형색색 동물얼굴로 가득 찬 액정화면에 집중하며 게임으로 긴 하루의 고단함을 털어냈다. 양복차림에 서류가방을 든 직장인, 배낭을 맨 학생, 수수한 옷차림의 중년여성 등 다른 승객들도 대부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피곤한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했다. 서로 눈이 마주칠 때는 금세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말소리는 물론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한 버스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것은 1분 단위로 변하는 버스 앞쪽의 디지털시계뿐이었다.

▲ 심야버스 N37번 승객들이 이어폰을 끼거나 고개를 숙인 채로 좌석에 앉아 있다. ⓒ 박채린
새벽 1시. 강남역에서 묵직한 가방을 둘러멘 대학생 3명이 N37번 버스에 올라서며 ‘삑~’ 하고 교통카드를 찍었다. 표인필(24)씨는 “각종 시험 준비로 어학원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며 “석촌동에 있는 집에 갈 때마다 15,000원 정도의 택시비가 부담스러웠는데 심야버스가 생겨 돈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고 좋아했다. 그는 “노선이 다른 구간으로도 확장돼 많은 학생들이 혜택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대리운전기사에게는 출근버스

은평구 진관동의 진관차고지에서 출발한 지 약 1시간 40분. N37번 버스는 첫 편도운행을 마치고 송파구 장지동 송파차고지로 들어섰다. 50대 중반에 금테안경을 쓴 버스기사 ㄱ씨는 시동을 끄자마자 차고지 안쪽 회색건물의 화장실로 뛰어갔다. 5분 정도 지났을까. ㄱ씨는 버스로 돌아와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운전석에 앉았다. 배차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왔던 길을 되짚어 달리기 위해 가로등 불빛만 환한, 텅 빈 도로로 차를 몰았다.

 ▲ N37번 심야버스가 송파차고지에 도착하자 버스운전기사가 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화장실로 뛰어가고 있다. ⓒ박채린

차가운 밤공기가 더 무거워진 새벽 2시. N37번 버스는 가락시장을 지나 수서역 앞에 섰다. 검정색 등산용 자켓을 입은 40~50대 남성 6명이 우르르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이 쌀쌀하다고 느낀 듯 윗옷에 달린 모자를 덮어쓰거나 옷깃을 세워 목 끝부분까지 지퍼를 올렸다. 이들은 ‘콜’을 받고 손님이 있는 곳으로 가는 대리기사들이었다.

논현역으로 간다는 김기현(57)씨는 평소 대리운전기사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무허가 셔틀버스를 한 번에 1천원에서 4천원까지 주고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밤새 버는 돈에 비해 교통비가 많이 나가는 편이라 부담이 됐는데 심야버스가 생겨 좀 나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출근길’인 셈인 대리기사들은 심야버스 노선과 배차시간 등을 화제로 삼았다.

“아직 상계동으로 가는 버스는 없지?”
“이거 하루에 몇 번 운행 하는 거야?”
“셔틀버스는 타격 좀 받겠는데?”

택시는 야간 손님 감소 걱정도

심야버스의 또 다른 노선인 N26번 버스 안. 홍대부근에서 해장국집을 운영하는 정기홍(38)씨는 “식재료 준비 등을 위해 이른 새벽녘에 가게에 가는 경우가 많다”며 심야버스 운행을 반겼다. 장사가 안 될 때는 대리기사 일도 함께 한다는 정씨는 심야버스가 자신과 같은 서민들의 발이 되어주길 기대했다.

새벽 3시 반. N26번 버스주변에는 여러 대의 택시들이 달라붙어 함께 주행했다. 정지신호에 버스가 멈추면 손님을 찾지 못해 불을 밝힌 택시들에 둘러싸이기도 했다. 홍대입구역과 합정역을 지나자 버스에는 기사와 시험운행 상황을 점검하러 나온 서울시 버스정책과 공무원, 그리고 기자만 남았다. 백미러로 승객좌석을 훑어보던 운전기사가 기자에게 물었다. “어디까지 가세요?”

약 3시간 40분의 왕복운행을 마친 뒤 강서차고지로 돌아온 50대 후반의 N26번 버스기사 ㄴ씨는 시동을 끈 후 차 안에 쓰레기가 버려졌는지 등을 둘러보고는 요금통을 사무실에 갖다놓았다. 야간운행을 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심야버스 운행만을 전업으로 하는 조건으로 채용이 됐다는 ㄴ씨는 “서울시민들의 안전한 이동을 위해 사명감을 갖고 운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심야운전기사는 하루 4시간 정도 일한다. 3일 근무 후 하루 쉬고 다시 3일 일하는 시스템이다. 야간수당을 쳐서 일반기사의 기본시급 8,308원의 1.5배를 기본급으로 받고 주휴수당·무사고수당 등 각종수당이 더해져 연봉은 2,000만원 정도라고 한다.

▲ 종로3가에서 한 직장인이 택시를 잡고 있다. ⓒ 박채린
새벽 4시 반 신촌. 형광색 작업복의 환경미화원들을 태운 쓰레기수거차량이 엔진소리를 내며 도로를 지나갔다. 이제 막 야간근무자와 교대 하고 주간운행을 시작했다는 택시기사 김대관(45)씨는 자동차 창문을 반쯤 열어둔 채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심야버스요? 저는 오늘 처음 들었는데...만약 노선이 확대되고 운행이 활성화되면 야간 택시기사들에겐 경제적 타격이 클 거예요. 안 그래도 어려운데 더 어려워질까봐 걱정이네요.”

안전 위해 도우미·보안관 서비스도 검토

한편 서울시는 심야버스의 안전한 운행을 위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서울시 버스정책과 이종운 주무관은 “시범운행경과를 살펴 본 후 버스 내 치안강화를 위해 도우미나 보안관을 자원봉사 형식으로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범운행 첫날 심야버스 이용자는 두 노선 합쳐 약 900명이었고 주말인 21일과 22일에는 1400여명 선으로 늘었다고 서울시측은 집계했다. 이 주무관은 “보다 많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설네트워크서비스(SNS)와 현수막 등을 통해 적극 홍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시범운행 경과에 따라 야간 유동인구가 많은 도봉산~영등포, 상계동~송파, 강동~석수 등에 5개 노선을 더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심야전용 시내버스의 노선과 도착시각 정보는 교통정보센터 모바일웹(m.bus.go.kr)과 ‘서울대중교통’ 앱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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