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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군의 추억
2010년 06월 21일 (월) 06:11:25 다니엘 모리스 morrisdn@hotmail.com

   
▲ 다니엘 모리스(세명대 원어민교수)
얼마 전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인사동에 간 일이 있다. 내가 탄 택시의 기사는 마치 빙판 위의 김연아처럼 매끄럽게 도로 위를 누볐는데, 눈가의 주름으로 보아 70대는 족히 되어 보였다. 그의 운전 솜씨는 빠르면서도 안정감이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모습이었다. 나는 무척 감명을 받아 그의 경력을 물었는데, 한국말로 ‘47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이어 춘천의 ‘캠프 페이지’ 미군기지에서 카투사(KATUSA)로 있을 때 함께 근무하던 미군 병장에게서 운전을 배웠다고 영어로 설명해 줬다.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나 역시 17년 전 같은 부대에 근무하던 미군이었고, 많은 카투사 친구들이 있었다고 하자 그도 놀라워했다. 택시기사와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공유한 오랜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한국에는 약 36,0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그 숫자는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미군의 수와 같다. 미군이 주둔하는 명분은 한국 정부와 한국인이 자유를 지키도록 돕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도되지 않았던 미군의 역할 중 하나는, 특히 한국 전쟁 직후에는, 인간적인 수준에서 한국인 개개인을 돕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전쟁 때 월남해서 강원도 원주에서 미군을 위해 요리사로 일했던 사업가를 만난 일이 있다. 그는 미군 부대에서 오래 일했고, 나중에 외식 서비스 업계에서 상당히 성공했다. 나는 또 젊은 시절에 미군의 야전 응급치료소에서 일하다 의학에 관심을 두게 돼, 나중에 의사가 된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다. 그리고 캠프 페이지 출신의 이 친절한 택시기사까지. 무척 만족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듯 보이는 그는 가족 부양 수단이 된 운전기술과 영어를 배웠고, 그 시절에 대해 좋은 추억들을 간직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옛날 얘기다. 요즘 젊은 한국인들의 눈에 미군은 성가시거나 반갑지 않은 점령군일 뿐이며, 떠나주었으면 하는 존재인 것 같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인의 바람대로 많은 미군 부대가 조용히 그리고 단계적으로 폐쇄되고 있다. 춘천의 캠프 페이지도 벽이 무너지고 철거되면서 잡초가 무성한 미국 서부의 유령도시 같은 모습이 되었다.
 
점진적인 미군 철수는 크게 봐서 한국과 미국 두 나라, 그리고 한국인과 미군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군과 한국민의 인간적인 교류가 사라지게 된 점이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그 장인급의 택시기사에게 캠프 페이지가 곧 해체되니 늦기 전에 가보라고 권했다. 이미 반 이상이 철거되었고 나머지도 곧 같은 절차를 밟으리라고. 활짝 웃느라 깊어졌던 눈가의 주름이 사라지면서 그의 표정은 심각하고 우울해졌고,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나도 같은 심정이었다. 캠프 페이지는 젊은 시절 남자로서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적성과 직업을 발견하게 해준 곳이었다. 근무가 끝난 시간에 나는 카투사 및 한국 민간인들과 언어 교환을 시작했다. 그때 나는 한국이 얼마나 멋진 나라인지, 내가 언어를 가르치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 깨달았고, 가르치는 직업을 선택하기로 했다. 17년 후 나는 전문적인 영어 강사로 한국에 와 있다. 내 경우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젊은 미군 병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사례가 될 것이다.
 
지금, 혹은 미래에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미군 병사들의 한국 주둔은 깊고도 의미 있는 영향을 남겼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갑작스럽고, 환영받지 못하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충격(impact)이라는 표현보다는 점진적이고,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영향(influence)이라는 표현을 선택했다. 이런 의미에서 두 나라 사람들은 서로 덕을 본 것이다.

(번역/유정혜 기자)
 


(영어원문)
I was in Seoul recently and hired a taxi to take me to Insa-dong. The driver weaved through and around traffic like Kim Yuna on ice. He was quick yet gentle, fast and smooth despite the age lines in his eyes telling me he was elderly man in his 70s. The taxi driver was a true professional behind the wheel of a car. I was so impressed that I asked him how long he had been driving to which he replied in Korean, “47 Years.” Then just as quickly he mentioned, in English, that he learned to drive as a KATUSA (Korean Augmentation To United States Army) from his American buck sergeant as he called him at Camp Page in Chuncheon. Imagine his and my surprise when I said that I, too, was a soldier in Camp Page 17 years ago and befriended many KATUSAs. We both became like old friends who had something meaningful in common.
 
There were approximately 36,000 US soldiers stationed in Korea. I think it’s no accident that 36,000 was approximately the same number of soldiers that were casualties in the Korean War. One of the intended purposes of maintaining American soldiers was to help South Korea preserve its government and freedoms. But one of the unintended results, especially in the early days shortly after the war, is I believed it helped Koreans in a human, individual level as well.
 
I met a North Korean civilian refugee who fled south during the war and found a job cooking for G.I.s in Wonju. He remained in that job for many years and eventually became quite successful in the food service industry. I also met an elderly doctor who worked in an aid station as a young man for an Army camp which ignited his interest in the medical field and he eventually pursued a career as a doctor. Then there was this friendly taxi driver from Camp Page. He seemed like a happy and content man who not only learned a new trade skill of becoming a driver to raise and support his family, but also took away a good grasp of English language skills and a number of fond memories.
 
But, that was then. These days in the younger eyes of Koreans it seems the U.S. Army presence is seen as a nuisance or an unwelcome occupational force with a desire that they leave. Perhaps they are right. Their desire is coming true in a subtle and gradual way as many camps are closed or in the process of closing down. Camp Page is a prime example as it is now walled off, in shambles, and resembles an American Old West ghost town with only the tumble weeds missing.


This gradual departure is, I’m sure, a good thing for South Korea and its citizens as well as for the U.S. and its soldiers today and for the future of both countries in a broad, general sense. And yet, I believe the U.S. soldiers’ presence will be missed in a human level. I mentioned to the master taxi driver that Camp Page is closed and recommended that he visit it soon because half of it is already demolished and the rest to follow soon. The deep, wrinkled age lines in his experienced eyes formed from his smile suddenly smoothed out as his smile disappeared and became serious and sullen, almost sad.              
 
But he isn’t the only one. Camp Page also helped to define me as a man and led me to discover my path and career in life. On my off duty hours, I began a language exchange with KATUSAs and Korean civilians. I was amazed at how wondrous Korea was and at how much I enjoyed language teaching and decided to make a career of it as well. 17 years later I’ve returned to Korea as a professional language teacher. I’m also an example of how Korea can also influence young American soldiers in a positive manner.
 
It may never be fully admitted or recognized now or in the future, but the presence of U.S. soldiers in Korea has had a deep and meaningful influence. I hesitate to say “impact” as something sudden and almost unwelcome or hurtful and instead choose “influence” as something gradual, imperceptible and yet positive. In this sense the people from both nations benefited from each other.  (Daniel N. Morris/세명대 원어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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