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스타일도, 맛집 찾기도 내 멋대로, 내 맛대로

날마다 쏟아지는 새로운 과학 기술 용어, 따라가기가 힘겨우신가요? 팔로우가 뭔지, 증강현실이 뭔지, 소형위성발사체가 뭔지... 포털사이트에서 지식 검색을 해봐도 도대체 뭐가 뭔지 '외계어' 처럼 느껴지신다구요?  이젠 테크토크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어려운 기술용어를 알기 쉽게, 재밌게, 친절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당신의 TQ(기술지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드리겠습니다. <편집자>

미용실에 가면 대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부탁하게 된다.

“예쁘게 잘라주세요.” “깔끔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미용사에게 머리의 운명을 맡긴 후 결과를 확인할 때의 반응은 대략 두 가지다.

“뭐 그럭저럭 괜찮네.” “망했다~!”


▲ 한울 네오텍이 개발한 헤어아트360 시연 사진(유튜브)


하지만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을 활용한다면 ‘망할’ 가능성을 확 줄일 수 있다.  컴퓨터 웹 카메라에 얼굴을 인식시킨 뒤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고르면 그 스타일을 한 내 모습이 모니터에 나타난다. 옆모습을 보고 싶다면 머리를 살짝 돌려주면 된다.

실제 얼굴을 카메라로 잡은 뒤, 머리스타일이라는 정보를 합성하는 ‘증강현실’ 기술이 응용된 것이다. 이렇게 현실을 강화하는 것, 즉 현실의 자료에 가상의 정보를 추가해서 보여주는 것을 ‘증강현실’이라고 한다.

최근 들어 증강현실이 화두가 된 것은 이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들이 유명세를 타면서부터다. 아이폰에는 ‘스캔 서치’, 안드로이드폰에는 ‘오브제’라는 어플이 있다. 휴대전화에 달린 카메라로 건물이나 도로 등을 비추면 화면 위에 정보를 담은 말풍선이 뜬다. 음식점을 비추면 간판 옆에 전화번호, 메뉴와 이용자들의 서비스 평가까지 줄줄이 뜬다. 당장 배는 고프고, 맛없는 음식으로 소중한 식사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을 때, 구세주 같은 어플이 아닐 수 없다.


스마트폰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찍으면 그의 얼굴사진 옆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블로그 주소가 뜨는 어플도 개발되고 있다고 한다. 의학 쪽에서는 증강현실이 더 의미 있는 진보를 낳고 있다. 예를 들어 환자의 배를 CT(X선을 이용한 컴퓨터단층촬영), MRI(고주파를 이용한 자기공명영상) 촬영해 컴퓨터에 입력한 후 특수 안경을 쓰고 보면 뱃속 내장과 뼈의 위치가 정확히 보이는 것이다. 이를 활용하면 보다 정교한 수술이 가능할 것이다.


▲ 스크린을 비추면 미리 입력된 정보에 따라 환자의 장기가 영상으로 표시된다 (http://3dvis.optics.arizona.edu/index.html)


증강현실 기술은 영상정보나 위치정보를 인식해 반응하도록 하는 것이 뼈대다. ‘마커(Marker)’라고 불리는 검정색 사각형과 점 모양으로 이뤄진 패턴을 인식하는 방식과 GPS(위성항법장치)를 활용해 주변 건물정보를 보여주는 방식이 있다. 첫 번째는 바코드 리더, 즉 전자상표를 읽는 원리와 비슷하고 두 번째는 차량용 네비게이션과 비슷한 원리다. 스캔서치나 오브제 같은 스마트폰 어플은 GPS를 활용한다.


힙합그룹 투애니원(2NE1)이 출연한 빈폴 진 광고는 영상정보를 활용했다. 빈폴 홈페이지에 있는 특정한 문양의 AR(증강현실)카드를 내려 받은 뒤 인쇄해서 웹 카메라에 비추면 그림이 있던 자리에 네 명의 멤버가 등장해 춤을 추는 모습이 나타난다.


▲ 빈폴진의 AR카드를 웹 카메라를 통해 촬영한 모습 ⓒ전은선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면 투명 스크린 앞에 선 주인공 존(톰 크루즈)이 양 손을 이용해 동영상 화면을 늘였다 줄였다 하다가 다른 곳으로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증강현실을 활용하면 실제로 이 영화에서 쓰인 ‘손가락 마우스’를 그대로 구현할 수 있다. 손가락 끝에 마커를 달아 웹 카메라가 그 움직임을 감지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영화의 배경은 2054년이었는데, 그 미래가 아주 가까이 와 있는 셈이다.


증강현실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다르다. 세컨드 라이프(
www.secondlife.com)는 가상공간에서 실제와 비슷한 세상을 흉내 내는 것이지, 현실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증강현실은 현실이라는 바탕 위에 가상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소니(Sony)사에서 개발한 플레이스테이션3(PS3)용 게임 아이펫(EyePet)은 가상의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카메라가 거실화면을 비춘다. 그 위에 원숭이처럼 생긴 가상의 애완동물이 나온다. 사용자가 카메라를 보면서 애완동물을 쓰다듬는 시늉을 하면 이에 반응해 TV화면 속 애완동물이 기분 좋다는 표정을 짓는다. 실제 환경과 나의 동작, 그리고 가상공간의 애완동물이 결합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가상현실에 비해 훨씬 몰입도가 높다.

인지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재활훈련프로그램도 증강현실을 이용하면 훨씬 안전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 사용자는 웹 카메라에 연결된 특수 안경을 쓰고 훈련을 하는데, 음식점에서 서빙 하는 상황을 설정해 놓고 마커가 담긴 접시를 들어 올리면 특수 안경 화면 속에는 김치찌개를 얹은 접시가 나타난다. 실제 김치찌개로 연습한다면 뜨거운 국물에 델 염려가 있지만, 증강현실을 이용하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 인지발달장애인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 왼쪽은 사용자의 실제 모습, 오른쪽은 특수 안경을 통해 보이는 이미지


점점 우리 곁을 채우고 있는 증강현실은 우리를 어떤 세계로 데려갈까? 우선은 정보를 훨씬 쉽게 습득하고 더욱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카메라로 책 표지를 찍으면 서평이 나오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화면에 날씨와 별자리가 표시되는 식으로. 특수 안경에 인식되는 신체 부위를 정확히 절개할 수 있어서 어려운 수술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증강현실 기술을 악용하는 사례도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맛집에 일부러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누군가 왜곡된 정보를 웹에 올리고 이것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유통됨으로써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얼굴을 찍으면 그 사람의 직장, 혈액형, 가족사항, 과거 인터넷에 올린 글까지 줄줄이 나와 사생활 침해 문제가 불거질지도 모른다. 정치적인 감시와 조작의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원자력 기술은 전력생산의 패러다임을 바꿨지만 히로시마와 체르노빌 등에서 가공할 원폭 피해를 남겼다. 증강현실의 미래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결국 선택은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통제하는가에 달렸을 것이다.


손경호/임현정/전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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