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ㆍ금리ㆍ환율로 물가불안 부추기고 ‘실명제’로 억제 안 먹혀
[두런두런경제] 김광진 제정임의 경제카페

김광진(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새해 여러 가지 경제 현안 중에서 국민들이 가장 많이 걱정하는 게 물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해 물가 불안으로 많은 고통을 겪은 데 이어 올해도 물가 여건이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왜 그렇습니까.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당장 피부로 느껴지는 불안은 기름값 때문이죠. 이란의 핵개발에 대해 미국이 제재에 나서면서 중동 지역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데, 석유수급에 차질이 생길지 모른다고 해서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석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이 연초부터 불안한데다, 올해는 4월 국회의원 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까지 있지 않습니까. 선거과정에서 돈이 많이 풀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 역시 물가 관리의 불안을 높이는 요소입니다. 최근 물가불안을 주도해온 농산물 작황도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한 치 앞을 자신하기 어려운 형편이고요. 정부는 지난해 4%에 이어 올해 3.2%의 소비자물가 상승을 예상하고 있는데, 이게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대다수 가계의 소득은 제자리인데 생활물가가 많이 오르다보니 앉은 자리에서 돈을 뺏기는 느낌인데요, 올해도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유류세 일괄 인하보단 피해 계층에 실질적인 지원 해야

김: 요즘 기름값이 많이 올랐는데요, 유류세 등 세금을 걷어서 재정정책을 펴는 것과 유류세를 낮춰서 모두에게 가격인하 혜택을 주는 것 중 어느 쪽이 낫다고 보십니까.

제: 휘발유 등에 붙는 세금이 워낙 높으니 물가안정을 위해 유류세를 낮추자는 요구가 있는데요, 저는 물가측면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 대응, 탄소배출 억제 차원에서 유류소비를 줄여야 하는 과제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유류세를 낮춰 일괄적으로 기름값을 인하하기보다는 가격 상승을 계기로 유류 소비를 억제하면서 저소득층과 영세자영업자등 유가상승의 피해 계층에게 재정으로 실질적인 지원을 해주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지난해 물가상승이 원자재값 상승 등 ‘비용 인플레이션’의 성격이 강했다면 앞으로는 ‘기대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기조적인 물가 불안이 고착화될지 모른다는 지적도 있던데요, 비용 인플레이션과 기대 인플레이션, 무슨 얘깁니까?

제: 비용 인플레이션 혹은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은 금리나 임금, 원자재가격 등 생산요소 가격이 올라서 물가가 비싸지는 현상입니다. 지금까지는 원자재와 농수산물가격 등이 올라 다른 제품값도 덩달아 오르는 ‘비용 인플레’ 성격이 강했죠. 반면 기대 인플레이션은 비용 인플레이션이 오래 지속되다보니 경제주체들이 ‘앞으로도 물가가 더 오르겠지’하는 예상을 하게 되고, 이 때문에 물가 상승이 가속화하는 현상입니다.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니까 자기가 판매하는 제품 가격을 미리 올리거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전반적인 물가 상승이 가속화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 기조적으로 물가 불안이 고착될 가능성이 높은데, 지금 우리 경제가 그쪽으로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 최근에 머리를 자르러 갔더니 서비스가격도 만만치 않게 올랐다는 생각이 들던데요, 기대 인플레이션이 이미 작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어느 수준인지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있나요.

제: 한국은행이 일종의 소비자심리조사를 통해서 기대 인플레이션 지수를 매달 측정합니다.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연속으로 기대 인플레이션이 4%대를 기록해 매우 높은 수준에 와 있습니다. 많은 소비자들이 향후 1년간 물가가 4%대의 고공행진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상당히 높아져 있는 것이죠.

금리 인상 시기 놓친 탓에 물가 상승 가속화

김: 이렇게 기대 인플레이션 수준이 높아진 이유는 구체적으로 뭐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제: 지난해 내내 물가가 불안했기 때문이죠. 물가 불안의 가장 큰 이유는 일단 이상기후 등으로 농수축산물 수급이 불안정했던 탓이라고 하겠지만 동시에 거시정책의 실패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부는 글로벌금융위기에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2008년 이후 금리를 파격적으로 낮추고 시중에 돈을 엄청나게 풀었는데요, 2010년 이후 성장률이 회복된 후에도 제 때 금리를 정상화하지 않아 물가 상승이 가속화했습니다. 정부가 경기 부양에 욕심을 내면 물가 안정을 책임 진 한국은행이 제동을 걸어야 하는데, 한국은행은 그러지 못하고 금리 인상 시기를 놓쳤습니다. 저금리가 오래 지속되다보니 예금 이자에 만족하지 못한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올려 받아서 전월세난, 전월세가격 상승을 부추긴 측면도 있고요. 이와 함께 수출대기업 중심의 고환율 정책이 수입 물가를 높인 것도 기대 인플레에 영향을 줬다고 하겠습니다.

김: 오는 13일에 새해 첫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리는데요, 이 같은 물가 불안에 대한 고려가 기준 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제: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대부분 금통위가 이번에 기준 금리를 인상도 인하도 하지 못하고 동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더군요. 기대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면 금리를 올려서 물가 안정 의지를 확실히 표현해야하는데요, 지금은 유럽 위기와 중동 불안 등으로 경기 침체의 위협이 커지는 상황이죠. 그래서 일부 국가에서는 금리 인하까지 단행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금통위가 금리를 올리는 걸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의견입니다. 또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추는 것 역시 현재의 물가 불안을 고려할 때 선택하기 힘든 대안이어서 동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입니다. 만일 한국은행 금통위가 지난 2010년 하반기쯤 기준금리를 충분히 올렸다면 물가불안도 일찍 잠재우고, 지금쯤은 금리를 인하할 여력도 생겼을 텐데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물가 실명제',  이미 실패 경험한 'MB물가지수'와 비슷

김: 그렇다면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물가를 안정시키고 기대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겠다는 구상인가요.

제: 정부는 금리와 환율 등 근본적 물가 대응수단이 되는 거시변수를 제쳐 놓고 지금 ‘물가 실명제’를 통해 품목별 관리를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물가 실명제라는 것은 농림부와 지식경제부 등 관련 부처 간부들에게 고춧가루, 배추, 휘발유 등 개별 품목의 가격안정을 책임 지우는 정책이죠. 이명박 대통령이 도입을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채 물 나오는 구멍을 손바닥으로 막는 것처럼 무모한 일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들 품목의 가격은 기상조건이나 국제정세 등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 관리에 한계가 있고, 자칫 잘못하면 1970년대의 물가통제처럼 가격구조의 왜곡만 낳을 수 있습니다. 이미 지난 2008년이후 중요 품목을 특별관리하기로 ‘MB물가지수’가 실패했는데, 비슷한 정책을 반복하는 데 대해 비판의 소리가 높습니다.  

김: 제가 보기엔 올 한해 물가에 부담을 되는 요인 중 하나가 유로존과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상대적으로 달러가치가 올라가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그러면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신흥시장 통화가 약세로 전환될 수 있는데요, 그러면 우리로서는 (달러대비 원화환율이 올라가면서) 수입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그동안 우리 정부는 수출대기업들을 생각해서 인위적으로 고환율 정책을 유지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실제로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나요.

제: 정부가 보유 외환을 동원해서 달러를 사거나 파는 등 개입을 하고 있죠. 정부는 이를 환율의 급변동을 조정하는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 즉 미세조정을 한다고 설명하는데 그동안 수출대기업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고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개입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수입물가가 안정될 수 있도록 시장에서 달러대비 원화환율이 자연스럽게 하락하는 것을 용인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환율정책과 금리, 그리고 재정정책에서 물가안정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둔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기대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농산물의 수급 조절, 유통구조 개혁, 공정경쟁체제 확립 등의 정책을 병행해야 물가 안정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김: 최근에 소 값 하락 파동에도 불구하고 쇠고기값이 안 떨어지면서 축산물의 복잡한 유통구조 문제가 다시 한 번 부각됐는데요, 농수축산물의 유통구조가 개혁되면 실질적으로 물가안정에 도움이 될까요?

제: 그럴 것이라고 봅니다. 지난 2010년 배추파동 때도 ‘유통단계가 너무 복잡해서 산지 농민과 소비자가 모두 손해를 본다’며 정부가 유통구조개혁을 추진했는데요, 그 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또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요, 산지에선 소 사육두수가 너무 늘어 소 값이 급락하고, 사료값은 급격히 올라 송아지를 굶겨 죽이는 농가까지 나오고 있죠. 그런데도 도시의 식당이나 백화점 등에서 쇠고기 값은 거의 내리지 않고요. 축산물의 복잡한 유통단계 때문에 중간 유통업자들이 많은 몫을 챙기는 구조라서 그렇다는 것인데 유통단계를 단순화해서 산지 농민과 소비자가 함께 혜택을 볼 수 있는 개혁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선진국에는 유통 개혁을 통해 이런 효과를 보고 있죠. 정부가 개별 품목의 가격을 챙기는 물가 실명제 대신 이런 유통구조 개혁을 근본적으로, 지속적으로, 확실히 해내도록 추진하고 점검하는 정책 실명제를 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기사는 KBS2라디오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1월 11일 <김광진의 경제포커스>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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