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 홍기빈 소장
주제② 베블런이 말하는 자본의 본성

자본은 폭력을 배경으로 한 사회적 권력

“많은 사람들은 ‘폴라니의 예언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폴라니는 자본주의가 없어진다고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시장자본주의가 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조정 시장을 맹신하는 자본주의는 끝났습니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은 두 번째 강의에서 ‘자유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면 사회는 알아서 잘 굴러간다는 자기조정 시장은 헛된 유토피아에 불과하다’는 폴라니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폴라니 이후 도래한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볼 게 많다며  강의를 이어갔다.

▲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이 자본시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양호근

홍 소장은 우선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스타인 베블런이 쓴 <자본의 본성에 관하여>를 인용하며 '자본시장'의 개념을 설명했다.

“시장경제에는 다른 층위에 존재하는 두 개 시장이 있습니다. 일반시장 즉 밀가루, 떡볶이 등을 파는 상품시장이 있죠. 두 번째 시장은 자본시장입니다. 이 두 개를 구별해야 1980년대 자본주의 본질을 알 수 있습니다.”

베블런은 그 책에서 자본이 사회적 권력임을 역설했다. 전통적 경제이론은 자본을 생산 과정에서 생겨난 가치를 화폐의 형태로 전환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베블런은 자본이란 사회적 권력, 곧 물질의 소유자가 그것의 사용을 어느 범위까지 통제할 수 있느냐 하는 능력에 기초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자본은 생산 과정이나 생산성 그 자체와는 관련이 없으며 폭력을 배경으로 한 사회적 권력이라는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자본시장을 ‘기업가들이 주식과 채권을 팔아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는 시장’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럼 이 시장에서 사고파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식의 경우는 기업에 대한 소유권이고 채권은 이자와 원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사고파는 겁니다. 여기서 따져봐야 할 게 있습니다. 주식과 채권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나요?”

▲ 소스타인 베블런(1857 - 1929).
홍 소장의 질문에 학생들이 상식적으로 대답해서는 안 될 것 같아 망설이자 그는 웃으며 강의를 이어갔다.

“자본시장의 사회적 기초가 무엇인지 따져보자는 겁니다. 자본시장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됩니다. 즉 주식을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겠죠. 하지만 이들이 제시하는 ‘베팅가’는 어떻게 설정될까요? 미래에 발생할 수익의 흐름을 예측하여 가치를 산정하는 것입니다. 즉 배당금, 리스크, 미래가치 등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 지점에서 베블런의 시각이 드러난다고 그는 말했다. 주식에서 측정되는 미래가치는 그 기업의 수익성이다. 자본시장에서 미래에 어느 정도 이윤을 거둘 것인지를 측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윤은 상품시장에서 발생한다. 이는 자본시장이 상품시장의 적정가격을 산출함으로 상품시장 자체를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홍 소장은 설명했다.

“직접 상품가격 협상해 본 사람, 손들어 보세요”

 ▲ 홍콩 금융 중심가 센트럴. 80년대 들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금융 중심지가 된 배경에는 '탈규제'가 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결정한다고 했죠? 그럼, 이중에서 직접 가격을 협상해 본 사람이 있습니까? 좀 이상하죠? 사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물품 가격은 물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결정합니다. 기업은 가격을 산출하기 위해서 목표이익률을 감안하고 시장에서 흡수 가능한 수요량을 미리 예측합니다. 그러면 대충 단가가 나오죠. 이를 고려해 가격을 결정합니다.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일반시장이 아니라 자본시장이라는 거죠.”

홍 소장에 따르면 ‘개별상품이 얼마나 수익성에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평가가 자본시장에서 결정되고 이것이 상품시장에서 거래되는 되는 것에 불과하다. 자본시장이 일반시장을 지배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게 된 원인을 ‘1970년대 중반부터 일어난 금융시장의 변화’라 설명했다. 금융의 탈규제가 있었다. 많은 규제로 꽁꽁 묶여있던 자본시장은 1970년에 이르러 상상할 수 없는 큰 자유를 가졌다. 결국 금융시장은 엄청나게 커졌다. 

“탈규제로 개별 자본시장이 통합되더니 끝내 지구적 통합에 이르렀습니다. 상하이 주식시장에서 중국의 주식만 거래되고 있는 게 아니죠. 자본시장은 질적, 양적으로 강력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자본시장은 20세기 초보다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지고 세계 모든 시장을 지배하게 됩니다. 이를 금융의 지구화라고 하죠.”

자본이 만사만물을 평가하는 시대는 지속될까?

이렇게 세를 불린 자본시장이 만사만물의 가치를 평가하기 시작했다며 홍 소장은 말을 이어갔다.

“투자은행들은 매매행위가 이뤄질 수 있도록 초기가치의 대략적인 값을 산정하게 됩니다. 기업이나 병원, 학교가 어느 정도 가치가 있고 어느 정도로 팔려야 할지를 자본시장이 측정합니다. 인간사회의 만사만물이 자본시장의 수익성 평가에 의해 가치가 부여되는 사회가 된 거죠. 이를 좋게 말해서 합리화, 효율성의 제고라고 합니다. 이는 금융시장의 완전성 가설로 합리화했습니다. 정보의 투명성만 보장된다면 자본시장은 스스로 안정성을 찾아간다는 겁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금융시장 안에 내재하고 있다고 학자들이 주장한 거죠. 이와 관련한 논문을 쓴 사람은 줄줄이 노벨경제학상을 탔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강의를 듣는 학생들. ⓒ 양호근

그러나 홍 소장은 현재의 경제사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2008년에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망했습니다. 그전인 3월엔 베어스톤스가 망했고요. 세계 상위 랭킹 투자은행들이 망한 거죠. 투자은행이 망했다는 것은 이 모델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브프라임으로 시작된 금융위기를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금융상품을 제어할 수 있는 메커니즘도 없었고 오히려 위험을 극대화하는 메커니즘만이 풀로 가동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전체 설계도 자체가 무너진 것입니다.”

홍 소장은 인간이 세운 시스템의 기본 메커니즘이 다 무너졌다며 자본시장이 지배하는 지구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진보세력 쪽에서 지난 이삼십 년간 시장에 대한 패배주의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그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경제활동은 시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습니다. 일부는 시장자본주의로 입장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를 돌아봤을 때 시장자본주의가 답일까요?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시장자본주의가 가능하지 않다면 다른 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 저널리즘스쿨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 <저널리즘특강> <문사철특강>으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사회교양특강>은 김두식, 전중환, 박상훈, 구갑우, 김동춘, 박명림, 홍기빈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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