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막는 동네공원 ‘순삭’ 위기

[기획] 도시공원 일몰제 (상) 주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

2019-11-17     양안선 PD 임세웅 기자

지난달 27일 오후 4시 서울 서초구 서리풀근린공원. 유선 이어폰을 끼고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걷는 60대 남성과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30대 여성 등 다양한 연령대의 주민들이 저물어가는 볕을 즐기고 있었다. 서초동과 방배동 일대 고층아파트 사이에 자리한 이 공원의 산책로 중간쯤에서 주민들은 길 한쪽을 가로막은 연두색 철조망과 빨간 글씨 경고문에 잠시 눈길을 주었다가, 곧 발걸음을 옮겼다.

“그 동안 주민들께서 등산 및 산책로로 이용하신 당해 임야는 개인의 사유지이며, 사유재산 관리를 위해 출입구를 폐쇄하오니 이점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공원 산책로에 ‘사유지이니 폐쇄’ 철조망

 
▲ 서울 서초동 서리풀공원 산책로 중간에 있는 철조망과 경고문 팻말. 주민들은 산책로 일부가 막혀 길을 돌아가야 했다. ⓒ 양안선

아내와 함께 산책하던 신우식(72•서울 서초동) 씨는 “철조망을 돌아가느라 불편했다”며 “(사유지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공무원들의 직무유기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리풀공원을 일주일에 두 번은 찾는다는 이광원(50•서울 잠원동)씨는 “정부가 보상을 해야 하는 것 같은데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모(62•서울 반포동)씨는 “공익성도 생각해야 할 부분 아니냐”며 산책로에 철조망을 친 지주들에게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도시공원 일몰제, 즉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원부지로 지정한 땅을 20년간 사들이지 않을 경우 땅 주인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공원 지정을 해제하는 제도의 발효가 내년 7월로 다가오면서, ‘우리 동네 공원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약 20만평(약 67만㎡) 규모인 서리풀공원의 경우 특별한 대책이 없다면 내년 7월에 약 3분의 1인 6만여평(약 20만㎡)이 지정 해제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내년 7월 일몰제가 발효하면 전국의 도시공원 중 서울시 전체 면적(605.25㎢)의 약 60%에 맞먹는 363.3제곱킬로미터(㎢)가 지정 해제될 수 있다고 집계했다. 공원 숫자로는 총 1766개소다. 서울의 남산, 인왕산, 북한산, 북악산 도시자연공원도 상당한 면적이 지정해제 대상이며 부산 달맞이공원, 대구 체육공원, 대구 월평공원, 제주 김녕공원, 광주 중앙공원 등 전국의 주요 공원에 대부분 해제 대상 부지가 있다.

대책 없으면 2025년까지 전국 도시공원 53% 해제

이 중 국•공유지거나 경사가 있어 개발하기 어려운 곳 등을 제외한 158㎢은 공원 지정에서 해제될 경우 지주들이 경제성 높은 용도로 개발할 가능성이 크다. 아무 조처 없이 공원에서 해제되면 이 땅은 대지나 자연녹지 등 이전의 용도로 돌아간다. 자연녹지에는 (4층 이하의) 단독주택, 제1•2종 근린생활시설, 교육시설, 의료시설, 공동주택(아파트 제외) 등을 세울 수 있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이행되는데, 여의도 면적의 약 48배(141㎢)에 이르는 공원이 해제 대상에 추가된다. 아무런 대응이 없다면 2025년까지 우리나라 전체 도시공원의 53%가 ‘순삭(순간 삭제, 순식간에 사라짐)’될 수도 있다는 것이 환경단체들의 추정이다.

환경단체들은 일몰제 발효로 도시공원이 많이 줄면 미세먼지 피해가 더 심각해지는 등 시민들의 ‘건강권’이 침해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 처장은 "도시공원은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를 줄여주고 도심 온도도 낮춰준다"며 도시공원이 줄면 가뜩이나 심각한 우리나라 미세먼지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 대기오염 분석업체인 에어비주얼(AirVisual)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칠레에 이어 두 번째로 초미세먼지(PM2.5) 오염도가 높다. 국제환경운동단체 그린피스가 에어비주얼의 ‘2018 세계 공기질 보고서’를 분석발표한 자료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공기질이 나쁜 20대 도시’ 중 중국 선양(1위), 방글라데시 다카(2위)에 이어 우리나라 서울과 인천이 3위, 4위를 차지했다.

도시의 ‘허파’ 줄어 국민 건강권 침해

도시공원은 이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탁월한 ‘자연 공기청정기’로 꼽힌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도시 숲은 도심의 미세먼지(PM10)를 25.6%, 초미세먼지(PM2.5)를 40.9%까지 줄인다. 나무 1그루는 연간 35.7그램(g)의 미세먼지를 흡수한다. 도시공원은 폭염도 식혀준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서울 여의도광장의 표면온도는 여의도공원에 숲이 조성되기 전인 1996년에 주변보다 평균 2.5도(°C) 높았으나 공원 조성 후인 2015년에는 주변보다 평균 0.9도 낮아졌다.

▲ 서울 여의도동의 여의도공원. 아스팔트 도로였던 이곳에 푸른 숲이 조성된 후 이 일대의 표면 온도가 주변에 비해 낮아져, 도시공원이 폭염을 식혀주는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다. ⓒ 양안선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응해 공원부지를 지키지 못한다면 환경단체들의 지적대로 시민 건강권은 침해될 수밖에 없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공원 면적은 10.1㎡(약 3평)지만, 2020년 7월 도시공원 일몰제가 발효하면 4㎡(약 1.21평)로 줄어들 전망이다. 사람의 몸집은 그대로인데, 허파가 작아져 호흡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4차 국토종합계획 수정계획(2011~2020)에서 2020년 목표로 잡은 12.5㎡(약 3.7평)는 물론이고, 세계보건기구(WHO)의 권고기준인 9㎡(약 2.7평)에도 한참 못 미친다. 캐나다 토론토(29.7㎡, 약 8.9평), 영국 런던(24.2㎡, 약 7.3평) 등 선진국의 1인당 공원면적은 20~30㎡(약 6평~9평) 수준이다.

‘헌법불일치’ 결정이 낳은 일몰제, 국민 80% 이상 ‘몰라’ 

그렇다면 이런 심각한 문제를 부르는 도시공원 일몰제는 도대체 왜 시행하는 것일까. 역사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시공원은 도로 등과 같은 ‘도시계획시설’의 하나인데, 정부는 수십 년 전에 사유지를 포함한 전국의 대규모 땅을 도시공원부지로 지정하고, 적절한 보상을 통해 이를 사들인 뒤 관련 시설을 짓는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장기간 땅을 사들이지 않아 토지주가 재산권 행사를 못 하면서 재산세만 내는 문제가 생기자 1999년 헌법재판소는 도시계획법(4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00년 7월 이 결정을 반영한 도시공원 일몰제가 생긴 것이다.

전국 도시공원의 절반 이상이 해제 위기에 있지만,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지난달 27일 서리풀공원에서 만난 반포동 주민 강창수씨는 “철조망으로 막아서 통행하는 데 불편은 있었는데 (도시공원 일몰제는)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서리풀공원을 찾은 시민 30명을 무작위로 인터뷰한 결과, 27명(90%)이 ‘도시공원 일몰제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환경단체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지난해 20세 이상 서울시민 1001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기반 ‘공원 일몰제 인식 여론조사’(표본오차 ±3.10%, 신뢰도 95%)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4.8%가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해 ‘모른다’고 응답했다.

▲ 도시의 허파기능을 하는 근린공원이 크게 줄어들 수 있는 '일몰제'가 내년 7월부터 시행되지만 서울 시민 대다수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양안선

*도시공원 일몰제 (하)로 이어집니다.


편집 : 박동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