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한창록 ‘KBS스페셜’ 책임PD

▲ 한창록 'KBS스페셜' 책임PD. ⓒ 안형준
“얼마 전 중국이 탈북자를 강제 북송하고,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단식을 하면서 탈북 문제가 사회 이슈로 떠올랐죠. 그래서 탈북 문제를 다큐로 다루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신문이나 방송뉴스에서 많이 다뤘잖아요. 그럼에도 60분 분량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걸 먼저 생각했습니다.” 

KBS 한창록 책임PD는 지난 4월 8일 방송된 ‘KBS스페셜’ <탈북 그 후, 어떤 코리안>을 기획하게 된 계기를 소개하며 ‘시사다큐 만들기’를 주제로 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PD로서 KBS2의 대표적 시사 프로그램인 ‘시사투나잇’을 진행했고, KBS에서 시사 프로그램들을 축소하면서 뉴욕 PD특파원으로 나갔다가 귀국해 ‘KBS스페셜’ 팀을 이끄는 등 주로 시사다큐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시사PD가 맨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

한 PD는 KBS 유종훈 PD와 함께 탈북자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했던 과정을 통해 시사 다큐멘터리 제작 전반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시사 다큐멘터리가 세상 돌아가는 일을 거짓 없이 사실적으로 그린 것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의식을 갖고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기에 제작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시청자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유종훈 PD에게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사전 조사를 주문했다. 유 PD는 벨기에, 미국 등 제3국에서 망명자로 살아가는 탈북자의 사연을 제안했다고 한다.

▲ 한창록 'KBS스페셜' 책임PD가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한 현장 경험을 들려주고 있다. ⓒ 안형준

“북한 국경지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탈북 문제를 둘러싸고 한•중•미 사이에 어떤 정치적 역학관계가 있는지 등 탈북 문제를 두고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 중 유 PD가 가져온 이 아이템이 새로운 소재인데다 프로그램으로 가치가 있겠다 싶어 선택하게 되었죠.”

그는 유 PD가 해외로 촬영 가는 전날까지 탈북자들을 어떤 시각으로 다룰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했다고 한다. 연출자는 이야깃거리와 관련한 여러 태도 가운데 한두 가지를 선택해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연출자의 의도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연출자의 지적 수준이 많이 요구되는 것이 시사 다큐인 것 같아요. 역사적, 사회적 의식이 건강하게 자리 잡혀있지 않으면 아이템을 잘 잡아도 구성이나 형식을 적절하게 고르지 못하거든요.”

‘따뜻한 교감’ ‘차가운 태도’ 모두 필요

그는 시사다큐 PD는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과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적절했는지, 여기에 공정성 객관성을 갖췄는지도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D 한 명과 카메라맨 한 명, 단 두 명이 탈북자 집에서 먹고 자며 촬영한 이 다큐는 영국과 벨기에에서 6일, 미국에서 6일, 이동하는 기간까지 합쳐 촬영기간만 2주가 걸렸다. 40명 넘는 탈북자를 만나 설문조사를 했지만, 화면에 나온 사람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며, 취재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세상을 더 좋게 바꿀 수 있다는 식으로 설득을 하거나, 때론 회사에서 엄청 깨진다고 엄살을 부려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한다”며 다큐 PD를 5년 정도했을 때 터득하게 됐다는 인터뷰 노하우를 소개했다.

 ▲ 'KBS스페셜' <탈북 그 후, 어떤 코리안> 장면들. ⓒ KBS1 화면 캡처

 “인터뷰 대상자와 교감하는 것, 차갑게 인터뷰 하는 것. 두 가지 다 필요한 것 같아요.”

그는 인터뷰할 때 연출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에 대해 설명했다. 탈북 난민들 속마음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연출자가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따뜻한 교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연출자는 지금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왜 하고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는지 계속 생각하며 인터뷰 대상자의 이야기를 끊거나 혹은 다른 화제로 돌려야 하기 때문에 때론 ‘차가운 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영방송은 인민군가 작곡가도 다룰 수 있어야

한 PD는 지난해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8.15특집으로 ‘KBS스페셜’ <13억 대륙을 흔들다, 음악가 정율성>을 기획했다. 정율성은 광주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난 조선족 작곡가로, 중국에서 3대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KBS 이사회에서 방송을 앞두고 이를 제지했다. 이유는 공영방송에서 북한 인민군가를 만든 음악가 다큐멘터리를 방송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PD협회에서 성명서를 내고, 결국 올 1월 15일 방송됐다.

▲ ‘KBS스페셜’ <13억 대륙을 흔들다, 음악가 정율성> 장면들. ⓒ KBS1 화면 캡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는 이를 두고 KBS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었다며 본회의로 넘겼다. 그는 본회의에서 여러 질의에 응답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다큐멘터리는 제작자가 세상 일에 대한 주제의식을 갖고 만들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가치를 만드는 한편, 논란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큐는 세상이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중요하죠. 그러기 위해 PD의 식견이 더욱 중요하구요.”

KBS에서는 지난번 파업 때 대부분 PD들이 파업에 참여했는데, 한 책임PD를 비롯한 팀장 급 PD들까지 보직을 사퇴하고 파업에 동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BS 파업 키워드가 ‘리셋’입니다. 다큐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리셋’해서 수준을 한 단계 올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방송시장에서 다큐라는 장르의 위상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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