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시간'과 '장소'

▲ 남지현 기자

시간은 본래 흐르는 강물과 떠가는 구름에, 아침을 밝히는 태양과 밤을 비추는 달에 있었다. 인류의 시간이 시계 안에 갇힌 건 불과 700년 전이다. 그 전까지 사람들은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일어나고 일하고 먹고 잤다. 시간은 해의 위치에 따라 큼직큼직한 덩어리로 인식됐다. 시간을 잘게 1초 단위로 쪼개고 24시간으로 정량화한 것은 기계식 시계가 발명된 이후이다. 자연의 시간이 기계의 시간으로, 주관적 시간이 공공의 시간으로 전환됐다.

시간의 무수한 단위들은 마치 시간이 양적으로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람들은 실제로 잘게 나누어진 시간 덕에 서로를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됐고 삶을 보다 효과적으로 계획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시간 없는’ 사람이 됐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특징지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은 자원이 됐다. 가장 적은 시간을 들여 가장 많은 상품을 생산해 내는 효율성이 시장의 지상 목표가 되면서 사람 역시 주어진 시간에 최대의 결과를 내야 하는 자본 생산의 도구가 됐다. 해가 져도 잠들지 못하고 일해야 주어진 시간 내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기에 오늘도 도심의 빌딩 숲은 처절하게 아름다운 야경을 빚어낸다.

▲ 야근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서울의 야경은 밝게 빛난다. © flickr

현대의 공장식 축산은 가장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과 노동력으로 가장 무거운 돼지고기를 얻기 위해 돼지를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철제 우리 안에서 사육한다. 야생에서 종일 땅에 코를 대고 먹을거리를 찾아다니는 돼지 본연의 습성을 완벽하게 억압하는 환경에서 돼지는 단조로움과 스트레스로 서로의 꼬리를 물어뜯는다. 농부들은 돼지들이 꼬리를 물어뜯는 것을 막으려고 축사를 넓혀주는 대신 꼬리를 아예 잘라버린다.

돼지를 가두는 좁은 철제 우리처럼 시장만능주의 사회는 인간이 본연의 습성과 리듬대로 살 수 없도록 시간으로 인간을 옥죈다. 자연과 호흡하며 느끼던 시간이 기계화하면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기보다 시장의 톱니바퀴처럼 살게 됐다. 기계의 시간에 맞춰 살기 위해 인간은 산과 마을을 직선으로 가르고 아스팔트로 덮는다.

회색 도시도 인간과 자연을 갈라놓는다. 인간은 이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모여 사는 도시를 만들었다. 그러나 출퇴근하는 데만 두어 시간이 걸릴 정도로 도시 내 시간거리는 오히려 늘어났다. 궁여지책으로 지하철을 만들었으나 그것도 부족해 급행열차가 투입된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이리도 바삐 가는 걸까? 아침마다 미어터지는 9호선 급행열차에서 나는 꼬리 잘린 돼지가 된 기분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송승현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