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인터뷰] 하상윤 세계일보 사진기자 ②

2016년 3월, 하상윤 기자는 본격적인 ‘프로페셔널’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세계일보> 사진부에 배치된 이후에도 그는 사진 본연의 의미에 주목했다. 어두운 곳을 ‘빛’(photo)으로 ‘기록’(graph)하길 원했다. 그는 첫 기획보도로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지하철 기관사를 주목했다. 그의 두 번째 기획 또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을 조명했다. 

지난 2017년 3월 1일 하 기자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옥상에서 기사를 마감하고 있다. 3·1절을 맞이해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및 탄핵 촉구 집회를 취재한 직후다. 하상윤 제공
지난 2017년 3월 1일 하 기자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옥상에서 기사를 마감하고 있다. 3·1절을 맞이해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및 탄핵 촉구 집회를 취재한 직후다. 하상윤 제공

주목받지 못한 곳을 비추어 기록하기

2016년 7월 26일 <세계일보> 지면에 그의 두 번째 기획 기사가 실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여의도 수난구조대’ 기사에서 그는 수난구조대의 이야기를 다뤘다. 당시 하 기자의 눈은 ‘삶의 끝’을 생각해 마포대교를 찾는 이들을 향했다. 매일 사람들이 한강에 찾아와 죽었다. 그러나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하 기자는 다른 방식으로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

죽으려고 한강을 찾는 이들을 구조하는 사람들이 수난구조대였다. 수난구조대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소방청, 특수구조대 등을 거쳐 수난구조대장을 만났다. 그때까지 그의 유일한 기획취재였던 ‘지하철 기관사’ 르포 기사를 보여줬다. 구조대장은 이를 읽고 취재를 허락했다. 이후 하 기자는 한 달간 현장을 찾았다.

2016년 6월 14일 새벽 이규진(당시 나이 45세) 대원이 서강대교 난간에 매달린 자살 시도자에게 서치라이트를 비추고 있다. 하상윤 제공
2016년 6월 14일 새벽 이규진(당시 나이 45세) 대원이 서강대교 난간에 매달린 자살 시도자에게 서치라이트를 비추고 있다. 하상윤 제공
2016년 6월 여의도 수난구조대 대원들이 성산대교 북단에서 투신자를 구조하고 있다. 하상윤 제공
2016년 6월 여의도 수난구조대 대원들이 성산대교 북단에서 투신자를 구조하고 있다. 하상윤 제공

수난구조대는 마포대교 바로 아래의 수상 구조물에서 생활했다. 그곳에는 한 벽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많았다. 구조대원은 사고 영상 자료를 보여줬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망설임 없이 뛰어내리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하 기자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 현장을 목격하는 것은 오랜 기다림을 요구했다. 투신 사고는 오후 9시 이후 새벽 2시 사이에 몰려있었다. 그는 퇴근 이후에도 현장을 찾았다. 어느 날, 하 기자가 CCTV를 보고 있었다. 양복 차림의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상의와 양말을 벗고 휴대폰을 내려놓은 뒤 강물 위 15미터(m) 다리 난간에 매달렸다. “오, 저기 뛰는 거 아니에요?”라고 하 기자가 얘기했다. 구조대원들이 비상벨을 누르고 급히 구조선으로 뛰어갔다. 카메라를 맨 하 기자도 구조선에 올라탔다.

2016년 6월 20일 오전 마포대교 인근에서 수색작업에 나선 김현진(당시 나이 33) 대원이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고르고 있다. 하상윤 제공
2016년 6월 20일 오전 마포대교 인근에서 수색작업에 나선 김현진(당시 나이 33) 대원이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고르고 있다. 하상윤 제공

평온한 강 위와 달리 아래는 탁했고, 유속도 굉장히 빨랐다. 하 기자에게는 하나의 메타포(metaphor)로 다가왔다. 물 위와 물 아래의 세상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시신을 수색 중인 구조대원의 복잡한 심경의 눈빛을 프레임에 담았다.

2016년 6월 30일 새벽 여의도 수난구조대 박현철(당시 나이 42) 대원이 구조된 투신자와 대화를 나누며 다독이고 있다. 하상윤 제공
2016년 6월 30일 새벽 여의도 수난구조대 박현철(당시 나이 42) 대원이 구조된 투신자와 대화를 나누며 다독이고 있다. 하상윤 제공

지난했던 취재였다. 여러 차례 현장을 찾고, 오래 기다리며 무력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또, 구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는 게 미안하기도 했다. 최대한 조심스레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삶의 끝’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무덤덤하게 기다리는 수난구조대원의 모습을 비췄다. 하 기자의 눈에 그들은 마음을 다친 이들에게 괜찮다고, 괜찮냐고 말해줄 수 있는 마지막 손길이었다.

“저는 이 기사가 마음에 들어요. 저의 어수룩함이 묻어나온 그때 그 시간이 좋았어요. 지금은 더 세련되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때만큼 나이브한 시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워졌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주목받지 못한 사람과 현장을 주목한 기사는 2017년 제53회 한국보도사진전 시사스토리 부문 최우수상에 선정됐다.

인양된 세월호를 세상에 보여준 ‘미스터 드론’

세월호가 인양되기 하루 전인 2017년 3월 22일이었다. 세월호가 인양될 것이라는 속보가 있었다. 그날 밤 하 기자는 촬영 장비를 차에 실었다. 취재기자와 함께 전라남도 진도군 동거차도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도로를 지나며 마음이 복잡했다”라고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새벽에 동거차도에 도착해 현지 주민의 집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 이튿날 이른 아침, 그는 무거운 촬영 장비를 들고 홀로 진땀을 흘리며 야산으로 올라갔다.

당시 야산 정상에는 유가족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여럿이 발 디딜 자리로는 협소했다. 일부 기자는 유가족의 허락을 얻지 못해 올라가지 못했다. 무거운 짐을 든 채로 땀범벅이 된 하 기자가 유가족 앞에 섰다. 그는 1년 전인 2016년 동거차도의 야산 꼭대기에서 유족들과 함께 잠자고 밥 먹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사진 찍으시게요? 올라오세요” 그때의 일을 기억하는 유가족은 하 기자를 다시 한번 산꼭대기에 들였다.

2016년 4월 5일 하상윤 기자가 진도 팽목항 가는 길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 하상윤 제공
2016년 4월 5일 하상윤 기자가 진도 팽목항 가는 길에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 하상윤 제공

하 기자가 정상에서 바라본 세월호는 손톱만 한 크기로 보였다. 하 기자는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생각이었다. 드론을 띄웠다. 화면에는 세월호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최대 운용 거리의 한계치에 이르렀다. 드론은 위태롭게 세월호 바로 위까지 갔다. 찰칵, 찰칵, 찰칵 촬영했다. 그러다 통신이 끊겼다. 드론까지 떨어뜨리게 됐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 ‘과욕을 부렸나’ 싶었다. 다행히 드론에는 최신 기능이 있었다. 신호가 끊어져도 드론은 원래 자리에 스스로 돌아왔다.

하 기자가 2017년 3월 23일 오전, 드론으로 촬영한 인양된 세월호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2017년 3월 24일 세계일보 1면에 실렸다. 하상윤 제공
하 기자가 2017년 3월 23일 오전, 드론으로 촬영한 인양된 세월호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2017년 3월 24일 세계일보 1면에 실렸다. 하상윤 제공

화면을 켰다. 유족들이 그의 주위에 모였다.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세월호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사진을 전송하는 순간까지도 그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세월호의 전체 측면을 90도로 내려다보는 부감 사진을 촬영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현장에 있던 외신기자는 그를 ‘미스터 드론’이라 불렀다.

2017년 3월 24일 <세계일보> ‘돌아온 세월호… 진실도 함께 인양되나’ 기사 1면에 그의 사진이 소개됐다. 인양된 세월호는 그의 사진과 함께 세상에 나왔다. 참사 1091일 만이었다. 한 해 전, 그가 동거차도에 머물며 현장을 바라본 시간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던 사진이다. 그의 사진은 2018년 제54회 한국보도사진전 스팟뉴스 부문 최우수상에 선정됐다. 그해 한국보도사진전 현수막에도 가장 큰 이미지로 인쇄됐다.

사진기자의 마음속 현장

8년 동안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그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저널리즘 대학원 시절엔 사진으로 ‘무엇을 보여줄지’ 고민했다. 이제는 ‘어떻게 보여줄지’를 더 고민하게 됐다. 보여주는 방식을 변주하면 사안의 본질을 더욱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안이라 해도 얼마든지 ‘다르게’ 보여줄 수 있었다.

그 고민을 드러낸 대표적 현장은 제주 비자림로다. 그는 잘려 나간 삼나무 430그루의 밑동을 하나하나 프레임에 담았다. 그리고 하나의 콜라주(collage)로 모았다. “그 사진 작업 이후로 제가 달라졌어요. 사안을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지에 대해 가장 밀도 있게 고민했던 시간이었거든요. 저널리스트로써 스스로 변화한 시간이었어요”.

2018년 8월 제주 비자림로 확장·포장 공사 때 잘려 나간 삼나무 915그루 중 430그루의 밑동의 모습이다. 크기도 모양도 빛깔도 제각각인 삼나무 그루터기마다 파란색 페인트가 뿌려져 있다. 나무가 쓴 ‘역사’인 나이테에는 비자림로의 30년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하상윤 제공
2018년 8월 제주 비자림로 확장·포장 공사 때 잘려 나간 삼나무 915그루 중 430그루의 밑동의 모습이다. 크기도 모양도 빛깔도 제각각인 삼나무 그루터기마다 파란색 페인트가 뿌려져 있다. 나무가 쓴 ‘역사’인 나이테에는 비자림로의 30년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하상윤 제공

포토저널리즘의 방향성, 스토리텔링

요즘은 전통적인 플랫폼이 아닌 손바닥에 있는 화면으로 뉴스를 소비한다. 뉴스의 형식 자체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포토저널리즘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 하 기자는 디지털 시대에 포토저널리즘이 나아갈 방향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저마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환경이다. 시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생한 현장을 소셜미디어로 공유한다. “예전에는 역사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단 한 장의 사진에 메시지를 담았다면, 이제는 여러 사진을 통한 스토리텔링이 중요해졌어요. 기사에 싣는 사진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같은 이야기를 중언부언한다는 것이 아니에요. 각각의 사진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전달하는 데 천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거죠.”

그의 말대로 긴 호흡의 기획과 스토리텔링을 통해 포토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는 좋은 시대가 왔다고 하 기자는 생각한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독자들과 깊이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8월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 중인 기아자동차 노조 관계자들을 취재하고 있는 하 기자(오른쪽 아래)의 모습이다. 이날 기아차 노조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하상윤 제공
지난 2017년 8월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 중인 기아자동차 노조 관계자들을 취재하고 있는 하 기자(오른쪽 아래)의 모습이다. 이날 기아차 노조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하상윤 제공

오래 지켜보는 기자

그가 생각하는 사진기자의 역할은 눈앞에 있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고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기자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카메라를 든 누구나가 눈앞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지만, 저널리스트라면 그걸 통해 무얼 이야기할지 생각해야 한다. “사진기자의 역할은 눈앞에 있는 것을 표현의 영역으로 어떻게 가져올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척 보면 다 안다’는 말을 경계한다. 오래 지켜본 사람만이, 직접 본 것을 토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오랫동안 하나의 사안을 자세히, 지속해서 관찰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도 “오래 지켜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하 기자는 그의 직업에 대해서도 말했다. 사진기자는 현상과 사물을 바라보고 기록하며 현장에 나서고 마감하기를 반복한다. 출근하기 전까지 본인이 어디로 취재를 나가게 될지 모르는 것이 사진기자의 매력이다. 남들이 경험할 수 없는 세상을 가장 앞에서 경험해볼 수 있다. 또한, 세상을 넓고 깊게 볼 수 있다. “제가 찍은 사진이 곧 ‘저’예요.” 물론 단점도 있다. “너무 버라이어티하고 변화무쌍해요. 그리고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사진으로 진실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 사진기자, 다른 말로 ‘포토 저널리스트’(Photo Journalist)다. 사진기자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뉴스를 전할까. <단비뉴스>는 지난 7월 28일 낮, 서울시 구파발역 근처 한 카페에서 하상윤 <세계일보> 사진기자와 만났다. 그는 8년 차 사진기자다. 세명대학교 저널리즘대학원 8기 졸업생이기도 하다. 든든한 풍채의 그는 밝은 미소를 띠고 담담히 이야기했다. 사진기자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사진기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관한 이야기를 두 차례에 나눠 싣는다.

[단비 인터뷰] 하상윤 <세계일보> 사진기자 ① 내가 봤던 모든 것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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