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세명대 교직원 소장품의 ‘화려한 외출’

김기창•김기만, 이왈종 등 대가들 작품 선보여

▲ 세명대학교 민송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 '畵, 화려한 외출'. 이왈종 화백의 그림 <제주생활의 중도>등이 전시되고 있다.
흐드러지게 피고 떨어지는 동백꽃 나무 아래, 파란지붕을 그늘 삼아 한 사내가 다리를 꼬고 누워 책을 읽는다.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 돌담 한 구석에는 장독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집 나서는 아낙을 사내 대신 누런 개가 배웅한다. 그네들의 추억을 동백나무 곳곳에 숨겨놓은 이왈종 화백의 그림 <제주생활의 중도>가 지역민들을 만나러 지난달 26일 ‘화려한 외출’을 했다.

오는 18일까지 충북 제천시 세명대학교 민송기념관에서 열리는 전시회 ‘畵, 화려한 외출’은 개교 21주년을 맞은 세명대와 제천•원주의 그림 소장가들이 유명화가 작품들을 선보이는 행사다. 전시 작품 28점은 이상범 김기창 김기만 김구림 김병종 송영방 송수남 배병우 등 대가들의 서양화와 동양화, 서예, 사진 작품들이다.

서울에서도 한자리에서 만나 보기 쉽지 않은 작품들이 전시회가 거의 없는 제천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분명 낯설고도 화려한 외출임에 틀림없다. 세명대학교는 설립자인 고 권영우 박사를 기리는 기념관을 지난해 건립하고 이번에 첫 전시회를 열었다.

이번 전시회에는 특히 운보 김기창 화백의 <청록산수>와 동생인 김기만 화백의 새우 화조화가 나란히 걸려 눈길을 끌었다. 김기만 화백은 북한 조선화 4대 화가로 꼽히는데, 한국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북한군에 입대해 월북했다. 김기만 화백은 2000년 이산가족 상봉단으로 서울을 방문해, 중풍을 앓고 있던 형을 눈물로 상봉하며 작품을 맞바꾸기도 했다.

▲ 전시중인 운보 형제 작품들. 왼쪽이 김기창 화백 작품 <청산유수>, 오른쪽이 동생 김기만 화백의 새우 화조화다.

군사정권과 부조리한 시대상을 담은 최초의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로 유명한 전위예술 1세대 작가 김구림과 제주 4•3항쟁을 주요 작품소재로 삼는 민중화가 강요배 화백의 <물매화 피는 언덕>도 전시돼 있다. 그뿐 아니라 신해혁명 때 청나라 조정의 실권을 잡고 임시총통이 돼 스스로 황제라 칭했던 위안스카이(원세개)와 청말 개혁가였던 장지동의 서예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사진작품으로는 수묵화 같은 소나무 사진으로 잘 알려진 배병우 작가의 <바다>, 유목인의 생활을 포착해 그들의 욕망을 표현하는 정금희 작가의 티베트 사진이 있다. 그 밖에도 대한제국 광무3년에 금강산 일만이천 봉과 사찰 위치를 목판에 새겨 찍어낸 판화 <금강산사대찰전도>, 풀벌레를 종이에 채색한 다색판화 <초충도>와 <십장생도> 등 조선시대 작품도 만날 수 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배병우 작가 작품 <바다>, 정금희 작가의 티베트 사진, <십장생도> <초충도> <금강산사대찰전도>. 

문화향유의 기회평등을 위하여

작품이 훼손될 위험도 있고 고가의 개인 소장품들이기 때문에 소장자들이 처음에는 대여를 꺼렸지만, 전시회 취지를 듣고 무료로 작품을 대여했다. 이왈종 화백의 <제주생활의 중도>를 대여한 서범석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교내에서도 다양한 명품들을 접할 수 있게 하고, 제천시민들에게도 문화 향유의 기회를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 대가들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들. 마지막 사진은 전시회가 시작된 지난달 26일 세명대 김유성 총장 등이 작품을 관람하는 모습이다. ⓒ 허정윤

“모든 존재는 연기(緣起)에서 이뤄지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평등하다는 것을 하얀 종이 위에 담는다.”

이왈종 화백이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평소 생각이다. 모든 현상은 원인인 인(因)과 조건인 연(緣)이 서로 얽혀 생기는데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20여 년간 서귀포에 살면서 자신의 ‘중도’(中道) 철학을 구현하고자 했던 그는 <제주생활의 중도>가 아무런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제천에서 전시되고 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대도시와 시골의 문화 향유 기회가 조금은 평등해졌다며 즐거워할 것만 같다. 

▲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민송기념관은 지난해 4월 세명대 설립자 고 권영우 박사를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 ⓒ 허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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