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문제세미나] 윤병선 로컬푸드연구회장

[농업농촌문제세미나]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농업농촌문제에 대한 기자·PD 지망생들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이번 학기 신설한 강좌입니다. 대산농촌문화재단과 연계된 이 강좌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권위있는 학자, 전문농사꾼, 농촌지역 사회활동가, 농업농촌전문기자와 데스크 교수 등이 참여해서 이론과 농촌현장실습, 취재보도를 하나로 결합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단비뉴스>는 그 강좌 중 일부를 중계해 농업농촌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왜 농민은 항상 가난할까요?”

▲ 소 값은 폭락하지만 사료 값은 치솟으면서 한우농가의 시름은 깊어 간다. ⓒ 진희정

올 초 치솟는 사료 값에 일부 한우농가에서는 소가 굶어 죽고 만 원짜리 송아지가 등장할 정도로 산지 소 값은 폭락했지만 소비자 가격에 변동은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과일과 채소 값에 장바구니 부담은 커지지만 농가소득이 늘었다는 소식은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

로컬푸드연구회 회장 윤병선 건국대 교수(53)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농업농촌문제세미나] 특강에서 현대 자본주의 체제를 가능하게 한 경제기반인 농업이 오늘날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데에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농민들의 죽어나는 소리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그가 보여주는 각종 통계자료들은 농촌이 처한 위기를 여실히 드러낸다.

2006년 3,230만원이던 가구 당 소득은 2010년 3,212만원으로 감소했으며, 2005년에 견주면 농가소득은 5년 만에 고작 2만원 늘어났다. 이 수치도 농업소득 이외에 이전소득이나 경조수입, 퇴직일시금 등 비정상소득이 포함돼 있어 순수농가소득은 다소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 윤 교수의 설명이다. 농가소득 정체뿐 아니라 도•농간, 농촌 내 양극화가 심해진 것 역시 문제다.

“도시와 농가 사이의 소득비율이 해마다 증가해 지금은 그 격차가 40% 가까이 벌어져 있습니다. 농촌 안에서도 중간층은 줄어드는 대신 극빈층이 늘어나고, 상위가구와 하위가구의 소득격차가 심해지는 등 오히려 도시보다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고 있죠.”

농가에서 소비해야 하는 것들이 생산한 작물가격을 웃돌면서, 농가판매가격지수와 농가구입가격지수가 가위모양으로 교차 역전되는, 일명 ‘세례현상’이 농가소득의 취약성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즉 농가는 언젠가부터 생산해내는 농산물보다 투입재 비중이 높아지면서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통계청은 2010년 가구당 농가부채가 2,721만원으로, 전년 2,626만원에 견주어 3.6%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윤 교수가 보여준 ‘미국 소비자의 식료품비 지출 중 농민 몫’을 나타낸 그래프에 따르면, 소비자가 먹을거리에 1달러를 쓸 때 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은 1910년 40%에서 2000년 7%대로 감소했다.

▲ 농촌의 위기와 먹을거리 위협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윤병선 로컬푸드연구회장. ⓒ 안형준 

부지런한 농민들도 왜 항상 가난할까? 윤 교수는 소비자가 지출한 1달러 몫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장비용에 주목했다. 과거에는 농민과 소비자가 직접 거래하는 형태였다면, 현대 농식품 체계에서는 가공•판매•운송 등 중간 유통 과정이 늘면서 농민의 순소득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는 농산물이 생산자 손을 떠나 소비자 식탁에 오르기까지 이동한 거리를 뜻하는 ‘푸드 마일(food miles)’이 길어진 것과 관련 있다.

“미국산 오렌지, 중국산 마늘, 스페인산 삼겹살. 요즘은 바다 건너 온 식품들이 우리 밥상에 가득할 정도로 농과 식의 거리가 물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멀어졌습니다. 소비자가격의 상당부분이 유통시장에 흡수되면서 농민 몫은 항상 제자리일 수밖에 없죠.”

자본에 종속된 먹거리

농과 식의 거리가 멀어지면 자연히 소비자의 밥상도 위태롭다. 푸드 마일이 길어질수록 먹을거리 자체의 안전성은 오히려 떨어지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최근 각종 식품에서 유해물질들이 자주 검출되고, 아토피나 소아비만 등 생활 질병이 많아지는 것도 늘어난 식품 이동거리가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푸드 마일이 늘어난 먹거리는 유통가격 상승과 안전성 문제를 유발할 뿐 아니라, 운반과정에서 과다 사용되는 에너지가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농과 식의 거리가 멀어지면 특정기업이나 국가에 먹거리가 종속되는 현상이 심해져, 농·식품수급체계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고 윤 교수는 우려했다.

“핸드폰은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 나라에서도 생산하거나 수출할 수 있지만 농산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식량가격과 원유가격의 변동추이가 유사한 것은 이미 먹거리가 투기자본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죠. 식품소비용이 아닌 투기용 즉, 비상업적 거래 비중이 큰 먹거리는 수급체계를 취약하게 만듭니다.”

▲ 윤 교수는 자본에 종속된 먹을거리가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들 수 있는지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 안형준

그는 또 한정된 국가나 기업에 농·식품 수출량이 집중돼있는 먹거리 과점구조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미국 바이오 에탄올 정책을 예로 들었다. 식량재고 안정 수준을 나타내는 기말재고량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농·식품 특히 옥수수를 에탄올로 변형시키는 바이오 에탄올 정책을 강행했다.

“저개발국에 기근자가 고통받는 상황에서, 육류소비가 자유로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의 먹거리를 위해 많은 양의 곡물이 가축 사료로 쓰이는 것도 모자라, 이제 먹거리를 두고 사람과 자동차가 경쟁하는 상황이 펼쳐진 겁니다.”

“쌀을 위해 핵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미국 농식품복합체는 거대자본에 의한 먹거리 독과점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곡물의 70%를 독점하고 있는데, 현재 한국 곡물의 약 80%를 공급하고 있는 곡물회사 카길(Cargill)이 대표적이다. 식량 주권과 직결되는 ‘종자’도 마찬가지다. 현재 종자를 수출하는 기업 중 세계 상위 10대 기업이 전 세계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97년 외환위기 당시 국내 4대 종묘회사가 외국에 팔리면서 소유권을 모두 뺏긴 경험이 있다. 청양고추는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종자임에도, 외국기업에 로열티를 주면서 역수입하고 있는 상태이다. 지난 10년간 우리가 해외에 지불한 종자 관련 로열티는 1,500억 원이 넘는다. 이렇게 기형적인 구조다 보니 국제 식량가격이 다국적 기업들의 움직임에 따라 요동칠 수밖에 없다. 윤 교수는 “언젠가 쌀을 보유하기 위해 핵을 보유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자본에 의한 식량종속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했다.

“40년대 멕시코에서부터 시작된 녹색혁명이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녹색’이었는지 의문입니다. 녹색혁명은 다수확 품종의 대규모 단일재배를 위해 화학비료나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데 결국 단기적으로 수확량이 크게 늘었지만 오염이 심해지고 지력이 저하되는 등 농약에 대한 의존을 높였습니다. 브랜드 특화에 목적을 둔 환경훼손형 농업인데다가,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외부자원에 의존한 자기수탈형 농업이죠.”

농과 식의 거리 줄이기, 로컬 푸드

윤 교수는 지역경제나 지역의 식품 필요성과 무관한 세계적 시스템의 농업생산이나, 에너지· 자원을 과소비하는 녹색혁명형 농업 대신 ‘농과 식의 거리를 줄일 것’을 요구했다. 이른바 ‘로컬 푸드 운동’이다. 복잡한 식품 공급망을 줄여 농민에게 정당한 몫을 돌려주고 소비자는 직거래를 통해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받도록 하는 로컬 푸드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신뢰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 농과 식의 거리를 줄이는 로컬푸드 운동은 농민에게 정당한 몫을 돌려주고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 안형준 

94년 5월 처음 문을 연 원주 ‘농업인 새벽시장’이 대표적이다. 주차장인 원주천 둔치가 차들이 별로 없는 새벽에 원주 농민과 시민들이 직거래가 이뤄지는 장터로 바뀐다. 농민들은 수확한 농산물을 중간단계 없이 안정적 판로로 판매하고, 지역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먹을거리를 구입할 수 있어, 연 25만 명이 원주 새벽시장을 찾는다.

로컬 푸드가 줄이고자 하는 농과 식의 거리는 단순히 '물리적 거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충북 괴산의 솔뫼 공동체가 운영하는 '꾸러미 사업'은 소비자가 농민에게 미리 농산물 값을 내는 대신, 다양한 작물을 소량으로 재배한 농민이 수확한 작물을 일주일 또는 격주로 소비자에게 직접 보내주는 것이다. 미리 값을 치른 소비자와 좋은 작물을 직접 골라 보내는 농민 간에 신뢰가 필요한 것처럼, 로컬 푸드 운동은 농과 식의 '심리적 거리'도 줄이고자 한다.

윤 교수는 “미국 농림부가 '너의 농부를 알고, 너의 음식을 알라(Know your Farmer, Know your Food)' 캠페인을 하고 있다”며 “농작물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수출하는 데 주력하던 미국마저도, 농부를 알고 바른 먹거리 관계를 만드는 로컬 푸드 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확대'하고 '거리를 축소'하며 '신뢰를 확산'하는 것, 나아가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먹거리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로컬 푸드 운동의 핵심이다.

농업은 1•2•3차산업을 곱한 ‘6차산업’

"지역에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 중 하나가 의사입니다. 하지만 대개 그의 아내는 서울에 있고, 아이들은 해외에 있는 경우가 많지요. 이런 경우 지역에서 번 돈이 모두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게 됩니다. 그러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지 못해요."

윤 교수는 먹거리의 지역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며, 일본 나가노시의 '지산지소(地産地消)운동‘을 소개했다. 지산지소운동 추진협의회는 지역의 수요동향을 파악해 생산계획을 세워 안정적인 공급·소비체제를 구축한다. 직매소에서 농민과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것은 물론, 그 지역 학교에 지역 농산물을 제공해 소비처를 확대했다. 직접 농산지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식농교육은 샌드위치 같은 양식이나 인스턴트 식단을 한 끼 식사로 그리던 아이들의 그림에 채소와 전통식이 등장할 정도로 효과를 냈다.

▲ 바른 먹을거리를 위한 미국 농림부의 'Know your Farmer, Know your Food' 캠페인(왼쪽)과 일본의 지산지소운동을 소개하고 있는 한 누리집.

윤 교수는 “농업이 1·2·3차 산업을 결합해 6차 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메밀을 생산하는 농업과, 이를 빻아서 국수로 만드는 제조업, 메밀국수를 조리해 판매하는 서비스업을 한 지역에서 연계해 운영하는 식이다.

“1+2+3과 1x2x3은 그 답이 똑같은 6이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1대신 0을 넣으면, 전자는 값이 5이지만 후자는 0이 돼 버리죠.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의 부가가치가 크다고 해서 1차 기본산업을 없던 것으로 만들면 모두 ‘0’이 돼 버립니다. 기본 산업인 농업이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1x2x3의 6차 산업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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