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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대통령’은 왜 실패할 가능성이 높나
후버 대통령 전철…재벌 대변하면서 ‘서민 프렌들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갈등 치우치지 않게 조정해야
2010년 07월 27일 (화) 21:16:21 이봉수 hibongsoo@danbinews.com
   
▲ 이봉수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미국 후버 대통령은 자수성가한 기업가였고 지금도 역대 최고 상무장관으로 꼽힌다. 그런데 대통령으로서는 역대 최악으로 꼽힌다. 이명박 대통령 또한 자수성가한 기업인이었고, 서울시장으로서 능력을 높이 평가한 지지자들에 의해 대통령직에 올랐다. 대통령으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장차 어떻게 될까? 아직은 유보적이지만, 후버의 전철을 밟고 있는 면이 너무나 많아 놀랍다.

‘경제대통령’ 이미지로 집권에 성공했고, 규제완화와 재벌 친화정책, 부자 감세와 법인세 인하, 복지지출 축소 등을 경제 살리기의 주요 수단으로 한다는 점에서 매우 흡사하다. 후버가 실업자 구제에 도움이 될 거라며 추진한 토목공사는 후버댐과 세인트로렌스 운하인데, 이 대통령도 규모와 기능이 좀 다를 뿐 비슷한 공사들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기업 프렌들리’를 입에 달고 다니던 이명박 대통령이 갑자기 재벌을 혼내고 ‘서민 프렌들리’ 행보를 보이자 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있다. 역시 후버의 행적을 살펴보았더니, 그도 집권 후반기에는 ‘서민 프렌들리’ 행보를 한 사실이 드러난다. 대공황이 닥쳐 중산층 가정마저 파탄에 이르러 정권이 위험해지자 홈(home)대출은행을 설립하고 자본가들에게 투자와 고용에 협력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줄 것처럼 압박한다. 그러나 효과는 크지 않았고, 결국 정권이 바뀌고 후임 대통령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을 만나 공황에서 탈출한다. 

이 ‘갈지자 행보’를 유심히 살펴보면 실은 일관성이 있다. 자본가나 기업가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은 ‘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갈망해왔고, 이 대통령 또한 집권 후 정책기조를 바꾼 적이 없다. ‘야단치기’는 ‘립서비스’지 정책이 아니다. 정책수단을 가진 정부가 자본가들에게 협조를 당부하는 것은 후버 때도 실패했다. 참담한 경제현실을 보면서도 정책 자체를 바꾸지 않는 점은 자본주의 총아인 CEO 출신이 대통령직을 맡게 될 때 편견의 완고함이 어떤 문제를 빚게 되는지 말해준다.

이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실은 친화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민주주의는 ‘1인1표주의’를 원칙으로 하지만, 자본주의는 ‘1원1표주의’에 따라 작동한다. 두 이데올로기는 국가와 시장의 역할을 둘러싸고도 공익성과 효율성을 앞세워 충돌한다. 자원배분의 효율성에 있어서도 시장이 국가보다 항상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정치는 이런 갈등을 조정하고 특히 공익을 수호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 최고위 조정자인 대통령이 주로 한쪽 이익을 대변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사회 문제들 중에는 ‘CEO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더 심각해진 것이 많다. 세계를 둘러봐도 자본가나 CEO가 집권한 사례 자체가 드물지만 집권해도 실패로 끝난 경우가 많았다. 후버한테 혼났기 때문일까? 미국 유권자들은 넬슨 록펠러의 꿈을 부통령에서 멈추게 했고, 로스 페로의 대통령 꿈도 무산시켰다. 이탈리아에서 베를루스코니가 두 번 집권했지만, 나라가 정치후진국으로 전락했다.

한국에서는 안 그래도 ‘삼성이 국가권력을 손안에 두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판에 재계의 이익에 민감한 ‘CEO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실은 기업논리가 우리 사회 전반을 휩쓰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두뇌집단이 삼성경제연구소였고, 2002년부터 ‘CEO 대통령론’을 전파하는 데 앞장섰던 언론이 <중앙일보>였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도 정부정책의 공익성은 쉽게 포기하지 않은 가치였다.

<한겨레>는 경제정책의 재벌 편향 문제를 가끔 지적하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CEO 대통령’의 문제점이 곳곳에서, 특히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전면적으로 불거지고 있는데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팀이 영포회 등 비선조직의 발호를 분석한 기사(7월10일)에서 이 대통령의 ‘기업오너형 리더십’을 문제 삼았을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오너형’이 아니라 ‘CEO형’이다. 서울시장이었을 때나 지금이나 임기내 단기성과에 치중하는 모습이 그렇다.

22일 이명박 대통령의 미소금융 방문도 “대기업 캐피털 금리가 너무 높다”는 발언만 2면 구석에 작게 보도할 사안은 아니었다고 본다. 대통령이 대기업 캐피털회사를 야단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원래 존재하던 금융사들이지만 출자총액 제한을 풀고 금산분리를 무력화해 산업자본이 저마다 ‘돈장사’를 더 쉽게 하도록 한 게 누구였고, 고용효과도 별로 없는 4대강사업에 예산을 쏟아 붓는 대신 복지지출을 줄여 서민들이 ‘살인적인’ 고금리 대출에 더 매달리도록 한 게 누구인가? <한겨레>는 27일 뒤늦게 서민금융의 실효성 문제를 짚었지만, 양극화한 금융조달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해 쓴 것은 아니었다.

기업인 출신이 고용창출에 유능하리라는 기대도 일면만 본 것이다. 기업인 출신은 투자유치에 유리하겠지만 고용을 줄이는 데도 이력이 난 사람들이다. 인건비를 줄여 기업을 살리려는 그들의 노력을 폄하할 일은 아니다. 다만 ‘노동시장 유연화’ 등 기업논리가 일방적으로 시장을 지배할 때 사회적 약자가 기댈 곳은 정부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쟁지상주의도 ‘CEO 대통령’ 취임 후 더욱 만연한 듯하다. 미취업자는 물론이고 취업자도 온통 기업에서 필요한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경쟁자를 이겨야 살아남으니 관용과 상호부조의 공동체 정신은 쇠퇴한다. 노조 자체를 허용치 않거나 관리대상으로 생각하는 기업문화에서는 반대 목소리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국가가 인터넷을 검열하는가 하면, 연예인이 쓴소리 몇 마디 한 것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한다.

유능한 기업인은 존중되어야 하고 우리 사회의 자산이기도 하다. 사회 각계에서 필요로 하는 곳도 많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라의 최고위 조정자인 대통령직을 맡기는 데는 위험이 따른다는 것이다. 대통령제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계열사 중역인사 하듯 주변인물로 한국사회를 접수하다시피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공기업은 물론이고 문화예술단체에 이르기까지 ‘묻지마 낙하산’을 내려 보내는 것은 기업이 추구하는 효율성과도 거리가 멀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기업인으로 있을 때 희망사항을 대통령이 된 뒤 정부정책에 전면적으로 반영해왔다는 점이다. 집권 초기 수출만 생각한 고환율정책, 대형 자동차 세금 감면, 대규모 토건사업, 수도권 규제 완화 등은 소득 양극화와 지역 불균형,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를 더욱 부추겼다.

‘기업 프렌드리’라는 말도 삼성 현대차 등 ‘몇몇 재벌 프렌들리’로 바꿔 불러야 정확하다. 대형건설사에 많은 이익이 돌아가는 4대강사업에 예산을 몰아주면서 중소건설업체 몫이었던 지방하천 정비사업은 지지부진하다. ‘세계 공항서비스 평가’에서 5년 내리 1위를 차지한 인천공항에 대한 민영화 논리는 ‘효율성’이 아니라 ‘재벌 프렌드리’라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빚더미에 앉더라도 공사를 발주하기를 고대하는 게 기업의 생리다. 그런 맥락에서 <한겨레>가 17일 단독보도한 ‘빚 늘린 지자체, 인센티브 준 MB정부’ 기사는 의미가 컸다. 다만 해설에서 이 정부가 무리한 토건사업으로 경기를 견인하려는 이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언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잘 나가던 김영삼 대통령도 후반기에 재계 건의를 받아들여 경기부양책을 펴다가 다른 요인들과 겹쳐 외환위기를 맞았다. 3대에 걸친 문민정권이 극소수 재벌에 상당히 휘둘리는 정치를 했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아예 ‘대리인 정치’를 했다고 할 수 있다. ‘CEO 대통령’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전례를 만들려면, ‘립서비스’가 아니라 정책을 통해 ‘대리인 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봉수/ 한겨레신문 시민편집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이 기사는 <한겨레>와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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