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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는 왜 '선정적인 편지'를 썼나
[이봉수 칼럼]
2012년 05월 29일 (화) 20:41:28 이봉수 hibongsoo@hotmail.com
   
▲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기가 제구실을 하게 된 것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빅뉴스 덕분이 컸다. 콜럼버스는 요즘으로 치면 좀 선정적인 ‘여행전문기자’ 기질이 있었나 보다. 그의 전기 <대양의 제독>을 써 퓰리처상을 탄 새뮤얼 모리슨에 따르면, 그의 항해가 뉴스 전달자와 투자자들의 눈길을 끈 요인은 그가 스페인 왕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내용, 곧 ‘나체 원주민, 특히 나뭇잎 한 장만 걸치고 다니는 여자들’ 얘기였다.

인쇄매체 보급에 한번 더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활판에 삽화를 넣는 아이디어였다. 그의 편지가 베스트셀러가 되자, 나중에는 치부를 가리기도 힘들 만큼 작은 나뭇잎 하나만 그려 넣은 나체화가 책을 장식했다. 미국에서 퓰리처계와 허스트계 신문들이 불과 1, 2만부씩 팔리던 신문시장을 100만부대로 끌어올린 것도 삽화와 만화를 동원한 선정적 보도 덕분이었다. 사진이 발달하고 사실보도가 중시되면서 사라져가던 삽화는 ‘의견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유럽 신문들에 의해 선정성을 떨쳐 버리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시민편집인실은 이 면을 통해 ‘칼럼과 여론면 혁신으로 진보신문이 활로를 찾아야’(2009.8.27) 하고, 딱 2년 전에도 ‘진보신문에 부족한 것은 오피니언+비주얼’(2010.5.26)이라고 주장했다. <한겨레>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조선> <중앙>은 오피니언면을 4면으로 늘렸다. 오피니언면에도 <한겨레>의 비주얼 요소는 필자들의 얼굴 사진이 고작이다.

<한겨레>는 이번에도 그런 점은 강화하지 않은 채 ‘좌우여백 확대’와 ‘5단 짜기’ 등에 주안점을 둔 지면개편을 했다. 시민편집인 견해에 덧붙여 좀더 객관적으로 지면을 평가하기 위해 전문가와 일반독자 조사를 병행했다. <중앙> <조선>의 디자인 에디터 등과 신문·잡지 디자인회사 대표에게 <한겨레> 디자인 개편에 대한 의견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디자인 전문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독자 반응이라고 생각해 <한겨레>를 열독해온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 40여명 등 일반독자들에게도 의견을 받았는데 시민편집인실로 들어온 독자들 의견과 함께 전한다.

우선 좌우여백 문제는 <한겨레> ‘지면개편 기본방향’에 따르면, 세계 권위지의 트렌드가 좌우여백을 크게 두는 것이라며 그 모델로 <파이낸셜 타임스>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을 들었다. 그러나 그 신문들이 그런대로 권위지인 것은 맞지만, 세계적인 신문디자인상들을 검색해보면 명함도 못 내밀고 있고 그것이 대세라는 얘기도 과장됐다 할 수 있다. 세계의 신문 수집과 모니터링에 취미가 있지만 <한겨레>만큼 좌우여백을 크게 둔 신문은 아직 보지 못했다.

세계 신문의 대세는, 대판 6~7단 짜기, 베를리너판과 타블로이드 5~6단 짜기다. 이번 개편이 그만큼 혁신적일 수도 있고 어색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겨레>는 대판인데도 좌우여백을 크게 두고 과감하게 5단 짜기를 했는데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얻은 것은 개편팀이 밝힌 대로 편집된 지면이 날렵해져 주목도를 높이고 선택과 집중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이는 <한겨레> 숙원이었으니 그 효과가 극대화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려면 출고부서에서 개편된 디자인에 걸맞은 기사를 많이 넘겨야 할 텐데, 창간 24돌 기획물 등을 빼면 변화가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는다.

 

   
 

지면평가를 해준 사람들 중에는 잃은 것이 적지 않다는 견해가 많았다. 우선 기사 꼭지 수와 길이가 줄어드는 문제는 제작 과정에서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세로 광고가 치고 올라오거나, 세로 사진이 출고될 때 꼭 키울 필요가 없는 사진도 크게 들어가게 돼 지면 압박이 심해진다. 사진은 크게 싣는 추세지만 적은 인원에도 품질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5단 짜기에서는 편집의 다채로움이 줄어드는 문제가 있다. 좌우여백이 “시원해 보인다”는 반응도 있지만 마주보는 면 사이는 공백이 두 배로 커져 “황량하다”는 식의 평가가 많았다. 오피니언면을 예로 들면 마주보는 면 사이와 아래위 칼럼 사이에 늘 광화문 네거리 같은 ‘십자로’가 생긴다.

좌우여백에 대해 “베를리너판 편집을 대판 위에 올려놓은 것 같다”, “액자 속 신문 같다”는 언급도 있었다. <더 타임스>와 <가디언>은 대판에서 콤팩트판(타블로이드) 또는 베를리너판으로 전환하고자 할 때 한동안 두 판형을 동시에 발행하거나 다른 판형의 섹션을 끼워서 내놓아 독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한겨레>는 호흡 긴 기사들이 출고되는 토요판의 성공적 평가에 힘입어 전면 5단 짜기로 직행한 듯한데 뉴스면에는 적지 않은 부담을 주는 것 같다.

<한겨레> 제호도 가운데로 다시 옮기고 약간 축소했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제호는 가능하면 일관성을 필요로 하는데, <한겨레>만큼 짧은 역사에 제호의 모양·색깔·위치를 자주 바꾼 신문도 없는 듯하다. 세계 유수신문들의 제호가 중세 베네치아에서 신문값으로 준 동전 이름에서 유래된 <가제트>나 전령을 뜻하는 <헤럴드>, 우편배달 시대의 유물인 <포스트>를 고수하고, 디자인도 대개 고색창연하게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머리기사 제목에서 ‘한결체’라는 정체성을 포기하고 고딕체로 돌아간 것에 대해 특히 다른 신문 디자인 에디터들이 아쉬워했다. 독자들은 한겨레 고유의 느낌이 사라진 것 같고, 한 면 전체가 관련 기사일 때는 상관없지만 다른 기사가 밑에 실릴 경우 부속 기사처럼 보여 지나치게 된다는 얘기도 했다.

‘입에 쓴 약’이 되라고 좋은 점보다 거슬리는 점을 많이 지적했는데, 시민편집인실 견해도 일부 ‘적극적 독자’의 목소리일 따름이다. 이것이, 계속 추진되어야 할 지면혁신에서 제동장치는 되지 않았으면 한다. 변화에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일정 기간이 지난 뒤 편집·디자인 전문가와 사내 구성원, 그리고 일반독자들을 상대로 더 정밀한 지면평가가 이루어져, 장차 디자인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진화하길 기대한다. 지난해 ‘세계 최고 디자인 신문상’을 받은 데는 2009년 창간된 포르투갈 작은 신문 < i >였다.


* 이 기사는 <한겨레>와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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