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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가르치는 재해와 치수의 역사
[단비발언대] 정성헌
2011년 07월 21일 (목) 21:11:21 정성헌 mydreams88@nate.com
   
▲ 정성헌.

고대 중국인들은 세상이 다섯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이 다섯 원소를 다시 ‘음(陰)’과 ‘양(陽)’으로 나누었는데, 그 중 물은 가장 음적인 것이었다.

이 물(水)은 만물을 머금고 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기운을 저장해두었다가 부드럽게 하고, 다시 목(木)을 나게 하여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오행 순환 체계가 계속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물은 생명의 원동력’이라는 중국인들의 관념은 실제 생활에서 종종 배반을 당해왔다. 물은 너무 부족해 곡식을 말라 죽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너무 넘쳐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는 ‘파괴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중국 황제들에게 물을 다스리는 일, 즉 가뭄과 홍수에 대비하는 ‘치수정책’은 매우 중요한 임무였다. 밖으로 서쪽과 북쪽 오랑캐도 문제였지만, 안으로 남쪽과 동쪽 물 또한 큰 문제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왕조 하(夏)나라 우(禹)임금이 왕이 되기 전, 아버지 곤(鯤)을 따라 전국의 치수사업을 맡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평생 전국을 걸어 다니면서 일을 했을 테니 몸이 성할 리 없었다. 얼마나 일이 많아 고생을 했으면 그의 이상한 걸음걸이에서 유래된 ‘우보(禹步)’란 말까지 전해질까? 

문제는 가뭄과 홍수뿐만이 아니었다. 거센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먼 바다에서 큰 파도가 몰려왔다. 해일에 대한 우리나라 기록은 1393년 <조선왕조실록>에서 시작된다. 오늘날 서울 서강대교 부근까지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와 민가 수십 채를 덮쳤다는 대목이 있다. 명종 때인 1546년에는 전라도 서남부 지방에 큰 해일이 덮쳐 사람들이 죽고, 논밭이 바닷물에 잠겨 염해를 입었으며, 심지어 판옥선과 같은 큰 배도 떠내려갔다는 기록이 있다. ‘마을 노인이 80년 살면서 이런 파도는 처음이다’라고 말한 대목에서 당시 피해와 공포를 짐작할 수 있다.

‘토’는 ‘수’를 이긴다는 오행 상극 이론을 가져오지 않아도, 인간은 물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둑을 쌓았다. 그 둑은 높고 거센 물에 무너졌지만, 인간은 다시 더 높고 튼튼한 둑을 쌓았다. 이런 노력으로 인간은 무자비한 자연으로부터 안전을 어느 정도 보장 받게 되었다. 이렇게 물을 제어할 수 있다는 믿음의 바탕에는 얼마나 물이 몰려오는지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필요했다. 오늘날 방재학, 토목학, 지질학 등 ‘물을 예측하고 통제하는’ 학문이 그렇게 태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노력과 현대 과학의 한계는 불행히도 과학 스스로 증명했다. 1963년 미국 기상학자 로렌츠(Lorentz)는 가상 날씨 실험을 했는데, 첫 번째는 변수에 공식을 계산한 값을 반올림 없이 그대로 넣었고, 두 번째는 소수점 네 자리까지만 값을 넣었다. 지극히 작아 보이는 시작의 차이는 결과적으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차이를 가져왔다. 이것이 ‘나비 효과’ 이론이다.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Heisenberg)는 1929년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은 측정할 수 없으며, 확률적 변수로만 존재한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했다. 결국 맞닿아있는 두 이론은 과학이 본질적으로 변수를 예측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통제하는 것도 한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지난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대지진은 이런 인간의 노력과 자연의 대결이었고, 그 싸움에서 인간은 처참하게 패했다. 역사적으로 기록에 남은 지진 가운데 네 번째로 강했다는 이 지진으로 최고 15m 해일이 발생했고, 약 3만 명이 숨졌다.

2004년과 2005년 지진 해일이 동남아 지역을 덮칠 때 피해가 컸던 것은 국가 재난 방재 시스템이 허술했고 현지주민들 대처 또한 적절치 못했던 탓이다. 그러나 일본은 환태평양 지진대 위에 있어 진도 6.0 이상 지진만 매년 10번 이상 나는 나라다. 더구나 1923년 관동 대지진, 1995년 고베 대지진 등의 경험으로 국가 재난 방재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후쿠시마 원전을 바닷가에 지을 때 높이 10m 파도까지 예상했다고 한다. 역대 지진 자료를 토대로 세운 것이라 하나 이번 자연 재해로 발전소는 주 기능은 물론이고 비상 기능까지 아예 멈춰 1차 방사능 피폭은 물론이고 2차 방사능 오염까지 걱정되는 상황이다.

지금도 전라남도 서남부 지역에 가보면 바닷가에 바로 붙여 지은 집이 별로 없다. 바닷가 집도 뒤에는 산을 끼고 있어 해일이 닥치더라도 산으로 도망치기 쉽다. 방파제도 아주 쌓지 않은 건 아니지만 조상 때부터 교훈으로, 가훈으로 내려온 건 맞서지 말고 피하라는 거였다. 내륙의 평탄한 지역에서도 낮은 곳에 집을 짓고 물을 막는 대신 아예 높은 곳에 집을 지어 물을 피했다. 우리 조상들이 자연에 대처하면서 물려준 지혜다.

이번에 일본에서 피해를 입은 지역도 사실 지진 해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와테현 아네키치 마을은 ‘해발 60m 아래로는 집을 짓지 마라’는 조상들이 남긴 비석의 내용을 충실하게 따랐고, 후다이 마을은 메이지 시대부터 내려오는, 어쩌면 말도 안 될 법한 ‘15m 지진 해일’ 이야기를 믿어 높은 둑을 쌓고 그 아래로는 절대 집을 짓지 못하게 했다.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것도 많지만 예측 못할 일도 많다. 절대 안전하다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그랬고 후쿠시마 발전소가 그랬다. 오히려 이론을 뛰어넘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경험이 중요함을 이번 후쿠시마 사고가 보여주었다.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은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재해에 어느 정도 대비하되, 맞서지는 말라는 것이다.

정성헌/세명대학교 한의과대

 

** 출처
 <한국의 갯벌> 고철환,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9
 <클릭 조선왕조실록> 이남희, 다할미디어 2008
 인터넷 <조선왕조실록> 데이터 베이스 검색 서비스
 인터넷 <기상청 국외지진목록> 2001년~2010년 진도 6.0~9.0 값 검색
 인터넷 <김영수의 사기세계> 블로그
 <중앙일보> 2011년 4월 5일치 기사
 <한겨레> 2011년 3월 30일치 기사


* <단비뉴스>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제5기 대학언론인 캠프> 참여자의 칼럼쓰기 과제 가운데 몇 편을 골라 '단비발언대'로 소개합니다. 칼럼쓰기 수업의 제시어는 '물', '불' 또는 '물과 불'이었고, 참가자들이 제출한 칼럼들은 이봉수 교수의 첨삭을 거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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