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모노’에 독립선언서 숨겨온 혁명여걸
작성일 : 2019-12-23 20:55:06
<앵커>

식민치하 1910년대 일본 도쿄에 유학하며 우리의 전통의상 한복만 입고 다닌 여학생이 있습니다. ‘혁명여걸’이라 불리던 독립지사 김마리압니다. 치마저고리만 고집하던 김마리아가 정작 3.1운동의 시발점이 된 1919년 2월 ‘도쿄 2.8 독립선언’ 이후 일본여인처럼 기모노를 입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변절한 것일까요? 김마리아가 걸은 항일 독립운동 길을 윤상은 기자가 따라가 봅니다.

<리포트>

이곳은 독립지사 김마리아가 3.1운동 당시 수감됐던 구 서대문 형무소 5번방입니다. 김 지사는 1919년 2월 8일 도쿄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문을 갖고 귀국하는데요. 귀국당시 평소 입지 않던 기모노의 허리춤에 독립선언서를 숨겨 들여옵니다. 2.8독립선언을 3.1운동으로 연결시킨 김 지사는 보시다시피 1.5평 정도 좁은 독방에 갇힙니다. 성인 한명이 눕기도 힘든 이곳에서 모진 고문과 투옥생활로 얻은 후유증에 평생 시달립니다.

인터뷰) 이미자 김마리아선생기념사업회 회장

"가해진 고문 중에 진정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대나무 작대기로 머리를 때리는데, 같은 간격으로 “네년이 똑똑하면 얼마나 똑똑한가 보자” 폭언을 하면서 피가 나지 않게 기술적으로 계속 때리는 것이었다고 해요. 이 고문으로 열사는 코와 귀에 고름이 잡히는 메스토이 병에 걸려 평생을 심한 두통과 신경 쇠약증 등으로 고생하셨어요."

서울 종로구, 김 지사의 모교 ‘정신여학교’가 있던 자립니다. 김 지사는 3.1독립운동 때 여학생들을 이끌다 옥고를 치른 뒤, 모교에서 교편을 잡습니다. 낮에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독립운동을 위한 지하 활동을 펼칩니다. 항일 여성 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활동에 맹렬히 참여합니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결성 한 달 만에 회원을 2천명으로 늘릴 만큼 큰 호응을 얻습니다. 서울을 본부로 국내 15개 지역과 하와이, 만주에 지부를 뒀습니다. 군자금도 6천원이나 모아 대한민국임시정부 전달하는 성과를 냅니다. 독립 전쟁이 일어나면 즉각 참여할 ‘결사부’도 조직했습니다. 임시정부의 독립군 양성에 보조를 맞춘 겁니다. 하지만 김 지사는 일제에 다시 체포돼 대구 감옥에 갇혀 더 모진 고문에 목숨까지 위태로워집니다. 병세 악화로 가석방된 뒤 김 지사는 본격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합니다.

인터뷰) 신영숙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소장

"남성 못지 않게 여성이 독립운동을 해야 한다는 정신을 가지고 한 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여성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유관순 외에 잘 모른다 이거잖아요. 그게 문제라는 거고. 실제로는 여성이 당시에 동참하지 않았으면 독립운동 자체가 성립했을까? 이런 질문을 가질 수 있죠. 왜냐하면 여성이 남성들의 활동에 모든걸, 먹여주고 입혀주고 했다는 거잖아요. 생존의 문제는 여성이 다 해결한 셈이고"

상해로 간 김 지사는 1922년 2월 임시정부 임시의정원회의에서 김구 선생과 함께 황해도 의원으로 선출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직책입니다. 하지만, 김 지사는 상해 임시정부 분열상에 실망해 1923년 6월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독립을 위해 후진 양성 교육이 중요하다고 여겨 미뤄둔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섭니다. 김 지사는 미국 유학중에도 여성독립운동단체인 ‘근화회’를 조직해 활동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조직한 항일단체 ‘흥사단’에도 가입해 독립운동의 길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김 지사는 미국에서 학업과 독립운동 활동을 마치고 1932년 귀국합니다. 일제의 감시로 서울활동이 힘들어진 김 지사는 원산의 신학교로 가 교육과 항일활동을 이어 갑니다. 하지만, 고문 후유증이 악화돼 투병생활 끝에 1944년 3월 독립을 1년 여 앞두고 53살에 순국합니다. 평생 독립과 여성인권 향상에 매진했던 김 지사 곁에는 늘 어린 여학생이나 주부 심지어 기생에 이르기까지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서훈을 받은 여성 독립 운동가는 432명, 전체 독립 유공자 1만 5천 511명 중 2.7%에 불과합니다. 역사에서 잊혀진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더 부지런히 찾아 그 업적을 후세에 교훈으로 남길 필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단비뉴스 윤상은입니다.

(영상취재 : 윤상은 / 편집 : 윤상은, 임지윤 / 앵커 : 임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