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

언론사는 수백 개, ‘진짜’ 기자는 어디?

“요즘 기사에는 스토리는 있지만 히스토리가 없어요. 텍스트는 있어도 콘텐츠가 없는 거죠. 팩트를 가지고 있더라도 우리 사회와 관련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달해주지 못한다면 기자라고 할 수 없죠.”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은 늘었지만 사회적으로 실력과 권위를 인정받는 기자는 나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1961년 ‘박정희-케네디’ 회담 당시, 정부 발표만 받아 적은 다른 언론사와 달리 <합동통신> 리영희 선생은 <워싱턴 포스트> 기자를 취재해 미국쪽이 민정이양을 요구한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박 대표는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은 필경사(筆耕士)에 불과하다며 진실을 밝혀내야 ‘진짜’ 기자라고 강조했다.

▲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민주화 이후의 우리 언론'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김태준

“기자란 기본적으로 지식인이며, 지식인은 사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한국 근대사에 대한 상당한 공부를 해야 진정한 언론인이 될 수 있고 리영희, 송건호 선생처럼 대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사실이 아닌 사안이 지닌 의미를 사회 맥락적으로 연결해 전달하는 능력을 갖는 것이 필수적이죠.”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은 제4부라 불리며 막중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입법•사법•행정부뿐 아니라 언론까지 제 기능을 해야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난해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방사능 누출사고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원전 사고에 대한 시각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원전 전면 폐쇄’를 외치거나 ‘원자력 에너지 말고는 현실적 대안이 없다’고 주장하는 두 진영이었다. 하나의 상황에 의견이 나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 대표는 언론이 여론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방사능 문제가 불거지자 독일 정부는 20년 내에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없애겠다고 발표했고, 한국 정부는 지금이 기회라며 원전 증설을 주장하고 있죠.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전의 위험성을 꾸준히 보도하고 있어요. 미국 <뉴욕 타임스>는 원전에 문제가 없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고요. 한국 언론에서는 언제부턴가 후쿠시마 이야기는 쏙 들어가버렸죠.”

6개 언론사 ‘파업 대란’에도 국민 반응 시큰둥

이명박 정부 들어 정연주 KBS 전 사장을 시작으로 언론인은 12명이 해직됐고, 4백여 명이 징계를 받았다. MBC•KBS•YTN 방송 3사와 <국민일보> <부산일보>는 언론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파업중이다. ‘6개 언론사 동시 파업’이라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국민들은 별 관심이 없다. 언론사 파업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1987년 민주화 이후 언론과 사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민주화의 원년인 1987년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1987년 6.10 항쟁을 통해 민주화를 일궈낸 뒤 언론인들은 민주화 항쟁이 만들어준 언론 민주화를 누려왔다. 언론인들은 ‘배부른 돼지’로 살던 1980년대 이전을 반성하며 언론노조를 출범시켰고 ‘방송문화진흥회’ 제도를 도입했다. 편집권 독립을 외치며 언론 자정 능력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고 국민들은 민주화만 이뤄지면 언론도 제 역할을 하리라 생각했다.

1987년 이전은 정치권력이 모든 것을 압도하던 시절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전국적으로 기자 1천여 명을 자르고, 서울에 종합지 6개, 경제지, 스포츠지, 영자지는 2개씩만 남기고 나머지는 없애버렸다. 지역신문은 ‘1도(道) 1사(社)’를 원칙으로 했다. 군사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사를 통제하는 조처였다. 살아남은 언론사들은 늘어난 광고에 배부른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1987년 이후, <한겨레>와 SBS 등 새로운 언론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고 경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언론사들은 최대 광고주인 대기업 눈치를 봐야 했고, 자본의 영향력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언론이 권력과 적당한 거리를 지키지 못한 결과,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는 언론사들은 하나둘 줄어들었고 시민들은 더 이상 언론을 신뢰하지 않았다.

BBC 보도는 좌파든 우파든 일단 신뢰

박 대표는 대다수 사람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중심적 언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그 원인에 대해 합치된 결과를 도출해 내지 못한 천안함 사태를 예로 들었다.

“신영복 선생이 ‘(우리 사회에는) 신뢰 집단이 없다’고 말씀한 적이 있죠. 믿을 놈이 없다는 겁니다. 영국의 경우 BBC가 보도하는 것은 좌파든 우파든 일단 믿거든요. 우리 국민들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모릅니다.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정하려면 집단 8,90%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합의된 진실’이 없는 거죠. 진실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합의가 돼야 합니다.”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시민 저널리즘이 도약하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 말처럼 ‘모든 시민이 기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그렇다면 1인 저널리즘 시대에도 전문(직업)기자와 언론이 사회에 필요할까? 박 대표는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시민 저널리즘의 한계를 보완하고 시각의 균형을 맞춰 사실의 다양한 측면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전문기자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민 저널리즘 시대에도 언론이 시민사회의 구심점이자 기폭제 역할을 한다”며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언론의 위치를 강조했다.

▲ 박 대표의 특강에 많은 예비 언론인들이 참석했다. ⓒ 안형준

프로 기자는 신뢰와 균형, 필력 갖춰야

“광우병이 문제가 됐을 때 시민들을 촛불집회 현장으로 이끈 것은 MBC ‘PD수첩’입니다. ‘PD수첩’을 보면서 미국산 쇠고기에 반대할 수 있는 근거를 발견한 것이죠. 전문기자에게는 시민 저널리즘보다 ‘이 부분은 확실히 더 낫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의 신뢰성,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균형성, 그리고 이를 충분히 전달해줄 수 있는 필력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한국 언론 상황을 박대표는 어떻게 진단할까? 그는 “<뉴스타파> <제대로 뉴스> <나는 꼼수다> 등 대안 언론이 나타나는 지금의 현상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기존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나타난 병리적 현상이기에 언론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에겐 오히려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또 이런 상황이 심화한 이유로 광고 의존도가 높은 언론사의 재정구조 문제를 들었다. “프랑스 신문 <르몽드>는 구독료와 광고의 비중이 6대 4입니다. 우리나라는 1대 9정도 되는데, 갈수록 그 의존도가 더 커져서 지금은 수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광고 수입에만 의존하면 독립성을 지키기 어렵고, 이는 언론의 신뢰 상실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이 정치·자본권력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박 대표는 체코의 한 개혁적 지식인이 ‘사명감 없는 언론은 냉소주의, 이윤 없는 언론은 파산“ 이라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언론사의 이윤과 경제적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프레시안>도 전체 수입 대부분을 광고에 의존하고 있다”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독립성을 지켜내는 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음을 토로했다. 

전문가 저널리즘 추구하는 <프레시안>

박 대표가 생각하는 <프레시안>의 지향점은 어디일까? 박 대표는 “<프레시안>은 현실 파악에 피상적인 기존 언론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만든 매체이기 때문에,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프레시안>이 전문가 기자를 지향하고 오피니언 리더를 독자로 겨냥하기 때문에 대중성은 다소 떨어진다”고 말했다.

“민주화 이전에는 ‘전두환은 타도 대상’이라는 구호처럼 적과 아군이 분명했지만, 1987년 이후에는 흑과 백을 분명히 나눌 수 없는 다원화한 사회가 됐습니다. 의약분업 문제를 예로 들면 한 가지 사안에 의사, 약사, 정부, 국민이라는 네 집단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의 체계적인 분석이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에 대해 깊이 알면 알수록 진보와 보수로 갈라지지 않고, 둘 사이에 일정한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저널리즘특강>은 보도와 칼럼, 방송제작, 매체창업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담론형성과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해온 분들이 진행합니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언론사의 핵심간부와 논객들이 한 특강을 <단비뉴스>가 중계합니다. 이 특강은 우리 저널리즘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도 흥미롭지만, 학생이 쓴 기사를, 함께 강의를 듣는 강좌책임교수가 데스크를 봄으로써 ‘강연ㆍ연설기사 쓰기’ 수련을 겸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특히 언론인이 되려는 학생들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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