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도구 인터넷, 국내에선 너무 역기능 걱정만

“우리는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인터넷은 수많은 컴퓨터를 연결한 단순한 네트워크 그 이상입니다. 인터넷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끝없는 소통의 고리입니다. 전 세계인 모두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교류의 장인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디지털 문화는 새로운 사회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것은 대화와 소통을 통해 토론과 논쟁, 합의를 만들어가는 사회입니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개방, 수용, 토론 및 참여가 보장된 사회에서 발전했습니다. 대화와 소통이 증오와 갈등을 치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인터넷이 평화의 도구라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이들은 누구든 비폭력의 씨앗을 뿌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2010년 노벨 평화상이 인터넷에 주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원문 = http://www.internetforpeace.org/manifesto.cfm)
 

인터넷에 노벨 평화상을 주자는 전 세계 네티즌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다음, 네이버 등 국내 포털에서도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며칠 국내 언론들은 앞 다퉈 이 같은 움직임을 보도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닌데도, 저 선언문을 읽으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심장이 쿵쿵 뛴다. 우리 사회가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는 인터넷의 소중한 가치를 새삼 되새기게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정보기술(IT) 주무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10대 추진과제’를 제시했다. 미디어법 개정 등 방송 쪽 이슈가 워낙 대단했던 해이고, 방송보다 시장 규모가 4배나 큰 통신의 중요성이 부각되다보니 인터넷 관련 과제는 그 중 1개에 불과했다. 그 ‘단 하나의 인터넷 정책 과제’가 바로 ‘인터넷의 신뢰성 제고’였다. 악성 댓글 등 인터넷의 역기능으로 인해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선량한 피해자가 생기고 있으니,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에 따라 본인 확인제 대상이 확대됐고, 불법정보에 대한 모니터링 등 사업자의 관리책임을 강화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이 추진됐다.

2008년 ‘촛불시위’가 촉발된 곳이 인터넷이다 보니, 정부와 정치권에서 ‘인터넷 역기능’을 강조하고 나선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정책이 실명제 확대다. ‘제한적 본인확인제’라는 공식 명칭을 가진 이 제도에 대해서는 현재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실명제가 익명성의 폐해를 막는다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개똥녀 사건’이나 ‘최진실 사건’ 등 유명한 악성 댓글 파문은 완전 실명제로 운영되는 사이트에서 벌어졌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유튜브 등 해외 사이트는 이 제도의 적용 대상도 아니다. 국경 없는 인터넷 세상에서 국경 안에 갇힌 제도가 과연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불법정보에 대한 모니터링 등 사업자의 관리책임 강화’라는 내용의 법 개정안은 결국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인터넷 기업에게 사실상 ‘사적 검열 권한’을 내준다는 논란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드물게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까지 문제가 되는 우리나라 법 체제에서 이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근거 있는 비판까지 불법으로 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인터넷은 하나의 ‘도구’다.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평화를 위한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갈등을 일으키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소외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통로가 될 수도 있고, 마약거래 등 불법행위로 세상을 더 혼탁하게 만드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가급적 역기능을 최소화하면서 순기능을 살려가려는 사회적 의지와 추진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 인터넷의 부정적 측면에 집중한 나머지 인터넷의 긍정적 가능성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고 있다. 소박하고 재미난 발상으로 시작된 트위터라는 단문 블로그가 전 세계를 파고 들 때, 우리는 ‘트위터 선거운동 규제 논란’으로 골머리를 앓지 않았던가.
 
인터넷은 나쁜 공간이고, 역기능만 가득하다는 우려가 너무 커지면 인터넷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언제까지 ‘인포데믹스(Infodemics)’, 즉 부정확한 정보 확산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을 걱정하고 해법을 찾는 데만 매달려 있을 것인가.  

최근 미국에서는 아프간 전쟁의 비밀 기록이 고발 전문 소셜미디어 사이트 ‘위키리크스(wikileaks.org)’를 통해 폭로되면서 '놀라운 인터넷의 힘'에 다시 눈길이 쏠리고 있다. 일부에선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인터넷’이라는 공격도 없지 않지만, ‘인터넷이라는 소통의 장에서는 어떤 추악한 기밀도 영원히 묻히지 않는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평화를 위한 인터넷(Internet for peace) 운동을 시작한 미국 IT잡지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평화를 원합니다.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온 힘을 다해 평화를 외칠 것입니다. 당장은 트위터 계정이 신종 총기인 AK-47에 상대가 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키보드가 칼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 정혜승
인터넷은 중국, 이란, 미얀마 등 세계 곳곳에서 검열과 봉쇄를 뚫고 ‘진실’을 알리는 도구가 되고 있다. 아이티 칠레 등 대형 재난의 현장에서는 새로운 구호와 원조의 수단이 되고 있다. 평화를 지키고, 인류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인터넷을 믿는가? 그렇다면 그 역기능을 지나치게 겁내기보다 인터넷의 잠재력을 활짝 꽃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정혜승/ 다음 대외협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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