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롭고 안전한 미래를 꿈꾸며

    평화롭고 안전한 미래를 꿈꾸며

    프롤로그 : 죽을 고비를 넘어 한국에 왔지만전편 : ① 독재에 저항한 교사 수민우② 내전의 아비규환에서 탈출한 티기스트③ 정부 탄압에 맞선 소수민족의 청년 아웅사④ 군부를 피해 민주주의를 찾아온 하산⑤ 내전으로 가족과 이별한 하산⑥ 죽음이 기다리는 고국을 떠나온 이스마일어려울 난(難), 백성 민(民). 재난이나 박해 따위를 당해 곤궁에 빠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종교나 정치적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박해받고 차별당한다. 한국 사회도 난민들을 마주했다. 2018년에는 내전을 피해 500여 명의 예멘인이, 2021

  • 죽음이 기다리는 고국을 떠나온 이스마일

    죽음이 기다리는 고국을 떠나온 이스마일

    프롤로그 : 죽을 고비를 넘어 한국에 왔지만전편 : ① 독재에 저항한 교사 수민우② 내전의 아비규환에서 탈출한 티기스트③ 정부 탄압에 맞선 소수 민족의 청년 아웅사④ 군부를 피해 민주주의를 찾아온 하산⑤ 내전으로 가족과 이별한 하산[고국] 하루아침에 난민이 된 22살 청년고국을 떠나오기 전 알파란 이스마일 모하메드 알리(Alfarran Ismail Mohammed Ali·32)는 평범한 22살 청년이었다. 예멘의 수도 사나(Sanaa)에서 나고 자란 이스마일은 고향에 있는 대학에서 정보통신(IT)을 전공했다. 회계사로 오래 일한 아

  • 내전으로 가족과 이별한 하산

    내전으로 가족과 이별한 하산

    프롤로그 : 죽을 고비를 넘어 한국에 왔지만전편: ① 독재에 저항한 교사 수민우② 내전의 아비규환에서 탈출한 티기스트③ 정부 탄압에 맞선 소수 민족의 청년 아웅사④ 군부를 피해 민주주의를 찾아온 하산[고국] 총소리로 깨진 평온하산 아흐메드 바탈(Hasan Ahmad Batal·25)의 고향인 시리아 알레포(Aleppo)에는 총소리와 전투기 소음이 끊이질 않았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하산은 섬유공장을 운영하는 유복한 가정에서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 민주주의를 찾아온 하산

    민주주의를 찾아온 하산

    프롤로그: 죽을 고비를 넘어 한국에 왔지만전편: ①독재에 저항한 교사 수민우② 내전의 아비규환에서 탈출한 티기스트③ 정부 탄압에 맞선 소수 민족의 청년 아웅사[고국] 쿠데타로 물거품이 된 행복하산 무스타파(Hassan Moustafa·38)가 결혼하기 한 달 전, 이집트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하산은 이집트 북부 다칼리야 주, 만수라에 살았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페인트 자재를 유통하고 판매하며 안정적인 생계를 꾸렸다. 그곳에서 생화학자로 일하던 아내를 만났다.아내와 결혼을 약속할 무렵인 2013년, 군부 세력이 당시 대통

  • 정부 탄압에 맞선 소수 민족의 청년 아웅사

    정부 탄압에 맞선 소수 민족의 청년 아웅사

    프롤로그: 죽을 고비를 넘어 한국에 왔지만전편: ①독재에 저항한 교사 수민우② 내전의 아비규환에서 탈출한 티기스트[고국] 민족을 지키고 싶었던 청년 아웅사아웅사 마르마(Aungshapru Marma·41)는 방글라데시 소수 민족인 줌머(Jumma)인이다. 줌머인은 16세기 무렵부터 방글라데시 남동쪽인 치타공 산악지대에 정착했다. ‘줌머’는 고유의 언어와 문화, 종교를 가지고 있는 11개 민족의 공동체다. 그 가운데 상당수가 불교를 믿는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아웅사는 줌머인 가운데 ‘마르마’ 부족 출신이다.줌머인의 터전인 치타

  • 내전의 아비규환에서 탈출한 티기스트

    내전의 아비규환에서 탈출한 티기스트

    프롤로그: 죽을 고비를 넘어 한국에 왔지만전편: 독재에 저항한 교사 수민우[고국] 집권 부족의 탄압에 상처입은 몸과 마음암하라(Amhara). 32년간 아스퍼 티기스트 타디시(Asfaw Tigist Tadesse·35)의 정체성을 규정해온 단어다. 암하라는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부족 중 하나다. 내전이 끊이지 않는 에티오피아에는 80여 개가 넘는 부족들이 함께 살고 있다.현 집권 부족인 오로모(Oromo)족은 암하라 부족과 오랜 기간 적대적 관계였다. 권력을 잡은 후에는 노골적으로 암하라인들을 배척하고 탄압했다.티기스트와

  • 독재에 저항한 교사 수민우

    독재에 저항한 교사 수민우

    프롤로그: 죽을 고비를 넘어 한국에 왔지만인터랙티브: 나는 왜 난민이 아닌가요[고국] 군부독재에 대항해 거리로 나간 선생님교사 수민우(Su Myint Oo·38)는 미얀마의 항구 도시 탄린에서 태어났다. 강 건너편에는 미얀마 최대 도시인 양곤이 있다. 고등학생 때 양곤으로 간 수는 사회와 영어를 가르치는 사립중학교 선생님이 됐다. 수는 학생들을 사랑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좋아했다.2020년, 미얀마 국민의 자유 투표로 민족민주동행회(NLD)가 선거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듬해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 죽을 고비를 넘어 한국에 왔지만

    죽을 고비를 넘어 한국에 왔지만

    난민은 본국에 머무르기 어려워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 뜻을 보면, 어려움(難)에 처한 사람들(民)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그들을 한국을 어지럽힐(亂) 사람들(民)로 바라보기도 한다. 2018년 예멘 난민, 2021년 아프가니스탄 난민 등이 집단 입국하면서 한국인들도 난민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됐지만, 많은 난민들은 한국에서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난민을 받기 시작한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에 난민 지위를 신청한 사람은 73,384명이다. 그중 1,163명만이 난민으로 인정됐다. G20에서 유럽연합을 제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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