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권순긍 최선옥 '유럽 도시에서 길을 찾다'

도시의 문화와 정체성을 찾아 떠난 여행

알다시피 세계 4대 프로축구 리그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영국 프리미어리그, 이탈리아 세리에A, 독일 분데스리가를 말한다. 특이한 것은 이들 리그가 모두 유럽에 있고 도시대항전이라는 점이다. 경기뿐 아니라 응원도 국가대항전을 능가할 정도로 치열한 것은 유럽 도시가 저마다 국가라 할 만큼 독자적으로 발달해왔기 때문이다.

▲ 지난 4월 20일 스페인 발렌시아의 메스티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11 스페인 코파 델 레이컵 결승전에서 FC 바르셀로나를 1대0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레알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 홈페이지

유명한 스페인의 엘 클라시코는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더비 경기를 이르는 말이다. 이 경기를 스페인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지켜보는 이유는 그만큼 두 팀 간에 라이벌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스페인 왕국이 통합되기 전까지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한 카스티야 왕국과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 지방은 오랜 갈등의 역사를 걸어왔다. 이탈리아 역시 통일 전에는 볼로냐, 밀라노, 베네치아, 모데나 등이 모두 별도의 공국이나 공화국이었다.

▲ 책의 저자 권순긍 교수와 아내 최선옥 씨.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최선옥

<유럽 도시에서 길을 찾다>는 유럽 도시가 지닌 특수성을 기반으로 쓰여진 유럽 문화기행서다. 권순긍 세명대 한국어학과 교수가 헝가리 엘테(ELTE) 대학교 초빙교수로 부다페스트에 거주하는 동안 아내와 함께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하며 쓴 책이다. 유럽 관련 도서가 대개 ‘나라’를 중심으로 기술된 데 견주어 하나의 도시를 통해 유럽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예술의 담론을 만들어보려 한 시도가 흥미롭다. 예컨대, 책 속에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꽃’으로, 파리는 ‘모더니티의 수도’로 재조명된다. 미술을 전공하고 효문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있는 아내 최선옥 씨가 그린 그림과 찍은 사진이 함께 실려 볼거리도 풍부하다.    

 ▲ 화가 최선옥 씨가 그린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변. ⓒ 최선옥

서울 산동네도 몽마르트르가 될 수 있었는데…

이 책은 도시의 역사만큼이나 문화와 예술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다. 프랑스 아를에서는 ‘고흐’의 광기, 스페인 세비야에서는 ‘카르멘’의 열정, 스페인 똘레도에서는 ‘돈키호테’의 익살스러움을 만날 수 있다. 각 도시를 대표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방문기도 읽을거리다. 미술작품을 좋아하는 아내를 따라 박물관을 돌아보고 흥미를 갖게 된 점도 있었지만, 권 교수는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유럽인들의 인식과 노력이 무엇보다 부러웠다고 한다.

“자신들의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서 그들의 삶 자체가 문화와 예술 속에 어우러져 있는 점이 참 좋았어요. 구시가지에만 가면 옛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어 지금도 모든 사람들이 옛 정취를 향유할 수 있는 거죠.”

▲ 로마의 랜드 마크 콜로세움. 로마의 건축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원형경기장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라 불린다. ⓒ최선옥
그는 유럽 도시의 길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발견했다고 한다. 여행이란 때로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도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좀 활발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개발에 눈이 멀어 있는 게 현실이다.

또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서울이 너무 획일화해 자기만의 색깔과 스타일이 없는 점을 아쉬워했다.  로마 하면 콜로세움, 파리 하면 에펠탑, 그렇다면 서울을 대표하는 건물은 뭘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권 교수는 우리가 삶 속에서 아름다움보다는 실용적인 부분만을 추구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 최선옥 씨가 그린 프랑스 몽마르트르 언덕. ⓒ최선옥

몽마르트르 언덕의 골목길을 다니면 정겨운 이웃들이 어깨를 부비고 모여 사는 우리의 산동네가 떠오른다. 이곳을 보니 우리의 서울 산동네도 재개발만 할 것이 아니라 정겨운 장소로 남겨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파리에 가면 언제나 몽마르트르의 언덕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아파트 숲으로 변한 우리의 도시와는 다른 그 무엇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p.205)

서울 1/6인 파리가 크게 느껴지는 이유

권 교수는 유럽 문화를 대할 때 무엇보다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은 우리보다 뛰어나고 선진화한 문화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세계사의 지명을 보더라도 유럽을 중심으로 가까운 서아시아는 근동, 우리는 극동으로 불리는 것처럼 서구 문화가 뛰어나다는 인식은 서구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문화만 뛰어나고 그들이 열등하다는 것도 아니다. 그는 동일한 구조 속에서 그들의 좋은 점은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양의 성당문화와 우리가 갖고 있는 절이나 서원 문화는 사실상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들이 성당을 가치 있게 여기고 보존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서원과 절을 소중하게 생각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 고흐의 유명한 작품 <밤의 카페, 테라스>의 모델이 된 아를의 카페. 아직까지 당시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최선옥

이 이중의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면서 그들 문화로부터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참된 의미라고 그는 주장했다. 여행을 다니는 이유에 대해 그는 무엇이 좋고 나쁘고를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부족함을 극복하고 우리가 지닌 소중한 것들을 찾아내고 발굴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파리의 면적은 105㎢로 사실상 서울의 6분의 1 크기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가 서울보다 파리를 크게 느끼는 까닭은 파리가 지닌 문화적 힘 때문이리라.

권 교수는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반드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말했다. 그에게 여행이란 단순히 도시를 둘러보고 인증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가슴으로 느끼고 오는 작업이다. 그러기 위해 여행 전 그 나라와 도시에 대한 철저한 자료 조사는 필수다.

“그 도시의 역사와 문화 예술을 알고 있다면 흘러가는 강물, 작은 돌조각 하나, 건물 하나도 큰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게 됩니다. 여행하면서 그 상징과 의미를 놓친다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겠죠.”

▲ 파리를 상징하는 최고의 상징물 에펠탑을 중심으로 펼쳐진 파리의 야경. ⓒ최선옥

우리는 수많은 상징과 기호들 속에서 산다. 에펠탑은 혁명의 정신을 상징하는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탑이다. 만약 에펠탑이 다른 도시에 있었다면 그저 하나의 철골탑으로 존재했을지 모를 일이다.

이 장소 혹은 건물들은 프랑스 역사의 주요 국면에서 획득한 상징과 기호들을 화석처럼 간직하고 있다. 이 직선의 길을 따라가면서 각각의 상징 체계만 해독해도 프랑스 역사와 파리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센 강을 따라 파리가 주는 상징을 해독하며 가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p.191)

▲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 불리는 두브로브니크의 아름다운 모습. 크로아티아는 유럽인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 중 하나다. ⓒ 최선옥

책은 아테네, 두브로브니크,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파리, 아를, 세비야, 똘레도, 그라나다, 빈, 잘츠부르크, 부다페스트 등 13개 도시의 여정을 꼼꼼하게 담았다. 이미 여행을 다녀 온 독자라면 다시 한번 떠나고 싶게 만드는 아련함과 함께 ‘놓친 것이 많다’는 안타까움을 자아낼 듯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독자라면 지금 당장 떠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의 도시들이다.

내년 여름쯤 제2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저 평등의 땅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북유럽 복지국가의 현실에도 접근한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문화 속에서 삶의 근간이 되는 또 다른 길을 찾을 계획이라고 한다. 

 


 

* 이 기사가 유익했다면 아래 손가락을 눌러주세요. (로그인 불필요)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