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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장학회'가 언론'장악회' 된 사연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주제: 구조와 사건으로 본 유신시대 ①
2012년 10월 23일 (화) 21:49:35 박경현 이성제 박정헌 기자 foxmulder7@naver.com

질곡의 현대사…오십대에 ‘원로’학자가 되다

“다칠까 걱정된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대학원생 시절, 현대사를 전공하겠다고 하니 지도교수로부터 돌아온 대답이다. 그는 유신과 광주라는 질곡의 세월을 경험하고 8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현대사 연구를 시작했다. 권력의 서슬 퍼런 감시에 그 말고는 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이 드물어 그리 많지 않은 나이(53)에도 현대사 분야에서는 ‘원로’에 속한다.

지도교수의 걱정과 달리 ‘크게 다치는’ 일 없이 지금껏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한 교수는 유신 40주년을 맞아, <한겨레>에 ‘유신과 오늘’이라는 글을 연재하고 있다. 유신시대라 불리는 박정희의 마지막 7년이 결과적으로 오늘의 한국사회 구조를 만들어냈다. 훗날 들어선 민주정권도 이때 만들어진 사회구조를 거의 바꾸지 못했다. 박정희가 존경받는 대통령 1위로 꼽히고, 딸 박근혜가 차기 대통령 유력 후보인 현실에서 유신은 엄연히 살아있는 과거다.

   
▲ 한홍구 교수는 박정희 유신 7년이 오늘 한국사회의 구조를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 허정윤
그러나 유신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지금 40대 이하에게는 좀처럼 실감하기 어려운 과거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는 40대 이하가 약 2600만 명으로 총 인구의 절반을 넘는다. 한 교수는 유신의 현재성을 인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강조했다.

“우리사회가 유신체제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1997년 대통령 선거입니다. 외환위기로 국가가 부도난 직후 선거가 있었죠. 부도 낸 세력에게 다시 정권을 맡기느냐, 아니면 다른 세력에게 정권을 맡기느냐,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정권교체는 당연한 일이었어요. 또 한나라당에서는 이회창과 대통령 후보를 두고 경합하던 이인제가 경선에 불복해 탈당하고 대통령 선거에 나가 보수 유권자 500만표를 가져갔죠. 여기에 지역구도를 역이용한 DJP연합에, 김현철 스캔들까지 있었습니다. 이처럼 김대중은 선거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요인이 몇 가지나 있었는데도 이회창에게 1.6% 포인트, 40만 표 차이로 겨우 이겼어요. 유신의 망령은 여전히 한국사회를 떠돌며 우리의 무의식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진짜 ‘내란’의 시대

"유신 선포 이전, 근대화와 경제발전에 따라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면서 박정희는 그때까지 ‘미국식 민주주의’로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달았죠. 60년대에서 7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는 박정희가 체질에 맞지 않는 미국식 민주주의라는 옷을 벗어 던지고 젊었을 때부터 익숙한 일본식 모델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포장해 바꿔 입은 시기였어요. 유신체제가 불가피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실은 박정희가 권력 유지를 위해 일으킨 명백한 내란이었습니다."

헌법 기능을 정지시키고 내란을 일으켜 집권한 세력이 내란죄로 무고한 학생들을 처벌한 아이러니를 보여준 것이 1971년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이다. 1971년 11월 중앙정보부는 서울대생 4명과 사법연수원생 1명이 모의해 대한민국을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로 심재권, 이신범, 장기표, 조영래 4명을 구속했다. 당시 용의자 중 한 명이었던 김근태는 잡히지 않았지만 유신시절 내내 수배생활을 해야 했다.

사실 이들은 국가전복 같은 내란혐의와 거리가 멀었고, 박정희 독재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만들다 잡혔을 뿐인데도 검찰은 이들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후에 재판부는 반국가단체 구성과 예비음모 혐의는 무죄를 인정해 4명에게 각각 징역 1년6월에서 3년을 선고했다. 박정희 군사독재는 김근태와 그 동료들에게 내란음모라는 죄목을 뒤집어씌운 자들이 일으킨 진짜 내란의 시대였다.

   
▲ 강의에 집중하고 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 ⓒ 허정윤
박정희와 이토 히로부미의 공통점

박정희 군사독재가 동시대 중남미 등 다른 나라에서 있었던 독재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박정희는 군복을 벗은 뒤 양복을 입고 독재를 했다. 이 말은 어찌되었든 선거를 치렀다는 뜻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미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