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강태영

▲ 강태영 기자
시민ㆍ농민단체들이 차기 정부에 10가지 식량ㆍ먹거리 정책과제를 제안하는 자리가 있다 하여 제천에서 서울로 취재하러 왔다가 실망만 안고 돌아서야 했다. 18일 오후 3시 서초구 양재동 에이티(aT)센터에서 ‘대선후보와 함께하는 이야기마당- 위기의 먹거리 희망을 말하다’가 열렸지만,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만 참석했기 때문이다.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 배옥병 대표의 대선후보들을 향한 외침에도 힘이 빠진 듯했다.

“지금 한국농업은 굵은 주름살, 거친 손마디를 지닌 칠팝십대 어르신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농민의 목소리와 바람을 대선후보들은 기억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더불어 친환경 무상급식 만족도가 95% 이상입니다. 먹거리를 통한 보편적 복지와 농업 되살리기를 위해 친환경 급식 국가예산을 50%로 높여줄 것을 기대합니다.”

유력 대선주자 가운데 유일하게 참석한 문재인 후보는 ‘식량주권 확보’, ‘친환경 무상급식’ 등 농민들의 소망이 주저리주저리 열린 ‘희망나무’를 전달받고 8가지 농업ㆍ먹거리 정책방안을 발표했다. 책임있는 농정과 먹거리 복지를 약속하고 한ㆍ미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통한 식량주권 보호를 약속했다.

“우리 농업ㆍ농촌ㆍ농민은 스스로 희망을 가꿔왔습니다. 그 노력 속에 미래가 움트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저의 농정구상은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하고 농민의 미래에 희망을 드리는 것입니다. ‘곡식은 주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이 서로 보듬을 때 세상이 좋아질 겁니다.”

안철수 후보 캠프에서는 박선숙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이 참석했다. 박 본부장은 행사에 불참한 안철수 후보를 대신해 양해를 구했다. 대신 안 후보가 당일 유일한 전면 무상급식 불모지인 춘천을 방문해 “무상급식은 누구나 당연히 받아야 할 보편복지다”라고 발언했음을 소개했다. 또한 건강한 먹거리와 식량안보가 국가적 과제라 생각하고 현장에서 끊임없이 대화하고 정책반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본부장은 농민과 시민의 목소리를 청취해 구체적인 정책을 차츰 내놓겠다고 말했지만 목소리를 청취하는 현장에 정작 안 후보는 없었다.

문재인 후보와 박 본부장이 기조연설과 축하문을 읽고 다음 일정을 위해 회의장을 나가자 회의장은 갑자기 썰렁해졌다. 기대했던 시민과 대선후보간 대화는 없었다. 민주당측을 대표해 참석한 김춘진 국회의원과 답답하고 뻔한 대화만이 오갈 뿐이었다. 안철수 캠프는 아직 농업ㆍ먹거리 담당자가 없다고 토론자를 보내지 않았고 박근혜 캠프는 애초 참석 요청에 무반응이었다고 한다. 진지한 대화와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대선후보와 함께하는 토론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새벽부터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농민ㆍ시민ㆍ친환경급식담당자들은 실망 섞인 어투로 지지부진한 토론을 이어나갔다. 농업ㆍ농촌ㆍ먹거리 문제에 느슨한 인식을 드러낸 두 캠프에 분노 섞인 질책도 터져 나왔다. 토론중에 김춘진 의원이 본인의 설명과 문재인 캠프의 정책이 다를 수 있다고 밝히자 한 시민은 “그럼 우리는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지, 여기서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냐”고 되물으며 얼굴을 붉히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행사 참석을 위해 아침 버스로 도착한 부여군농민회 소속 진근식(51)씨는 애써 이번 행사에 의미를 부여하려 했다. 비록 이벤트 성 행사로는 농민과 친환경 무상급식 등 먹거리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마련에 한계가 있지만 대선이라는 큰 판이 아니라면 의사를 전달할 통로마저 전무하다는 이유였다.

“친환경 무상급식도 자칫하면 허울만 좋은 사업이 될 수 있어요. 농민에게 정당한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다면요. 그걸 말하기 위해 오늘 찾아왔어요. 학교와 농민 간 네트워크는 지자체 차원의 지원에 덧붙여 중앙정부의 철저한 관리와 지원이 필요하다고요. 그런데 이야기마당 열어놓고 농민이 들어달라고 지방에서 달려왔는데 대선주자라는 사람들이 제 스케줄 바쁘다고 내빼면 어떡합니까?”

회의장 곳곳에서는 전국 각지 사투리가 섞인 한숨들이 쏟아졌다. "거시기하구먼”, "미칫나", "이기 뭐꼬". 대선후보가 없는 이야기마당에는 이야기꽃은커녕 이야기 씨앗도 뿌려지지 않은 듯했다. 민의가 담긴 희망나무는 오늘 행사 이후에도 대선후보 캠프에서 잘 커나갈까? 농민과 시민의 먹거리 안전과 먹거리 복지, 친환경 무상급식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이야기 마당의 풍경은 그런 전망을 어둡게했다. 대선후보들조차 귀를 기울이지 않는데 어디서 희망의 근거를 찾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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