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밴 주꾸미를 꼭 잡아먹어야겠냐
반생태적 보도와 언어 공공성 훼손 빈발
생선이나 게를 예로 들면, ‘제철’은 곧 산란기를 뜻한다. 산란기에는 잡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일 만도 한데, 평소 생태·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한겨레>조차 맛집이나 지역축제 안내 기사 등에서 알 밴 놈을 먹어야 제대로 먹는 거라고 쓴다.
“꽃게장은 살이 많고 알이 꽉 찬 산란기 직전의 암게로 담가야 제맛이다.” (3월8일 ‘예종석의 오늘 점심’) “주꾸미는 산란기인 4~5월을 앞둔 3월에 알이 가득 차고 부드러워 맛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3월22일 ‘서해 주꾸미는 추워 집 나갔나')
‘꿩 먹고 알 먹기’ 식으로 모두 먹어버리면 우선은 좋겠지만, 후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게 생태계 균형이다. 선진국에서는 특히 연안 어종에 대해 산란기를 금어기간으로 정하고 엄중단속하는데, 우리는 정부가 방관하고 언론이 앞장서서 ‘제철 생선을 즐기라’고 부추긴다. 선진국들은 새끼도 못 잡게 하는데 우리는 새끼에 알까지 싹쓸이해 왔으니 어족자원이 고갈될 수밖에 없다.
언어생활에서 동물 학대와 비하는 흔한 일이지만, 적어도 언론에서 무의식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세살배기 아들을 상습폭행해 죽게 만든 아버지를 비난하면서 “짐승보다 못한 아빠”(3월18일)라고 비유할 것까지는 없지 않았을까? 악독한 짓은 인간이 했는데, ‘인면수심’이라는 말을 갖다 붙여 동물을 모독하는 것도 언론이다. ‘쇠귀에 경 읽기’(3월9일, 12일), ‘마이동풍’(1월20일)…, 모두가 인간 기준의 조어일 뿐이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라는 말도 있지만 일정 부분 의식구조를 지배하게 된다. 언론보도에서부터 ‘인간도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자각이 모자라니, 4대강을 마구 파헤치는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 지난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창덕궁을 관람하던 정상 부인들 중에서도 우리 대통령 부인과 남아공 대통령 약혼녀가 모피 숄을 걸친 게 눈에 띄었다.
* 이 기사는 <한겨레>와 동시에 실리지만, 일부 내용이 보완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