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도가니' '살인의 추억' '아이들' 등 4편 분석

‘도가니: [명사] 흥분이나 감격 따위로 들끓는 상태.’ 말 그대로 지금 <도가니>가 도가니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일어난 장애인 성범죄 사건을 영화로 만든 <도가니>가 크게 흥행하면서 사건 재수사 요구 등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 나온 범죄실화영화인 <살인의 추억> <그 놈 목소리> <아이들>과 함께 <도가니>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 구슬이, 진희정 기자가 대화를 나눴다.

우리 사회를 ‘도가니’로 만드는 영화들

희(진희정): 누구 말대로 조조로 영화 <도가니>를 보고 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안 좋다더니 진짜 아침에 봤으면 큰일 날 뻔 했어. <도가니>를 함께 봤는데 느낌이 어때?

▲ 영화 <도가니> 스틸컷. ⓒ 영화 장면 갈무리

슬(구슬이): 영화 속에서 자애학원 학생 성폭력 사건을 폭로했던 미술교사 강인호(공유 분)가 시간이 흘러 무진이 아닌 서울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장면이 나왔잖아.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역에서 인호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그렇게 끔찍한 사건이 있어도 일상은 그대로 흘러간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어. 우리 일상도 그런 거 같아서 보면서도, 보고 나서도 마음이 내내 불편했어.  

희: 다 보고 일어나는데 관객들이 서로 빨리 나가려는 모습을 보면서도 씁쓸했어. 관객들은 이런 범죄실화영화들을 보는 순간에는 다 같이 치를 떨다가도,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들 영화에서 금방 빠져 나오는 거 같아. <도가니>도 영화로 본 사건의 충격만큼이나 보고 난 뒤에 헛헛한 마음이 컸어.

슬: 공지영의 원작소설에서도 무진의 안개를 묘사하는 걸로 시작하는데 영화에서도 인호가 처음 본 무진이 안개로 가득했지. 벌어진 사건 자체나 이후 대처가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복선일 텐데, 내 마음도 안개 낀 것처럼 답답했어. 어떤 장면이나 대사가 기억에 남아?

희: 사건을 취재하러 온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피해 학생 중 하나였던 민수(백승환 분)가 진실을 말하기 전에 망설이던 장면에서 수화로 “정말 그 사람들을 벌 받게 해줄 수 있어요”라고 물었잖아. 실제 사건이 어떻게 종결됐는지 아는 나로서는, “그래, 약속할게”라고 인호가 말하는 부분이 참 아팠어. 인호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가 그 약속이 얼마나 지켜줄 수 없는 사회인지 뻔히 알아서.  

슬: 그래서 영화에서도 아주 노골적으로 수사기관을 비판했지. ‘자유, 평등, 정의’라고 적힌 법원 현판을 카메라가 여러 번 잡아주더군. 재판이 진행될 때마다 점점 더 좌절하는 인호의 뒷모습과 선명하게 대비되게. 

실제 사건과 영화는 무엇이 다를까

▲ 대표적인 범죄실화영화들. 왼쪽부터 <살인의 추억> <그놈 목소리> <아이들>. ⓒ 홈페이지 갈무리

희: <도가니> 같이 실제 범죄를 영화화한 작품들은 꾸준히 만들어졌어. 우리나라 3대 미제 사건인 화성연쇄살인, 이형호 어린이 유괴살인,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을 바탕으로 한 <살인의 추억 (2003)> <그 놈 목소리 (2007)> <아이들(2011)>이 대표적이잖아?  

슬: 사회에 대한 영화감독들의 관심을 작품에 반영하는 거겠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보다는 기존 사건에 살을 붙여 나가는 게 쉽기도 할 테고. 이미 전국적 관심을 받은 사건이니일정 수준의 흥행을 보증한다고 볼 수 있겠지.

희: 실제 당사자들은 불편할지 모르지만, 그런 사건들은 드라마틱한 요소를 다 가지고 있어서 이미 스토리상으로 검증된 거나 마찬가지라 작품으로는 매력적인 소재라고 할 수 있어. 그러나 사건을 영화로 재구성할 때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봐.

▲ 화성 연쇄 살인 사건 현상수배 전단.
슬: <그놈 목소리>나 <아이들>은 사건 이후 추적과정부터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니까 범죄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없지만, <살인의 추억>이나 <도가니>는 살해나 성폭행장면이 그대로 노출됐잖아. 모방범죄 우려가 제일 크지. 또 배우나 관객이 그 장면을 보고 받을 충격도 생각해야 돼. <도가니> 아역배우들은 성폭행 장면 촬영의 충격으로 심리치료를 받는다잖아.

희: 실제로 누드를 보는 것보다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게 더 야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아이들>에선 용의자로 의심되는 인물이 살인하는 노골적인 장면 대신 도축 일을 하는 용의자가 소를 망치로 때려잡는 부분을 통해 간접적으로 범죄 상황을 상상하게 해. 그처럼 꼭 재연하지 않더라도 관객이 충분히 공감하도록 표현할 수 있어. 그런데 사람들은 실화영화를 보면 실제 사건과 영화가 얼마나 다른지 궁금해 하는 것 같아. 지금 <도가니>도 그렇잖아.

슬: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사건을 충실히 다룰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야 관객들이 더 몰입하게 되고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될 것 같아. 사람들이 사실과 다른 영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사건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범죄실화 영화만큼은 픽션과 논픽션을 확실히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 영화 <아이들>의 장면. 실종된 아이들을 찾던 당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희: 그런데 꼭 영화가 사건을 그대로 옮겨와야 될까? 사실 <그 놈 목소리>는 당시 사건 흐름을 그대로 쫓아가는 게 스토리의 전부여서 다른 영화에 비해 영화적 재미는 없었어. 그런데 <아이들>은 사건 자체보다 피해 부모 중 하나가 범인일수도 있다는 어떤 교수의 실제 주장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꾸려갔기 때문에 사건 외적인 흥미를 느낄 수 있었어. <도가니>도 민수가 자신을 성추행한 박보현(김민상 분) 선생을 칼로 찌르고 함께 기차에 치어 죽는 픽션이 들어가 있잖아. 사실과 다르더라도 실제 피해학생들의 마음을 그대로 반영하는 내용이라면 극적으로 표현해도 된다고 생각해.

방관자인 관객을 원망하는 피해자들의 눈빛

슬: 듣고 보니 그러네. 생각해보면 <도가니>도 피해아동이 느꼈던 고통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더 집중했던 거 같아. 민수가 증인석에서 할 얘기를 정리했는데 가족들이 합의를 해줘서 증언할 필요조차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울부짖으며 감정을 토해내는 장면이라든가, 성폭행을 당해왔던 정신지체 청각장애인 유리(정인서 분)가 친구 연두(김현수 분)의 증언을 듣고 자신이 안고 있는 인형의 치마를 내리는 장면을 통해 아이들이 느꼈을 공포와 아픔을 표현했어. 그래서 나는 실제 성폭행 장면보다는 그런 아이들 모습에서 오는 충격이 더 컸던 거 같아. 이게 영화 속 가장 큰 폭력 요소였다고 생각해.

▲ 범죄실화영화를 보면 유독 정면을 응시하는 장면이 많다. 이런 장면들은 관객에게 어떤 행동을 촉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희: 맞아. 결국 얼마나 사건의 모습을 똑같이 재연했느냐보다는, 어떤 수단을 동원하든 피해자의 감정을 관객이 충분히 느끼도록 하는 게 범죄실화영화가 해야 할 일인 거 같아. 그래서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들이 사건에 대해 찾아보고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이는 거 아니겠어? <도가니> 후폭풍도 그렇게 세다며?

슬: 자애학원의 모델이 된 광주 인화학교에 성추행 가해자가 복직해서 지금도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누리꾼들의 비난 여론이 거세. 영화를 본 관객들은 더 많은 사람이 이 사건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조바심에 열심히 입소문을 내고 있는 것 같아. 늘어나는 관객 수만큼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 <도가니> 열풍은 결국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재수사까지 요구하고, 이에 용기를 얻은 다른 장애인학교 성범죄 피해자들의 고발도 터져 나오기 시작했어. 신경조차 쓰지 않던 장애인들 목소리에 사회 전체가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된 거지.

희: 제작진도 사회적 파장이 일 거라는 걸 어느 정도 예상하고 만들지 않았을까. 관객에게 어떤 역할을 요구하는 감독의 메시지가 영화에 고스란히 담기는데, 그게 가장 잘 드러나는 게 주인공들이 스크린을 향해 뚫어지게 정면을 응시하는 장면 아닐까. <살인의 추억> 엔딩씬에서 박두만(송강호 분)은 아직도 잡히지 않은 범인을 보듯 한참 동안 정면을 쳐다보잖아. <그 놈 목소리>에서도 유괴된 아이 아버지인 아나운서 한경배(설경구 분)가 아이를 찾아달라는 뉴스를 내보내며 어디선가 TV를 보고 있을 범인을 노려보고. <도가니>의 인호 역시 무언가를 응시하는 얼굴 표정이 자주 클로즈업 됐는데, 이 모든 것들이 이제까지 방관자이기도 했던 관객인 우리 자신을 원망하는 눈빛 같기도 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어. 

수사기관만 탓할 게 아니라 우리도 뭔가 해야

슬: 실제로 우리가 뭔가 해야 할 거 같지? <그 놈 목소리>가 개봉됐을 때 영화 속에 공개된   실제 범인의 목소리를 듣고 관객들이 범인을 찾겠다며 주변 사람들 목소리까지 비교해 봤다잖아. 범인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전화번호도 생기고. 미제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야 한다는 관객들의 움직임도 있었지. 이런 영화들이 나올 때마다 느끼는 건 영화로 지난 사건들이 다시 주목받는 것도 의미 있지만, 수사를 하는 경찰이나 검찰이 얼마나 무능한지 알게 되는 거 같아. 우리가 언론을 공부하다 보니 수사기관은 물론 언론도 제 역할을 못했던 게 사건을 미궁으로 빠뜨린 원인이라고 생각해. 

▲ 영화 <도가니> 개봉 이후 다음 아고라에서 벌어진 서명 운동.

희: 언론이나 미디어가 여론을 형성하고 움직이는 게 바로 미디어 파워잖아. 뒤늦게 힘을 발휘하기보다는 사건 당시, 실질적인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 때 미디어 파워가 제대로 발휘되면 좋겠어. 이런 점들은 우리 예비언론인들이 좀 더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일인 것 같아.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