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사랑 리포트: 굿바이 탄소 <2>

탄소 줄이기 체험 25일 차. 아침 8시 45분.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큰 쓰레기통을 쓰윽 밀며 사무실로 들어온다. 아침에 청소아주머니를 만난 건 오랜만이다.
“여기 이 종이박스들 다 버려도 되죠?”
“아, 아주머니. 그거 분리수거용으로 만들어 놓은 박스에요”
“(중얼중얼하며)어차피 다 쓰레긴데 뭘.......”
이럴 수가. 그간 사무실에서 애써 분리수거한 쓰레기를 아주머니는 몽땅 섞어서 버려왔던 것이다. 

점심시간. 식당에 가서 물티슈가 나오면 종업원에게 되돌려준다. 동료가 냅킨 한 장을 뽑아 바닥에 깔고 수저를 올려놓는다. 그러면 나는 냅킨을 살짝 옆으로 밀어놨다가 식사를 마친 후 사용한다. 동료들은 식사하는 중에도 여러 차례 냅킨을 뽑아 쓴다. 밥을 먹다 말고 주위를 둘러봤다. 다들 큰 고민 없이 물티슈와 냅킨을 쓰고, 식사를 마친 후엔 일회용 컵에 담긴 달착지근한 커피를 즐긴다.

퇴근시간. 동료는 재빠른 몸놀림으로 엘리베이터 3대의 하강 버튼을 동시에 누른다.
 
“우리 이 중에 빨리 오는 거 타요.”

이런! 일전에 '에너지 절약을 위해 엘리베이터 가동 횟수를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을 때 고개를 끄덕이던 동료였다. 곧 이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바로 옆에 뒤따라온 엘리베이터 문도 덩달아 열린다.

탄소 줄이기 도전을 시작한 지 한 달째. 실천이 잘 되는 일과 어려운 일이 확실히 나뉜다. 쉽게 몸에 배게 된 습관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씻고, 양치 때 컵을 사용하고, 점심시간에는 사무실 컴퓨터를 끄고 나간다. 식당에서는 물티슈와 냅킨을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행동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때, ‘나 혼자 해봐야 무슨 소용이지?’하는 생각에 힘이 빠지는 걸 느낀다. ‘좋아, 이럴 게 아니라 물귀신 작전으로 나가보자. ’탄소절감에 무신경한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끌어들이기로 했다.

작전 1. ‘수방’을 포섭하라.

수방. 수학을 가르치고, 성이 방씨라고 해서 학교에선 아버지를 이렇게 부른다. 수방은 가끔씩 전기료를 아껴야겠다는 의지가 충만해질 때가 있는데, 내가 보기엔 영 초점이 안 맞는다. 어둑한 부엌에서 불도 안 켜고 저녁을 드시는가 하면, 가족들과 소파에 앉아 같이 텔레비전을 보다 갑자기 꺼버리고 혼자 나가신다.

“전기압력밥솥 때문에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는 거다.”

끼니 한 번 거르지 않는 분이 전기밥솥 쓰는 걸 아까워하시지만, 아버지의 생활 패턴을 들여다보면 설득력이 바닥을 친다. 누워서 책 읽다가 밤새 스탠드 켜놓기. 컴퓨터를 끄지 않은 채 잠들기.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 섞어 버리기. 어쩌다 장을 봐 오실 때 늘 같은 부식거리를 사와서, 유통기한 지난 두부 등을 버리게 만드는 일까지.

수방을 설득해서 본격적으로 전기 절약을 실천하기로 했다. 우선 동생 방과 서재에 있는 컴퓨터 중 ‘밤샘 가동’의 원흉인 서재 컴퓨터를 치우자고 설득했다. 보통 컴퓨터를 사용할 때 20분 이상 자리를 비우면 컴퓨터를 꺼두는 게 효율적이다. 대기전력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재부팅하고 기다리는 게 번거로워 그냥 죽 켜놓고 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막상 컴퓨터를 치우고 나니 나는 늦은 밤에 서재 컴퓨터가 켜져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아 좋고, 엄마는 방에서 컴퓨터하고만 놀던 동생이 아버지가 쓰시는 동안 거실에 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고 흐뭇해하신다.

쓰레기 처리도 중요한 ‘수방 프로젝트’의 하나. 아버지는 일반 쓰레기통 바로 옆에 놓인 분리수거용 박스 안에 아무거나 버려 엄마를 힘들게 하신다. 아버지가 가장 헷갈려하는 분리수거는 플라스틱류 처리다. 과자 봉지, 라면 봉지 또는 아이스크림 껍질을 어디에 버려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면 봉지의 뒷면 혹은 옆면을 보면 된다. 재활용 표시가 있다면 분리수거함에! 이런 분리배출표시제는 2003년부터 시행됐지만, 수방은 이번에야 확실히 알게 되셨다. 

 

▲ 수방에게 아이스크림 포장은 더 이상 일반 쓰레기가 아니다. 분리수거함에 차곡 차곡 쌓아둔 모습. ⓒ 방연주

수방의 에너지 절약 다음 목표는 냉장고와 식품류. 샀던 걸 또 사 오시는 아버지를 위해 냉장고 문에 영수증을 붙여 두기로 했다. 물론 냉장고를 열어 어떤 식재료가 있는지 살펴볼 수도 있지만 자주 문을 여는 것도 에너지 낭비의 지름길. 보관 목록표까지 따로 만들기는 번거롭고, 최근에 장을 본 영수증을 활용하면 요긴할 것 같았다. 다 쓴 식재료에는 펜으로 줄을 그어, 뭐가 필요한지 한 눈에 알 수 있게 했다. 냉장고 문 여는 횟수를 매일 4회만 줄여도 이산화탄소배출을 월 0.3㎏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전기료가 절감되는 것은 물론이고, 기껏 장봐왔더니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 불상사를 겪지 않아도 되니 일석이조!

탄소 줄이기를 시작하기 전 네 식구인 우리 집 전기 요금은 4개월 간 평균 5만 원 가량이었다. 또 수도 요금은 평균 월 3만원 정도. 단지 컴퓨터 한 대 없애고, 최대한 콘센트에 꽂힌 스위치를 다 뺐을 뿐인데 2월에 5만4,150원이었던 전기료가 4월에 3만3,383원으로 줄었다. 계절이 바뀐 것을 감안하더라도, 전기난방을 하지 않는 우리 집에서 확실히 의미 있는 감소세라고 자평할 수 있다. 수도료는 큰 폭은 아니지만 3천원 정도 줄었다. 5, 6월의 전기료, 수도료는 더 기대가 된다. 쓰레기봉투는 워낙 분리수거를 철저하게 하는 엄마 덕에 평소에도 낭비가 없었던지, 그리 눈에 띄게 줄지 않았다.

  

▲ 팀장과 회사 동료들의 참여로 재활용 박스를 이용해 분리수거함을 만들었다. ⓒ방연주

작전 2. 사무실에 탄소절감 바이러스를

“연주씨. 아직도 탄소 줄이기 해요?”
“네. 일단 66일 동안 해보려고요”
“그럼 우리 사무실에서도 분리수거할까요?”
“(이게 웬 떡!) 아, 좋죠. 제가 박스를 마련해볼까요?”
“연주씨가 분리수거용 박스를 만들어서 분류 표시를 붙여주세요”
“네. 알겠습니다아~.”

탄소 줄이기 도전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사무실 사람들이 하루 이틀 시간이 가면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팀장은 빈 박스를 다른 팀에서 직접 얻어 와서는 분리수거함을 만들도록 도와줬다. 이면지를 써서 <종이류> <플라스틱류>라고 쓴다. 팀장은 분리수거함 꾸미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내 모습을 보더니, 자신이 강렬한 문구 한 줄 써보시겠단다.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 아니다, 지금부터다!’

▲ 왼편 상하수도요금은 보통 때보다 약간 적게 나왔고, 오른편 4월달 전기요금은 계절적인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의미있는 감소이다. ⓒ 방연주

팀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분리수거함 사진을 찍더니 직원용 게시판에 올리기까지! 게시 글 제목은 이름 하여 ‘분리수거의 주역들’이었다. 게시판에는 여러개의 댓글이 달려 우리를 격려했다.
 
알고 보니 회사에 동지도 있었다. 자료실의 장 선생님, ‘장샘’도 알고 보니 탄소 줄이기 실천자였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하지만 곧 이어 어려움을 토로한다.

“분리수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박스를 따로 만들었는데, 청소 아주머니가 죄다 쓸어 가시더라고요. 언젠가는 메모지에 ‘분리수거 한 거니까 통은 그대로 두고 가주세요’라고 써 붙였는데도 소용 없었어요.”
“아, 정말요? 저희 팀도 분리수거용 박스 만들었는데.......”
“회사에선 아무리 개인이 실천하려고 노력해도 한계가 있어요. 탑다운(top-down)방식으로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을 따로 마련해야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할지 모르겠네요.”

집에선 가족을 설득하면 되는 일이니 쉬웠지만, 회사는 달랐다. 각 층마다 청소하는 분들이 외주 용역업체 소속이라 동선이 바뀌고 일이 번거롭게 되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또 우리 팀만 분리수거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장샘’ 같은 동지를 모아서 회사 차원의 분리수거 정책을 요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책 <기후변화 이야기>에 따르면 영국의 베드제드 주거단지에는 에너지 저소비형 주택이 모여 있다. 전기 사용량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경보가 울려, 대형 냉장고와 텔레비전은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즉 집 설계자체가 에너지 소비에 대한 욕망을 제어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되, 지나친 소비로 환경의 지속성을 해치지 않도록 공동체를 설계한 셈이다. 개인이 에너지를 아끼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업이나 지역공동체, 정부가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 나가면 훨씬 뚜렷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녹색 성장’ 구호가 유행가 가사처럼 흔해졌지만, 재생에너지 등 공급체계의 변화가 화두가 될 뿐 국가적 에너지 절약 열기는 아직 미지근한 우리 현실에선 특히.

66일. 빠르고 편리한 것에 길들여져 있던 내가 느리고 불편한 쪽으로 한 발짝씩 움직이는 시간이었다. 66일 동안 열심히 노력했고, 작은 성과도 올렸지만, 과거 습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대충 낭비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혀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요요현상’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 불편하긴 해도 ‘저탄소생활’이 충분히 가능하고 혜택도 많다는 것을 체험한 이상,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바쁜 일도 없는 데 엘리베이터 버튼을 주르륵 누르는 대신, 운동 삼아 9층까지 천천히 계단을 오른다.

방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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