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대가 분노한 공공기관 채용 비리

[단비 추천 좋은 기사] 2017년 한국기자상 수상작 - 공공기관 부정채용 민낯

2021-07-08     김계범 기자

세상에는 좋은 기사들이 있다. 좋은 기사는 언론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다. 언론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도 여전히 언론에 희망이 있음을 증명한다. 기자는 그런 기사를 꿈꾸고, 독자는 그런 기사를 기다린다. <단비뉴스>는 2000년대 이후 국내외 주요 기자상 수상작을 중심으로 기자와 독자에게 두루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를 골라 소개한다. (편집자)

언론에 관한 시민들의 불신이 커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취재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자들이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1967년부터 그 해의 좋은 언론 보도를 찾아 상을 주고 있는데 바로 ‘한국기자상’이다.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언론상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상과 함께 취재보도부문, 경제보도부문, 기획보도부문 등 7개 부문에서 상을 수여한다.     

2017년 <한겨레>가 보도한 ‘공공기관 부정채용 민낯’ 기획 기사는 그 해 제49회 한국기자상 기획보도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공식 심사평에서는 이 기사를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채용비리와 청탁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충격적 보도였다. 300곳이 넘는 공공기관을 전수조사하고, 수백 명이 넘는 취재원을 인터뷰하는 심층취재를 통해 만들어낸 탐사보도의 모범 사례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기사가 집중적으로 파헤친 강원랜드의 경우 지역사회 전체가 얽힌 비리의 커넥션이 생생히 드러났고, 비리혐의자에 대한 수사 문제가 지금도 뜨거운 쟁점이 되는 등 큰 파장을 낳았다.’ 

▲ <한겨레>는 2017년 9월부터 강원랜드 등 공공기관 채용 비리에 관해 집중 보도했다. ⓒ KBS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정유라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쓴 이 말은 온 나라를 분노로 들끓게 만들었다. 정유라는 대학 부정 입학과 학점 특혜로 한국 사회 공정성 논의에 불을 댕겼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공정성에 관한 관심은 계속됐다. 2017년 9월, <한겨레> 보도로 실체가 드러난 강원랜드 채용 비리 사건은 또 한 번 청년들의 거센 분노를 불러왔다. 

2017년 7월 말, <한겨레> 디스커버팀(기획탐사취재팀)은 ‘공기업 채용 비리’ 취재를 시작해 강원랜드 부정 청탁 입사 사실을 처음으로 보도한 2017년 9월 5일 이후 강원랜드를 시작으로 공공기관 전반에 만연한 채용 비리를 파헤치는 ‘공공기관 부정채용 민낯’이라는 제목의 연재 기사를 두 달여 동안 보도했다. 

여론을 뒤흔든 강원랜드 채용 비리 사건 

첫 기사에서는 공기업인 강원랜드의 2012~2013년 신입사원 가운데 95% 이상이 청탁자와 연결돼있다는 내부 감사 결과를 보도했다. 얼마 뒤, 후속 보도를 통해 최종합격자 518명 모두가 청탁 대상자라는 사실도 밝혔다.  

▲ ‘공공기관 부정채용 민낯’ 연재 기사 첫날 기사와 편집자 주 갈무리. ⓒ <한겨레> 누리집

후속 보도에서는 강원랜드의 상급 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 퇴직 공무원들까지 입사와 인사를 청탁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 사건은 한두 사람의 일탈적 범죄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뿌리 깊은 채용 비리의 커넥션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믿었던 공공기관마저 채용 비리 만연

<한겨레>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취재 대상을 공기관 전반으로 확대해 보도했다. 각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통해 정부 지정 공공기관 332곳 가운데 313곳의 채용 관련 감사 자료 5년 치를 받아 분석했다. 그 결과 공공기관 58곳에서 최소 278명을 부정 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취재팀은 2013년 중소기업진흥공단 채용 과정에서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실의 인턴이 부정 합격한 상황도 밝혀냈다. 또 공공기관에서 나이 차별, 성 차별, 학력 차별 등 여러 차별이 만연한 현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부정 청탁으로 밝혀져도 청탁자의 처벌이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도 지적했다. 취재팀이 감사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청탁자가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는 5년 동안 단 2건에 불과했다. 더 나아가 채용 청탁 사실 자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2015년 서울시 청원경찰 채용 비리 사건 등을 취재해 보도했다. 채용 청탁은 대개 은밀하게 진행돼 노골적인 지시가 거의 없고 증거도 잘 남지 않는다. 청탁자는 처벌받지 않고 실무자 등 부하직원만 처벌받는 경우가 많았다. 

취재팀은 2012~2013년 강원랜드 신입사원 채용과 관련한 전체 청탁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단에 있는 전·현직 국회의원 7명 가운데 2명만 서면 조사한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 ‘공공기관 부정채용 민낯’ 연재 기사는 강원랜드 채용 비리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전반에 만연한 채용 비리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 <한겨레> 누리집

<한겨레>의 ‘공공기관 부정채용 민낯’ 연재 보도는 장기적인 불황으로 청년 실업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 와중에 현실 뒤편에서 은밀하게 벌어졌던 일들을 보도한 기사다. 강원랜드 부정 채용 사건은 강원랜드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기관 채용 시스템 전반의 문제였다. 취재팀은 사건과 현실의 상황을 자세히 보도하는 것과 더불어 무엇이 문제인지 지적하고 대안도 제시했다. 

연재 기사를 보도한 기자 가운데 한 명인 임인택 기자는 2017년 9월, 이 연재 기사로 받은 제325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 후기에서 “당신의 자녀가 점수 조작, 부정 청탁으로 입사했다고 묻기 아찔했다”고 말했다. 이유도 모른 채 채용 과정에서 떨어진 수많은 한국 청년들의 이름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고 그는 밝혔다.

팩트의 힘, 보도가 가져온 나비효과 

‘단독 보도’의 연속이었던 이 연재 기사의 사회적 파장은 컸다. 보도 이후 많은 시민들이 관심 있게 이 문제를 바라봤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관행처럼 만연한 비리라 오히려 많은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문제다. <한겨레> 보도로 채용 비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한겨레>에는 이 기사와 관련한 응원과 격려, 제보 등 시민들의 많은 전화와 메일이 날아들었다. 또한 채용 비리에 관한 시민단체들의 성명과 고발도 이어졌다.    

▲ <한겨레> 보도로 강원랜드를 비롯한 공공기관 부정채용 의혹이 드러나자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기관 채용 전수 조사 등 채용 비리 척결을 위한 방안을 대책을 직접 지시했다. ⓒ KBS

<한겨레> 보도 이후 정부는 공공기관 채용 과정을 전수 조사했고, 검찰과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강원랜드는 사장의 공식 사과와 함께 검찰의 재수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수사검사가 수사외압을 받았다는 폭로까지 나왔다. 2018년 7월, 강원랜드는 부정 채용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채용을 통해 225명의 직원을 새로 뽑았다. 강원랜드 부정 채용으로 입사한 239명은 퇴출됐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 사건과 관련한 수사와 재판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염동열 전 의원은 지난 1월 2심에서 1심과 같은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권성동 의원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으나 검찰이 상고해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또 부정 채용으로 해고된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해고가 부당하다며 해고 무효 소송을 진행 중이다. 공공기관 채용 비리 보도 이후 강원랜드 등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은행권, 사학 등의 채용 비리까지 드러나 청년층은 물론이고 많은 이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처음 이 연재 기사 기획안을 발제할 때 디스커버팀 에디터는 디지털 전략을 묻는 편집국장에게 ‘강력한 팩트, 그 자체’를 말했다고 한다. 이 기사는 눈에 띄는 사진이나 인포그래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기사가 담은 팩트로 인해 빛나는 기사다. 국회의원 보좌관의 특혜 입사에서 시작한 보도는 연재를 거듭할수록 놀랍고 충격적인 사실들을 쏟아냈다. 보도는 점점 범위를 넓혀 국내 모든 공공기관 채용 실태와 한국 사회 채용이라는 중요한 문제로 가닿았다. 독자들은 탐사 연재가 진행될수록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발굴’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저널리즘의 힘은 사실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기사다.


편집 : 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