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가 지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시공사

노갈레스시는 허리가 뚝 끊겨 있다. 담장으로 나뉜 이 도시의 북쪽은 현대식 건물과 차량이 즐비하다. 남쪽은 허름한 판잣집이 전부다. 똑같이 노갈레스로 불리지만, 북쪽은 미국 애리조나주의 일부이고 남쪽은 멕시코 소노라주에 속해 있다. 멕시코 쪽 주민의 평균 가계수입은 애리조나 쪽 주민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영아 사망률이 높고 성인 대다수는 고교를 졸업하지 못한다. 같은 곳에 살고, 같은 조상을 지닌 데다 즐기는 음식과 음악도 같은데 왜 이리 다르게 살까.

간단하게 ‘미국과 멕시코의 차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저자들은 이렇게 단순한 대답을 파고든다. 왜 어떤 나라는 가난하고 어떤 나라는 부유할까? 주목받고 있는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젊은 경제학자와 하버드대의 정치학자는 역사상 가장 많이 언급됐을 법한 이 질문에 도전한다.

답은 간단하다. ‘포용적 정치제도’에 기반한 ‘포용적 경제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면 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소수 엘리트층이 대다수 인민을 희생시켜가며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사회를 조직했다”면 활력을 잃고 가난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영국은 “시민이 권력을 쥔 엘리트층을 무너뜨려 정치권력을 한층 고르게 분배했고, 경제적 기회를 균등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사람들의 성취욕을 고취시켜왔기에 부유해졌다.

학자들은 그동안 국가 간 부의 불평등에 대해 지리적 위치가 다르거나 서로 다른 자원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혹은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설파한 막스 베버처럼 문화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고 보거나, 아예 부유해지는 방법을 몰라서라고 치부했다. 저자들이 이 모든 이론을 부정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는 데 안성맞춤인 사례로 드는 곳이 바로 남한과 북한이다. 오랜 단일민족으로서, 같은 지리적 위치에 사는 사람들이 상반된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남북한에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부국과 빈국으로 나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일반 이론의 모든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여서, 혹은 정신 나간 지도자가 잘못된 정책을 펴서 가난한 것이 아니다. 책은 “가난한 나라라고 죄다 공산주의 체제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북한은 여타 가난한 나라와 마찬가지로 공산당이라는 소수 엘리트층이 정치·경제권력을 독점하고 있기에 가난하다. 남한은 박정희 집권 시절만 해도 착취적 정치구조를 갖고 있었으나 “경제제도는 꽤 포용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말 많은 재벌그룹 역시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가 토대”라는 것이다. 물론 “1980년대에 포용적 정치제도로 이행했기에 지속적 성장이 가능했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어찌 보면 싱거운 설명이다. 그럼에도 한 나라의 포용적 혹은 착취적 정치·경제 제도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는가를 문명사적으로 파고든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과 멕시코의 차이는 유럽인의 신대륙 발견에서부터 시작한다. 당시 잉카제국 같은 중앙집권적 문명이 존재했던 남아메리카는 북아메리카보다 훨씬 부유했고 인구밀도도 높았다. 에스파니아 정복자들은 “원주민의 삶을 가능한 한 최저생계 수준까지 끌어내리며” 수탈했다. 반면 북아메리카는 자원과 사람이 흩어져 있었다. 이 지역에 들어간 유럽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포용적 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하나의 분기점이 됐다.

문제는 착취적 제도가 한번 시작되면 악순환을 거듭한다는 점이다. 착취적 제도에서 엘리트층은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으므로, 호시탐탐 그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반기를 노리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남미에서 정치적 불안이 계속됐던 이유다. 반면 일단 포용적 제도가 시행된 나라에서는 사회가 다원화하기에 권력 찬탈이 어려울뿐더러, 찬탈한 뒤에도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많지 않다. 따라서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가 선순환을 일으키며 안정적인 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

신대륙에서 이득을 챙긴 유럽도 비슷했다. 왕실의 힘이 약했던 잉글랜드는 무역으로 생긴 경제적 부가 나눠졌지만, 에스파니아는 왕실이 독점했다. 유독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나고 산업혁명이 싹트는 등 포용적 제도로 앞장서 갈 수 있었던 이유다. 한때 지중해를 호령했던 베네치아가 몰락한 것도 신흥 부자들을 견제한 기존 엘리트층이 제도를 폐쇄적으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상황은 서유럽과 동유럽, 중국과 일본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 미국 애리조나주 노갈레스(아래쪽)와 멕시코 소노라주 노갈레스(위쪽)의 모습. 저자는 “본디 한몸이나 다름없는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찌 이토록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를 묻는다. ⓒ 시공사

누구나 다 아는 손쉬운 방법을 왜 많은 나라에서는 쓰지 않을까.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지배층이 자신의 이득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탓이다. 쫓겨난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재산은 무려 700억달러였다. 정치를 장악하고 경제만 포용적으로 가져간다 해도 언젠가는 권력구조가 다원화되고 지배계층의 몰락을 초래한다. 저자들이 중국을 주목하는 이유도 착취적 정치와 허울뿐인 포용적 경제제도를 갖고도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포용적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한 “언젠가 김이 빠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책을 따라가다보면 ‘착취적 제도’를 가진 멕시코에서 독점을 통해 세계 최대의 갑부가 된 카를로스 슬림과 ‘포용적 제도’를 가진 한국에서 전횡을 일삼는 재벌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리송하다. ‘포용적 제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경제성장을 이끌어내지 못한 제도는 후진적일 뿐인지 의문도 든다. 다만 ‘착취’의 악순환을 빠져나오는 방법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저자들은 브라질 룰라 전 대통령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맞서 싸우는 시민들의 광범위한 연합운동”만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 이 글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졸업생 황경상 기자가 경향신문에 보도한 기사를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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