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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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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 창세기’ 태초에 짐승이 있었다
[어서오너라 벗고놀자] 황상호-우세린 부부 여행기 ⑲
2020년 07월 17일 (금) 22:13:19 우세린 황상호 uq2616@gmail.com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는 활성화한 마그마의 작용으로 온천이 발달해 있다. 온천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신성시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온천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백인 정착민이 원주민의 온천을 강제로 빼앗다시피 해 주변에 온천 리조트를 지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전현직 기자 부부가 이 지역 무료 자연 온천을 다니며 썼다.

하늘에서 찬란한 빛기둥이 내려왔다. 그 빛을 따라 검은 머리 펄럭이는 여인이 단풍나무 씨앗처럼 나선형을 그리며 바다로 떨어졌다. 그때 기러기 떼가 날아올라 날갯짓으로 그녀를 받혀 거북이 등딱지 위로 내린다. 그녀는 ‘하늘여인’(Skywoman)이다. 천상계에서 지내다 생명 나무가 뿌리째 뽑히면서 생긴 구멍을 보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그녀는 쌍둥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 하늘여인 신화를 표현한 그림. 어니스트 스미스(Ernest Smith)의 1936년 작품이다. © Rochester Museum and Science Center.

바다 심저에 있는 진흙을 건져오면 대지가 생긴다는 전설이 있었다. 수달과 비버, 철갑상어가 잠수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몸집이 가장 작은 사향뒤쥐가 나섰다. 작은 다리를 바둥거리며 물속으로 헤엄쳤다. 쥐는 한참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쥐가 실패한 거라며 낙담했다. 곧 쥐는 죽은 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입에는 흙이 한 줌 물려 있었다. 다른 동물들이 닫힌 입에서 흙을 꺼내 거북이 등딱지에 올려놓았다. 하늘여인은 감사 노래를 부른 뒤, 흙을 발로 어루만지며 춤을 췄다. 흙은 점차 커져 대지가 되더니, 마침내 북아메리카 대륙이 탄생했다.

하늘여인 이야기는 뉴욕주 원주민 이로쿼이(Iroquois) 부족과 오대호 주변 휴런(Huron) 부족의 창세기 신화다. 임신해 불시착한 가엾은 하늘 존재를 작은 동물들이 도와주고 그 보답으로 대지가 생겼다는 이야기다. 스케일 큰 흥부전이다. 하늘여인은 구멍으로 추락할 때 생명 나무의 가지를 붙잡고 떨어졌다. 나뭇가지에는 온갖 식물의 씨앗이 있었다. 여인은 씨앗을 심어 세상을 초록으로 물들였다. 식물은 약이 돼 세상 많은 것을 치료했다. 뱃속 쌍둥이 아들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하늘여인이 수명을 다해 숨지자 그 중 선한 아들이 죽은 어미에게 씨앗을 심었다. 어미 몸에서 최초로 옥수수가 싹 틔웠다. 한 아이는 훗날 악행을 저지른다

현명한 들풀의 바다

하늘여인이 뿌린 씨앗 가운데 온천 기행에서 자주 만나는 식물이 있다. 한국 여름 산이 내뿜는 ‘찐’초록과 전혀 다른 희끄무레한 것. 윤기라고는 없어 식은 피자처럼 기운 빠지는, 서로 데면데면해 붙어 지내는 법이 없는 그런 녀석이다. 이름은 ‘어질 현(sage)’자를 써, 세이지브러시(sagebrush)다. 이 식물은 국화과 쑥속으로 건조한 지역에 자라는 키 작은 들풀이다.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네바다 등 11개 주 100만㎢ 면적에 일정 간격을 두고 자란다. 남한 땅(22만㎢) 5배 면적이다. 특히 캘리포니아 허리 축인 시에라 네바다 산맥 동쪽에 딸기 씨앗처럼 다닥다닥 군집해 있다. 산맥이 태평양에서 넘어오는 비구름을 막아 토지가 사시사철 메말라 있어 서식하기 최적이다. 미국 대자연에 관한 글을 쓰는 스티븐 트림블(Stephen Trimble) 작가는 이 일대를 ‘세이지브러시 대양’(Sagebrush Ocean)이라고 썼다. 바다(Sea)도 아닌 대양(Ocean)이다.

   
▲ 시에라 네바다 산맥 동쪽 일대. 큰 나무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세이지브러시라고 봐도 무방하다. © 황상호

온천 기행할 때 차창을 열면 향긋한 허브향이 바람을 타고 차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땅의 첫인사다. 몇 가지 뚝 분질러 차 계기판 위에 올려놓으면, 타오르는 태양에 이파리가 마르면서 퍼지는 박하 향이 졸음을 깨운다. 아파치 부족 언어로 땅의 어원은 ‘마음’과 같다고 한다. 식물을 꺾는 일은 어쩌면 땅의 마음을 추궁하는 행위다.

세이지브러시는 다년생으로 100년 이상 자란다. 크기는 다양한데 대표 종 아르테미시아 트라이든테이트(Artemisia tridentate)는 0.5~3m까지 자란다. 이밖에 땅바닥에 바짝 붙어 자라는 피그미 세이지브러시(Pygmy sagebrush), 해발 3000m 이상에서만 서식하는 알파인 세이지브러시(Alpine Sagebrush), 잎에 설태가 낀 것처럼 하얀 화이트 세이지브러시(White Sagebrush) 등 줄잡아 30여 종이 있다. 장소와 기후에 따라 다양하게 진화해 식물학자들은 세이지브러시를 ‘진화의 엔진’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토착성이 강해 다른 지역에 심어도 잘 자라지 않는다.

원주민의 원조 천연 백신

하이커와 클라이머, 자전거족이 많이 찾는 산악 마을 캘리포니아 인요카운티 비숍(Bishop)을 지날 때 원주민 문화센터인 파이우트 쇼숀 문화센터(Paiute-Shoshone Cultural Center)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날 운 좋게 아메리카 원주민 로라 아주머니를 만났다. 다른 아주머니와 대화하고 있는데 괜히 끼어 몇 마디 물었다. 아직 계승하고 있는 원주민 토착문화가 있을까? 젊은이도 참여하고 있을까?

“우리는 하늘에 기도할 때면 제사장과 함께 산에 올라가 며칠 기도해. 매년 하고 있지. 조금 멀리 사는 부족들도 함께 모여 영험한 행사를 해. 나도 조금 멀리 살지만 행사가 있으면 여기까지 와. 하지만 나도 좀 그렇고, 지금 젊은 세대는 거의 영어밖에 사용할 줄 몰라. 그만큼 전통문화에 대해서도 낯설어 하지. 안타깝기도 하면서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침 정원에 세이지브러시가 자라고 있었다. 그 식물에 관해 물었다.

“어렸을 때만 해도 누가 몸살이나 감기에 걸리면 할머니나 어머니가 이걸 빻거나 태워 약으로 사용했어. 종교의식 같은 데도 사용하고 있고.”

   
▲ 세이지브러시의 대표 종인 아르테미시아 트라이든테이트. © 황상호

세이지브러시에는 장뇌(Camphor), 테르페노이즈(Terpenoids), 탄닌산(Tannins) 성분이 있어 상처나 두통 치료에 쓰인다. 나는 세이지브러시를 어디서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걸 마켓에서 산다고?” 그때만 해도 세이지브러시가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자라는지 몰랐다.

톡 쏘는 향, 원격 통신, 그들이 살아남는 법

남자들은 대개 자신을 보고 웃는 여자들이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식물은 말한다. ‘님, 착각 마셔’ 세이지브러시가 발하는 향기는 본질적으로 상대방으로부터 본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목적이다. 주로 사슴이나 소 같은 반추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최루탄 가스다. 또 초식동물은 이파리에 장뇌와 테르페노이즈 성분이 있어 먹으면 써서 뱉는다. 식물에 공생하는 박테리아 성분은 독소로 작용해 먹으면 신체 일부가 마비될 수 있다.
 
두 번째 생존 전략은 원격 통신이다. 세이지브러시는 주변 식물과 대화한다. 곤충이나 동물의 공격을 받으면 화학 물질을 생산해 근처 식물에 위험 신호를 보낸다. 이 신호를 들은 식물은 체내 독소를 더욱 많이 생산해 자신을 방어하고, 주변에 소식을 전파한다. 야생담배(Wild Tobacco)는 이 대화를 엿듣고 방어선을 구축한다. 어디나 귀 밝은 무임승차자가 있다. 이 또한 세계다. 통신 범위는 비가 내리면 더 강해져 최대 60cm거리까지 서로 대화할 수 있다.

   
▲ 꽃이 피기 전 세이지브러시. 노란 꽃잎을 간직하고 있다. © 황상호
   
▲ 세이지브러시는 봄이 아닌 늦가을에 꽃을 피운다. 불필요한 경쟁을 피한다. © 황상호

이 식물과 드물게 공존하는 초식동물은 고라니처럼 생긴 북미 토착종 프롱혼(Pronghorn)이다. 세이지브러시 함께 진화해 이 화학전을 견딜 수 있다. 한마디로 서로 알 것 다 아는 사이다. 산쑥들꿩인 멸종위기종 세이지그라우즈(Sage Grouse)는 세이지브러시 이파리를 먹고 자란다. 설치류와 작은 새들도 이 식물의 씨앗을 먹으며 생태계 그물을 형성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생존 요건은 어떻게 사막 기후에서 버티냐이다. 세이지브러시 중심 뿌리는 지하 4m까지 수직으로 뻗어 지하수를 펌프질하고, 곁뿌리는 방사형으로 뻗어 새벽이슬이나 빗물을 끌어모은다.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힘으로 뽑으려고 해도 끄떡하지 않는다. 

번식에도 이중 전략을 구사한다. 씨앗도 생산하지만, 구근에 어린 식물을 배양해 완전히 독립하기 전까지 품에 넣고 수분을 공급해 키운다. 캥거루 전략이다. 꽃은 가을에 피운다. 불필요한 종간 경쟁을 피한다. 색깔이 화려하지도 않다. 꽃은 새끼손톱보다 작고 보잘것없어 새와 벌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대신 식물 당 35만 개에서 1000만 개 좁쌀만 한 씨앗을 만들어 바람에 날려보낸다.

이파리는 작고 희끄무레하다. 건조한 날씨,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크기가 작고 위로 뾰족하게 치뜬 것처럼 말려 올라가 있다. 표면에 촘촘히 박혀 있는 털은 통기성을 떨어뜨려 바람에 수분이 날아가는 것을 막는다. 동화 작가 타샤 튜더의 책 <나의 정원>에 나오는 허브가 진초록이 아닌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 쑥도 건조한 땅에 자라 솜털이 많다. 희끄무레한 것이 답답한 이민자의 삶 같기도 하다.

노천 대중탕, 와일드 윌리스 온천

세이지브러시 대양에서 노 저어 도착한 곳은 와일드 윌리스 온천(Wild Willy’s hot springs)이다. 앞서 소개한 캘리포니아 모노 카운티의 위트모어 텁스 로드(Whitmore Tubs Rd) 아래쪽인 벤턴 크로싱 로드(Benton Crossing Rd)에 있다. 유료 온천 수영장인 위트모어 풀(Witmore Pool)을 지나 6km 달리면 와일드 윌리스 온천이 나온다. 구글맵을 따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깔끔하게 자갈로 정리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무 데크길을 따라 400m쯤 걸어가자 기다리던 온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바로 옆 크롤리 호수 때문에 크롤리 온천(Crowley Hot Springs)이라고도 불린다.

   
▲ 2019년 10월 찾은 와일드 윌리스 온천. 아침에 가면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볼 수 있다. © 황상호

온천은 크게 두 개로 나뉘어 있다. 5m 이상 길게 늘어진 탕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하트 모양 탕이 있다. 온도는 32~36도로 아주 뜨겁지는 않다.  이곳은 마치 대중탕 같다. 2018년 10월 처음 갔을 때 사람이 족히 30명쯤 돼 보였다. 산이 저 멀리 360도 파노라마로 둘러싸고 있고 키 작은 덤불 밭에는 아무것도 없다. 포유류라고는 인간밖에 없다. 여기저기서 수다 소리가 새 소리처럼 정겹다. 차를 타고 6시간쯤 달려왔다는 마른 몸매의 여성은 “이곳에서야말로 자연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 한적하지, 생각을 버리고 있을 수 있어”라고 했다. 그녀가 맑은 온천수가 관통하는 목에 있어 한참 기다렸는데, 우리가 떠날 때까지 자리를 비켜주지 않았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학생들도 와 있었다. 동아시아 문화 수업을 듣고 야외 휴식을 왔다고 한다. “제이슨!” 학생들이 자신들 쪽으로 한 번 와보라며 교수 이름을 불렀다. 온천수가 깊지 않아 교수는 포복 자세로 기어 학생들 쪽으로 이동했다. 학생과 제자 사이에도 격식과 권위가 없는 사회라지만, 학생 앞으로 기어가니 적잖은 문화 충격이었다.

주변에 화장실이 없어 뒷처리를 잘 해야 한다. 백인 남자들도 그냥 멀리 걸어 나가 오줌을 깔겼다. 완전 평지라 뒤태가 다 보인다. 온천 동쪽에는 검은색 화산암인 깔린 글래스마운틴(Glass Mountain)이 있다. 반짝이는 커다란 바둑돌 같은 암석이 온통 산을 뒤덮고 있다. 다른 행성에 온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주변에 가볍게 즐길 만한 트레일도 여러 코스 있다.

   
▲ 2018년 11월 찾은 와일드 윌리스 온천. 노란 모자를 쓴 학생들이 캘리포니아 주립대 학생들이다. © 황상호

고급지게 멍 때리기, 힐탑 온천

와일드 윌리스 온천 가까이 힐탑(Hill Top) 온천도 꼭 가볼 만하다. 500m 정도 걸어가면 되지만 차로 가면 3.5km를 둘러가야 한다. 이곳은 바로 옆 호수 이름을 따 풀키스 풀(Pulky’s Pool)이라 불린다. 

온천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다. 2019년 8월 우리가 찾았을 당시 온천은 아주 뜨거웠다. 사람이 들어가기 힘들 정도였다. 여러 가족이 잇따라 왔는데, 그저 구경만 했다. 날씨에 따라 수온 차가 바뀌는데 이날은 좀처럼 물이 식지 않았다. 깊이는 60cm 정도인데 최대 6명이 들어갈 수 있다.

온천수는 멀리서 플라스틱 파이프를 따라 탕으로 콸콸 들어온다. 관을 여닫으며 수온을 조절한다. 주변은 온천습지다. 한여름이 오기 전까지 시에라 네바다 산맥 봉우리에 쌓인 눈을 보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저 쌓인 눈이 캘리포니아 남부 주 수원이다.

   
▲ 지난해 11월 방문한 힐탑 온천. 물이 너무 뜨거워 목욕하는 사람이 없다. © 황상호
   
▲ 힐탑 온천에서 본 시에라 네바다 산맥. 봉우리에 쌓인 눈이 녹아 남부 캘리포니아 주민을 먹여 살린다. © 황상호

주변에 인기척 하나 없다. 오로지 맞닥뜨리는 고요에 금단 증상처럼 괜히 불안하다. 안테나 안 뜨는 휴대전화를 괜히 만지작거린다. 진정한 휴식을 찾아왔지만,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딱 끊고 명상을 해보자. 벤치도 있어 고급지게 멍 때리기 좋은 곳이다.

무료 캠핑에 숨은 지역이기주의

이 일대 주변에 캠핑장이 있다는 정보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곳곳에 캠핑한 흔적과 캠핑하고 있는 남녀를 목격했다. 아침 수프를 끓이는 한 커플에게 슬쩍 가서 캠핑해도 되는 거냐고 물었다. 그들은 예약받는 곳이 따로 없다며 먼저 온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면 된다고 했다. 아주 야산도 아니고 관광지에 무료 캠핑이라니, 뭔가 찜찜했다.

   
▲ 힐탑 온천 주변 습지. 진한 유황 냄새가 풍긴다. © 황상호

나중에 이유를 파악해보니 조금 서글펐다. 로스앤젤레스 수도전력국이 이 땅을 임대해 수백 ㎞ 떨어진 로스앤젤레스까지 물 배달을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주변 지역 호수가 얕아지고 지하수도 줄어들어 녹지 면적이 계속 줄고 있다. 이 와중에 로스앤젤레스시는 수익 시설을 짓지 않는 대신 오염시키지 않는 조건으로 캠핑을 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현지인으로서는 집 앞마당 빼앗기고 주변 생태계까지 파괴되고 있는데, 꼴사납게 외지인 노는 꼴도 봐야하는 상황이다.

로스앤젤레스 물 자급률은 30%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과 콜로라도강,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 땅을 임대해 물을 끌어다 쓴다. 특히 남부 캘리포니아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쌓인 눈인 스노우팩(Snowpack)에 크게 의존한다. 온천에서 바라보이는 산맥에 쌓인 바로 그 눈이다. 이 눈이 녹아 계곡과 저수지로 흘러들고, 마침내 캘리포니아 주민의 식탁으로 연결된다. 로키 마운틴(Rocky Mountain)에서 녹은 눈으로 구성된 콜로라도강에서도 물을 끌어다 쓴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집마다 스프링클러로 잔디를 키우고 수영장에 가득 물을 채운다. 심지어 우리 아파트는 스프링클러가 터져 몇 년째 물이 하수도로 곧장 흐르지만 고칠 생각을 안 한다. 시 차원에서는 여전히 빗물을 저장하는 대규모 사업에 진척이 없다. 매년 민간 우주선이 캘리포니아에서 우주로 발사되고 있는데, 기술력과 자본력이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심지어 2012년 빗물 저장법(The Rainwater Capture Act)이 통과되기 전까지 개인이 빗물을 저장할 수도 없었다. 미국이 북미 대륙을 차지하기 전인 스페인 점령 시기, ‘푸에블로 권리’(Pueblo Rights)라고 해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도 도시의 자산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4대강의 모델이기도 한 엘에이 강은 콘크리트로 완전히 발려 있어 자연이 흡수하는 빗물도 얼마 안 된다.

   
▲ 힐탑 온천으로 가는 길. 주변 땅이 메말라 하얀 모래가 드러났다. © 황상호

여기다 세이지브러시 군락지는 사업자들이 가축을 기르려고 대규모로 불태웠고, 공생하던 많은 동물도 떠났다. 그 자리에는 작은 갈대처럼 생긴 외래종인 민둥빕새귀리(bromus tectorum)가 자란다. 유럽이 원산지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도 많이 자라는데, 한국 땅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종이다. 하지만 이 종은 화재에 취약해 대형 산불의 원인이 되고 있다. 개발 욕심이 화로 돌아온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자신을 하늘여인의 후손으로 땅의 소유자가 아닌 ‘이민자’라고 여겼다. 여러 동물의 도움으로 생존했기에 땅과 생명체를 존중하며 받은 것을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냥에도 존중이 깃들었다. 동물 신령에게 허락을 구하고 필요한 것 이상 사냥하지 않았으며 동물의 환생을 기도했다. 아메리카 원주민 연구가인 서정록 작가가 잡지 ‘생태공동체를 일구는 이장'에 인용한 원주민 시다.

작은 형제여, 너를 죽여서 미안하다 / 그러나 네 고기가 필요했단다 / 내 아이들이 배가 고파 먹을 것을 달라며 울고 있거든 / 작은 형제여, 나를 용서해다오 / 너의 용기와 힘, 그리고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하마 / 자, 이 나무 위에 너의 뿔을 매달아 줄게 / 그리고 붉은 리본으로 장식해주마 /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 나는 너를 기억하고 너의 영혼에 경의를 표하마 / 너를 죽여서 미안하다 / 작은 형제여, 나를 용서해다오 /

어느 곳에 토박이가 된다는 것은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자신의 땅을 돌보는 데서 시작한다. 빚진 것을 다른 생명체에게 갚는 일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짐승의 은혜’로 창조했다. 창세기는 다시 쓰여야 한다.


** 황상호는 <청주방송>(CJB)과 <미주중앙일보> 기자로 일한 뒤 LA 민족학교에서 한인 이민자를 돕는 업무를 하고 있고, 우세린은 <경기방송> 기자로 일한 뒤 LA 한인가정상담소에서 가정폭력 생존자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편집 : 조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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