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돌려차기]

월드컵 축구가 막을 내렸다. 이변도 화제거리도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흥미만점이었던 것은 ‘문어의 신통력’과 ‘펠레의 저주’였다. 독일의 ‘파울’이라는 문어는 내리 여덟 번 승패를 맞힘으로써 미래를 100% 예측하는 영물(靈物) 중의 영물로 등극했다. 그러나 펠레는 예측이 빗나가 ‘펠레의 저주는 계속된다’는 화제거리를 만들어내다가 마지막에 ‘스페인 우승’을 맞혀 만신창이가 된 체면을 조금 만회했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문어가 연속해서 여덟 번 승패를 맞힐 확률은 256분의 1이다. 한편으로 펠레처럼 한번 밖에 맞히지 못할 확률도 지극히 낮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가장 큰 요인은 축구 경기의 의외성이다. 축구는 다른 구기 종목과 달리 득점이 힘들어 대개 한 골 차이로 승부가 결정된다. 스코어가 1점 차이면 경기종료 휘슬이 불 때까지 승패를 확신할 수 없다.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경우도 숱하게 많다. 스페인은 1차전에서 스위스에 지고도 우승했지만, 이긴 스위스는 16강에도 진출하지 못한 채 탈락했다. 축구의 의외성은 많은 사람을 축구장으로 몰고 가고 TV 앞에 붙잡아두는 요인이기도 하다.

펠레가 문어에게 참패한 원인도 우선 축구의 의외성에서 찾을 수 있다. 펠레는 남아공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 브라질과 스페인을 우승후보로 꼽았다. 하지만 몇 경기가 치러지고 특히 스페인이 스위스한테도 지자, “독일 아르헨티나 브라질이 우승을 다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어는 물론 그 때까지 경기 결과를 알 수 없었으니 흔들릴 이유가 없었다.

‘펠레의 저주’가 계속되는 이유는 우승국이 한 나라밖에 없다는 데도 있다. 한 나라를 빼고는 모두 언젠가 질 수밖에 없는 대회에서 펠레의 예측이 맞기란 어려운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8강에서, 독일은 4강에서 짐을 쌌다. 16강전부터 토너먼트로 경기를 치르는 데도 진정한 축구강국을 뽑기보다는 의외성과 흥행성을 높이려는 FIFA의 의도가 숨어있는 것 같다. 

‘펠레의 저주’는 강팀이 약팀에게 패할 수도 있는 축구의 의외성을 간과한 채 어딘가에서 패배 이유를 찾고 싶어하는 인간심리와 맞아떨어진다. 심리학자들은 ‘문어만도 못한 펠레’라는 담론에는 권위를 무너뜨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숨어있다고 말한다.

약팀이 ‘이변’을 일으키는 다른 이유도 있다. ‘펠레의 입’에 올려진 브라질 독일 아르헨티나 스페인은 모두 축구 강국이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 16강 8강 4강은 큰 의미가 없다. 국민적 열망은 오로지 ‘우승’이다. 경기에 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마음가짐도 약팀이 강팀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 않다. 축구 강국 대표선수들은 대부분 이미 빅리그에서 뛰고 있고 이미 세계적 스타인 경우도 많아 월드컵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지난 월드컵 우승국인 이탈리아와 준우승국인 프랑스 선수들의 플레이가 형편없었던 것도 동기 부족 탓이 컸으리라.
 
반면 축구 변방국 선수들에게 월드컵은 일생일대의 기회다. 한국 선수들에게도 월드컵은 꿈의 무대다. 원정 16강 진출을 위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할 각오가 충만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이 줄줄이 해외진출에 성공했듯이, 이번에도 여러 선수에게 빅클럽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CNN>은 ‘점쟁이 문어’의 예지력이 학습의 결과라는 보도를 했다. 문어가 독일 국기가 그려진 통에 들어있는 홍합을 꺼내 먹는 학습을 반복했으리라는 추측보도이다. 답은 ‘파울’의 사육사가 쥐고 있다. 우연은 아무데나 통하는 것도 아니고 영원이 계속될 수도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오버하우젠 해양생물박물관은 ‘파울의 은퇴’를 선언했다. “파울이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 사육사와 놀고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을 할 겁니다.” 한번 실수로 ‘파울’의 명예가 실추하는 위험을 피하려는 박물관의 배려가 훈훈하다. 아니면 그것도 상업주의일까?

장희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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