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심보선 시인
주제: 사회학적 상상력과 문학적 상상력

대학에 가려는 것도 ‘사회적 질병’

“열심히 할 수 있어. 다행히 끈기는 나의 특기거든. 그래, 크라이스트민스터는 나의 모교가 될 거야. 나는 모교의 사랑받는 아들이 되고, 모교는 그 아들에 만족할 거야.”

중세적 대학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학문의 성지 ‘크라이스트민스터’에서 나오는 불빛을 보며 학자의 꿈을 키우는 주드(Jude). 하지만 그것은 독학조차 사치인 가난한 시골 출신에 돌을 다듬는 석공인 주드에게 과분한 꿈이다. 토머스 하디 소설 <이름 없는 주드>의 배경인 크라이스트민스터는 가상의 대학공간으로, 지금의 영국 옥스퍼드대를 모델로 삼고 있다.

 ▲ 사회학적 상상력과 문학적 상상력에 대한 특강을 하고 있는 심보선 시인. ⓒ 이준석

심보선 시인은 계급 장벽을 깨고 엘리트에게만 열려있는 폐쇄적 교육의 전당에 과감히 도전한 주드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주드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주드가 대학에 입학하려고 보낸 편지에 학장들의 답신은 한결같았다. ‘귀하가 사회에서 성공하는 보다 나은 기회는 다른 길을 찾는 방법보다 귀하의 영역에 그대로 남아 현재의 직업에 매진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찬 대학은 그의 입학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이 없는 사회구조와 그 안에서 좌절하는 개인을 보여주는 이 소설을 통해 심 시인은 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질병’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드의 꿈이 순수하다고 할 수 있을지, 성공하고 싶다는 강한 집착과 욕망이 있었던 건 아닌지, 그는 반문했다. 사회적 성공을 동경하고 상류층 취향을 닮고 싶어 모방하는 주드는 사회적 질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그 병은 주드 혼자만 걸린 걸까? 21세기에 주드는 없어졌을까? 혹시 주드는 수십만이 된 건 아닐까? 이 사회적 질병은 또 다른 형태로 현대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주드 이야기는 끝났지만 시인의 질문은 계속됐다.

계급적 취향, 그리고 각기 다른 문화자본

“취향은 예술적, 문화적 대상에 대한 이해와 해석의 능력을 말한다. 이것은 신분, 소득, 교육이라는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데 사실상 타고나야 한다.”

이성의 판단으로 일반화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내밀한 기준에 따라 ‘내 것’이라고 ‘찜’하는 ‘취향’이 사실 타고나야 한다니, 이 무슨 맥 빠지는 소리인가?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그의 저서 <구분짓기>에서 말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에서 취향이 그렇다는 얘기다. 취향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습득되는 것이라 굉장히 계급적이며, 사람들을 계급에 따라 저마다 다른 문화자본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주드가 대학에 입학했다면 대학사회에 적응할 수 있었을까? 부르디외의 관점에서 본다면 답은 ‘아니다’이다. 주드는 모범생이 될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대학사회의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고 구성원들과 대화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노동자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익혀온 ‘좋은 취향’과 문화자본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사회학에서 말하는 ‘좋은 취향’은 모방할 수 없다. ‘천재는 자신의 재능을 자기 자신도 모른다’는 칸트의 말처럼 취향은 천부적 재능과 같아서 아무리 애써도 모방할 수 없지만, 중산층은 상류층의 ‘좋은 취향’을 닮기 위해 애쓴다는 것이다. 대학사회를 동경하고 그들을 모방하려던 주드는 ‘나쁜 취향’을 가진 ‘속물’이 된다. 그는 실제로 속물이 중세시대 취향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인간상이라고 설명했다. 

▲ 많은 이들이 스티브 잡스의 드레스코드를 따라했다. 배우 장근석 역시 잡스 사망 이후는 아니지만, 작년 팬미팅 현장에서 잡스를 연상시키는 패션을 선보였다.
“스티브 잡스가 죽은 뒤 그의 드레스코드를 따라 한 사람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그를 모방한다고 해서 스티브 잡스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모방을 계속하게 되면 점점 과하게 되고 이것은 타인에게 추하게 보일 뿐이죠. 이것이 바로 ‘나쁜 취향’입니다.”

‘당신에겐 미안하지만 당신의 욕망은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허위의식이다. 당신의 꿈은 사회적 질병이다. 개인의 생각과 의식을 움직이는 사회적 구조와 힘이 있다.’ 부르디외의 말이지만 그의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는 ‘좋은 취향’을 끊임없이 모방하는 속물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유일한 문제는 취향이 없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던 스티브 잡스 또한 속물일지도 모른다. 잡스는 동갑내기 라이벌 빌 게이츠를 비판하면서 “자기가 생산한 제품에 문화를 넣을 줄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 내면에서 들끊던 그 열정까지 무시할 수 있을까? 주드가 가난한 촌부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제도권 교육이 필요 없는 석공이라는 이유로 ‘좋은 취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사회학과 문학의 공통점은 ‘폭로’

사회학자이기도 한 심보선 시인은 이런 사회적 잣대를 사회학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경제학과 달리 사회학은 인간이 생각보다 그리 합리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취향이라는 게 작동하면 소위 ‘지름신’이 내리기 때문에 사람들은 실수도, 착각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사회학은 우리가 가진 꿈과 환상을 깨는 차갑고 비관적인 학문이다.

“사회학은 정부나 잘못된 제도를 폭로하는 것만 아니라 사람들이 믿고 있는 희망과 욕망까지도 폭로합니다. 사회학적 통찰력과 상상력은 너무 예리해서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지만 이는 언론인에게 필요한 자질이기도 하죠.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에서 말하는 ‘폭로(debunk)’는 사회학적 언어인 동시에 저널리즘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 인문교양특강 심보선. ⓒ 이준석
심 시인은 ‘논리적이고 딱딱할 것 같은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시를 쓰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흔히들 사회학은 문학과 대비된다고 여기지만, 사회학처럼 숨겨진 이면을 폭로하는 소설이 좋은 문학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들이 반대 개념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그는 문학적 상상력과 사회학적 상상력은 ‘취향’에서 온다고 설명한다.

“‘폭로’가 문학과 사회학이 가진 공통점이라면 사회학의 ‘취향’은 문학과 정면으로 부딪힙니다. 우리 사회에는 부르디외의 통찰을 흔드는 예외가 있는데, 그게 바로 아웃라이어(outlier•국외자)입니다. 사회학은 아웃라이어를 빼고 주류를 기준으로 통계를 내지만 문학은 그 예외를 보죠.”

<CBS> 정혜윤 PD가 쓴 책 <여행, 혹은 여행처럼>에 소개된 시를 쓰는 할머니가 그 예외다. 70세까지 문맹이었던 한충자(80) 할머니는 한글을 배운 뒤로 밭을 갈다가도 시상이 떠올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다음날을 위해 휴식을 취하며 자는 것이 농사꾼의 일상이지만, 할머니는 새벽에도 시를 썼다.

그 할머니 이야기를 다룬 정혜윤 PD의 다큐는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훈훈한 미담을 넘어 상식적인 생활주기를 깬 ‘아웃라이어’로서 할머니 시인에 주목했다. 사회학적 상상력에서 ‘아웃라이어’였던 할머니를 주목한 것은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게 심 시인의 설명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예외’가 많기 때문에 그는 “저널리스트가 되면 이 ‘예외’를 발견하고 주목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웃라이어는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예외’가 아니라, 주류와 싸우고 있는 것,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것들의 진실과 이면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적 연구를 하는 사회학자와 문학자는 ‘예외’를 만나러 갑니다. 거기에서 문학이, 사회학이, 저널리스트의 기사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부르디외의 선천적 문화자본과 모방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한 할머니의 시 ‘무식한 시인’을 소개하며, 이런 시를 여든 살 할머니가 지었다는 점 자체로도  ‘소득이 높을수록 문화적 취향이 고급스럽다’는 사실의 또 다른 이면과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저널리스트여, 아웃라이어를 만나라

최근 <도가니> 열풍에 대해 심보선 시인은 “정치인과 예술가들이 독점하고 있던 정의와 도덕적 자본을 공유하고 싶던 대중의 열망이, 외면 받던 사회현상에 주목한 문학과 예술을 만나 폭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람들은 단지 먹고 살기에 급급한 존재가 아니라 ‘나도 사회 정의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 하며, 동시에 이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그동안 도덕적 가치에서 배제돼 왔음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심 시인은 ‘아웃라이어’를 다시 한번 언급했다. 용산 철거 현장에서 일인 시위를 하고,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한진중 영도조선소를 세 번이나 방문했던 그는 “기자가 되고 싶다면 ‘아웃라이어’가 있는 현장으로 가야 된다”고 말했다.

▲ 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을 듣고 있는 학생들. ⓒ 이준석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은 1920년대 밀린 월급을 달라며 한 노동자가 대동강 을밀대 지붕에 올라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꾸 꼭대기에 오르는 이유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예외’로 치부된 그들은 높은 곳에서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고 있어요. ‘사람이 있구나, 그들이 유별난 게 아니구나.’ 아웃라이어의 현장으로 가면 이 모든 것이 다 들립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은 강재호, 이택광, 심보선, 이현우, 정희진, 오동진, 고미숙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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