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김수현 '부동산은 끝났다'

지난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 네 명의 무장 강도가 침입했다. 이들은 은행직원들을 볼모로 131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했는데, 공포에 떨던 인질들은 시간이 갈수록 강도들과 심정적으로 한 편이 됐고 풀려난 후 경찰 조사에서도 범인들을 옹호했다. 이후 인질이 자신에게 피해를 준 범인에게 오히려 동조하는 비이성적 심리현상을 ‘스톡홀름 신드롬(증후군)’이라고 부르게 됐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부동산정책 전문가 중 한 사람인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주기적인 집값 폭등에 시달리면서도 집값이 떨어질까 봐 덜덜 떠는 한국을 ‘부동산 스톡홀름 신드롬에 사로잡힌 사회’라고 진단했다. 

스톡홀름 신드롬에 시달리는 '부동산 인질'

▲ 우리나라는 등기부 등재 기준으로 전체 주택의 55%가 아파트다. ⓒ 진희정

최근 <오월의 봄> 출판사에서 나온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김 교수는 가계자산의 80%를 부동산이 차지하고, 아파트 청약 대기자가 1500만 명에 달하며, 집을 끌어안고 대출금상환 부담에 시달리는 ‘하우스푸어’가 400만 명에 달하는 현실이 스톡홀름 신드롬의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1967년 부동산투기억제세가 도입된 후 40여 년간 가격이 폭등하면 폭등하는 대로, 내리면 내리는 대로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게 ‘부동산 인질’ 한국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개발 연대를 거치는 동안 땅으로 일확천금한 ‘부동산 졸부’가 무더기로 생겨나고 집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불패 신화’가 뿌리 내린 사회. 금융위기 등의 영향으로 부동산 시장이 냉각됐지만 정부가 온갖 부양책을 동원해 집값을 떠받치면서 ‘부동산이여 다시 한 번’을 고대하는 사회. 그러나 김 교수는 냉정하게 “이제 부동산은 끝났다”고 단언한다. 지난 40여 년간 우리 사회를 투기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부동산 패러다임은 저출산고령화의 인구생태 변화, 만성화되는 청년 고용불안 등과 함께 막을 내리게 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당장 부동산 값이 폭락할 것이라고 예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거처럼 부동산값 폭등으로 ‘대박’을 터트리는 시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부동산 정책은 이제 국민이 건강과 행복을 위해 최소한의 의식주를 확보한다는 차원, 즉 ‘인권으로서의 집’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새가 둥지를 트는 것보다 어려운 내 집 마련의 꿈. ⓒ 진희정

김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 국민경제비서관, 사회정책비서관 등을 거치며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주요 부동산정책을 설계했고, 환경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따라서 부동산가격 폭등기였던 노무현 시절의 정책공과에 연대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다. 당연히 많은 비판도 받았고, 이 책에서도 부동산 정책을 기업도시 등 성장전략과 연계시켰던 부분 등에 대한 회한을 감추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제 개편 등 노무현 정부 시절의 부동산 공공성 확충 노력이 이명박 정부 들어 무너지고 있는 데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운다. 또 주거운동 시민단체 등에서 주장하고 있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방안 등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 부동산 문제를 ‘단 한 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은 없다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의 고유한 현실에 맞는 정책을 일관되게, 장기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나치게 높은 부동산 가격이 사회, 경제, 정치적으로 얼마나 많은 문제를 낳는지 조목조목 지적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임대료와 물가를 끌어올리며, 그로 인해 커진 자산 격차가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앉은 자리에서 부동산으로 떼돈을 번 이웃이 자극하는 투기 심리는 땀 흘려 일하는 건강한 노동윤리를 좀먹는다. 열심히 일해도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를 확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으면 사회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부는 부동산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조정하는 것과 함께 시장에서 적절한 주거를 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주거를 제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거꾸로 가는 주택 정책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강남 땅부자들이 집권했다’는 의미에서 ‘강부자 정권’으로 불리는 현 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무력화하는 등 부동산자산가들의 세부담을 대폭 낮춰 주었다. 또 재개발 재건축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뉴타운과 4대강 개발 등 땅주인과 건설업자들의 ‘먹거리’를 크게 늘려주는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꺼져야 할 부동산 거품이 가라앉지 않고 ‘더 큰 폭발’의 잠재적 파괴력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도시를 관리하는 여러가지 방식 가운데 가장 극단적이고 비민주적이며, 건강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방식이 바로 철거재개발이다. 아주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신중하게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재개발 방식의 대안으로 '보전 재생' 마을 만들기와 '자율갱신'이 있다. 소단위 점진적 재개발과 함께 다양한 주택 유형개발에도 배려와 지원이 필요하다." ⓒ 진희정

김 교수는 정부가 무엇보다 주택가격의 거품을 빼고, 주거비를 낮추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투기를 억제할 뿐만 아니라 싸고 좋은 주택이 지속적으로 공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빈곤층에 대해서는 국가가 직접 주택을 제공하거나 임대료를 보조함으로써 모든 가구가 자신들의 필요와 생애 주기에 맞춘 주거를 확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내 집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더라도 공공임대든 민간임대든 안정적이고 편안히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게 핵심이다. 김 교수는 “부동산은 더 이상 투기의 대상이 아니며 삶의 자리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유형의 주거 형태가 공존하는 서울 노량진. ⓒ 양호근

김 교수는 이를 위해 무엇보다 정부가 건설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시도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부동산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보유세를 많이 물리는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해 투기를 억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영국 등은 부동산 보유세와 거래세의 비율이 90대 10인데 우리는 40대 60 수준이다. 김 교수는 보유세의 실효세율을 높여 이 비율이 60대 40, 혹은 70대 30으로 역전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집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면서 대출과 전세를 끼고라도 여러 채의 집을 사두려는 수요를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부동산은 끝났다>의 책 표지.

열심히 돈을 모아도 자기 집을 사기 힘든 서민과 빈곤층을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해야 하며, 재개발 및 재건축 사업은 세입자를 보호하면서 개발이익을 철저히 환수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또 주택금융은 실수요자를 지원하되 은행과 가계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취약한 민간임대차 제도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권익을 보호하면서도 시장변동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규제와 지원책을 병행해야한다는 게 김 교수의 의견이다.  

“중요한 것은 내 집이든 아니든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노력해서 자기 집을 사고자 하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 집을 살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저마다 형편에 맞는 임대료를 내고 쾌적한 공간에서 살 수 있도록 공공임대와 민간임대 주택을 충분히 공급하는 것. 이 것이 앞으로 정부가 힘써야할 주택 정책의 방향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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